어제 퇴근길에 상추를 조금 샀다.
마음속으로는,
마눌님께서 재워 놓은 제육볶음을 볶아 상추쌈에 얹고, 그위에 간장에 삭힌 쌉싸름한 오가피닢장아찌를 올려,
간만에 포식 좀 하겠구나 기대를 하며 집에 도착했다.
마눌님과 마주 앉아 소주 한 잔 하며, 담소를 나눠 봤던 시간이 언제였던가 기억도 가물가물 하다.
즐거운 마음으로 상추를 씻으며 마눌님의 퇴근을 기다렸다.
그때 문자 한 통이 온다.
마눌님이다.
- 나 오늘 곗날인거 알지? 냉장고에 고기 재워 논거 있으니, 밥 먹고 있어~ -
허걱! 그러고보니 며칠전에 마눌님께서 오늘이 곗날이라고 얘기했던 것 같기는 한데, 건성으로 듣다 보니, 깜박 잊고 있었다.
ㅠ.ㅠ 벌써 치매기가 오나...
혼자 먹자고 고기 볶고, 고추 씻고, 마늘 썰고 하려니, 귀차니즘이 확 몰려 온다.
고기 먹는걸 포기하고 냉장고 문을 열어 보니,
1리터짜리 우유가 반 팩 정도 남아 있다~
우유 두 잔과 초코파이 두 개로 대충 저녁을 때웠다.
오늘 아침,
토요일에도 출근하는 마눌님이 아침상을 차려 놓고 나를 깨운다.
비몽사몽중에 몸을 추스리고 일어나 거실로 나가보니, 식탁 가득 한 상 잘 차려져 있다.
어제 씻다가 만 상추에, 마늘 고추 오가피닢장아찌까지 ㅋ ㅋ
내가,
" 아니 이게 뭐야~ 아침부터 소주 마시라구? " 하니,
" 무슨 소주를 마셔~ 어제 고기 안볶아 먹은 것 같애서 생각해서 차린거구만~ "
" 나 안먹어! 일어나자 마자 이게 들어가니? "
다섯 살 먹은 아이가, 엄마에게 나 밥 안먹을꺼야 하며, 땡강부리듯 삐쳐서 내 방으로 다시 들어 왔다.
" 맘대로 해~ 나 혼자 다 먹을거야~ "
방안에서 슬쩍 곁눈질로 보니, 혼자 정말 잘도 먹는다.
원체 식성이 좋은 사람이라, 때와 장소를 가리지도 않는다.
하긴 처음 만났을때 그 맛있게 먹는 모습이 이뻐 보여, 필이 꽃친 나이기도 하다 ㅋ ㅋ
같이 밥을 먹고 있으면, 옆에 앉은 사람마저도 식욕이 동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내 방에서 와싸다자게란을 읽고 있는데,
" 안태워 줄거야! " 하며,
마눌님이 소리를 빽 지른다.
출근 시켜 달라는 소리다.
운전을 하지 못하는 마눌님이라, 근무가 서로 겹치지 않는 날이면, 내가 출퇴근을 시켜 주곤 한다.
세면장에 들어가 샤워기를 틀고, 대충 눈꼽만 걷어 내는 고양이세수를 한 뒤, 차에 시동을 걸었다.
집으로 돌아와 음악을 틀어 놓고, 몆 일 전에 찍은 사진작업을 하고 있으려니, 슬슬 배가 고파 진다.
거실에 나가보니, 아직 치우지 않은 밥상이 그대로 놓여 있다.
가스렌지를 켜 제육볶음을 데운 뒤 한 입 맛을 봤다.
우헉~ 맛이 좋다!
밥을 먹다말고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냈다.
아직 이른 오전 시간이라 그런지 반주로 마신 소주 세 잔에, 정신이 아리까리 해지며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
오전이면 어떻고 오후면 어떠리...
혼자 먹는 음식에 살짝 아쉬움이 묻어 나긴하지만,
그래도 맛있는 음식은 언제나 나를 행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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