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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 관람했습니다. 요즘 리들리 스콧에게 별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이 영화는 30년전의 힘을 되찾은듯 보일정도로 괜찮네요.
스포일러 많습니다. 안보신 분들은 주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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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사회 사람들 중 90%는토요일 밤에 술 한 잔 먹고 생긴 자식들이다.계획없이 어쩌다가 생긴 자식들이란 뜻이다.난 계획적으로 태어난 사람들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우리들은 모두 토요일 밤의 특집인 셈이다."
- 존 레논
어쩌다 과학사회학이나 과학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는 사람들을 보면, 우선 입문서와 함께 에일리언 시리즈를 보라고 권한다. 60년대 이후의 수많은 SF 소설과 영화가 그래왔지만, 에일리언 시리즈는 그 중에서도 과학의 현실적인 작동방식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순진한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엄격한 실증주의적 벙법론에 따라 사심없이 진리를 탐구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그러한 생각은 누가 보스인지 모르고 하는 순진한 생각이다. 주도권은 돈줄을 쥐고 있는사람이 같이 쥐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 거대기획들이 과학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세상에서, 자본의 필요에 따라 시키는 일을 충실하게 시행하는 전문직 피고용인일 뿐이다. 비록 에일리언의 주인공인 리플리는 과학자는 아니지만, 시리즈 전편을 통해 과학자들이 이용당하는 식으로 거대자본에게 농락당하고, 맞서 싸운다. 리플리는 회사의 지시를 순진하게 믿고 임무를 수행하지만, 실상 회사는 군사무기개발을 위해 그들을 이용한다.
당초 에일리언 시리즈의 프리퀄로 알려졌던 프로메테우스는 에일리언 시리즈의 주제를 충실히 계승하는 동시에, 블레이드 러너의 주제를 단단하게 결합시킨다.(원래 이 프로젝트가 블레이드 러너의 프리퀄을 겨냥하고 시작되었음을 안다면, 어느정도 이해가 가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것은 바로 존재의 의미를 묻는 질문이다. 우리는 어떤 존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사실 리들리 스콧의 필모그라피에는 엉성한 구석이 좀 있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만만치 않은 감독인 이유는 이런 근본적인 주제를 다루는 실력이 수준급이기 때문이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인간의 복제인간인 리플리칸트들은 7년으로 한정된 그들의 수명을 늘리고, 자신의 존재이유를 알기 위해서 자신의 창조주인 타이렐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이들은 그들이 원하는 결과와 해답을 찾을 수 없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위해 축복받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창조주의 이익을 위해 제작된 산업적 소모품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위기, 즉 실존주의적인 표현을 쓰자면, 존재의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외계 탐사선인 프로메테우스의 탐사목적은 에일리언 시리즈와 블레이드 러너의 목적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 탐사선은 표면적으로 인류의 시원과 창조이유라는 존재론적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한 수단인 동시에, 비밀리에 거대자본의 산업적 이익을 위한 활동을 충실하게 수행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군사적 목적과 생명연장의 꿈, 과학이 어떻게 자본에게 농락당하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고있는 현대의 과학기술의 양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주제들이 선택된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군사기술에 대한 투자는 초강대국에서 그 어떤 프로젝트보다 많은 자본이 투입되는 분야이며, 노화연구와 같은 분야는, 공공위생이나 예방의학과 같은, 더 시급하고 중요한 프로젝트들을 제치고 산업적인 논리에 의해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분야이다. 특히 의료산업이 공공적인 성격을 거의 잃어버리고 경제논리에 의해 휘둘리는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도 결국 비슷한 전철을 밟게 되겠지만.)
이 탐사를 지원한 웨이랜드사의 회장인 피터 웨이랜드(가이 피어스 분)는 과학자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척 하면서, 사실은 위에서 밝힌 두 가지 목적을 위해 탐사를 조직했다. 왜 아니겠는가? 누가 한가한 존재론적 질문 따위를 위해 1조달러를 투자하겠는가? 이런 사실을 암시하는 분위기는 웨이렌드의 딸인 총괄책임자 메레디스 비커스의 업무처리방식을 통해 조금씩 제시된다. 그녀는 탐사의 주체인 과학자를 제치고 탐사의 목적과 범위를 설정하며, 자신의 지시를 따르라고 강요한다.(만약 정말로 이 프로젝트가 순수한 과학적 탐험을 위한 것이었다면, 그녀의 임무는 과학자들을 지원하는 것에 한정되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탐욕과 상관없이 탐사를 지원한 것처럼 보이는 피터 웨이랜드는 사실 자신들을 창조한 엔지니어들을 만나 자신의 영생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동시에 웨이랜드는 안드로이드인 데이빗(마이클 파스빈더 분)을 만든 창조주이기도 하다.
피터 웨이랜드:엔지니어=데이빗:피터 웨이랜드
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실상 웨이랜드는 블레이드 러너의 전투용 리플리칸트인 베티(룻거 하우어 분)인 동시에 베티를 만든 타이렐을 한 몸에 구현한 인물인 셈이다. 데이빗은 엔지니어들이 인간을 만든 이유를 궁금해하는 찰리 할러웨이(로이 마샬그린 분)에게 역으로 질문을 던진다. "그럼 인간이 저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찰리는 그저 만들 능력이 되니까, 라고 대답하지만, 블레이드 러너와 에일리언을 거처온 관객들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거기에는 과학자들의 숭고한 탐구정신이나 피조물에 대한 애정과 축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산업적 이익이라는 건조하고 황량한 명제가 자리 잡고 있다. 이 결론은 그대로 엔지니어와 그들의 피조물인 인간의 관계에 적용될 수 있다. 엔지니어들은 인간 외에도 에일리언도 창조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그것도 어떤 이유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군사기지겸 우주선의 최종목적지가 지구인 점을 감안했을 때, 아마도 군사적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볼 수 있다.(그들은 결국 자신들의 창조물을 제어하지 못해 그들에 의해 몰살당하는데, 이것도 과학학, 또는 과학사회학의 익숙한 주제들이다.) 피터 웨일랜드가 데이빗을 만든 목적, 엔지니어들이 에일리언을 만든 목적을 상기한다면, 엔지니어들이 인간을 만든 목적이 앞의 두 경우와 다를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인간은 흔히 세번의 멘탈 붕괴를 겪었다고 말해진다. 첫번째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에 의해(그러나 사실 중세적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은 인간의 거주지가 아니라 루시퍼가 살고있는 지옥의 중심. inferno이다. 지금도 수많은 인간들이 그 중심에서 삶을 불사르고 있다. 블리자드에게 영광을!), 두번째는 인간의 신의 피조물이 아니라는 다윈의 진화론에 의해, 세번째는 자신의 마음마저도 온전하게 자신의 통제하에 속해있지 않다는 프로이트의 발견에 의해. 마지막으로 실존주의는 인간 존재의 우연성에 관한 탐구를 통해 그 멘붕을 완성시켰다.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어져오던 자신의 존재, 그 존재의 본질이 붕괴되었을 때 느끼는 상실감이란 바로 정확히 낙원상실의 느낌일 것이다. 위의 에피그램에서 존 레논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 관한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베티는 결국 타이렐을 죽인다.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혹은 극복할 필요가 있을까?) 블레이드 러너에서 베티는 자신을 창조한 창조주인 인간들보다 더 인간적인 희생과 용서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그 존재의 위기를 극복해 나간다. 존 레논은 오노 요코와 사이에서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아들 션을 낳음으로서 그를 축복받은 존재로 만든다. 레논의 모습은 약간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핵심은 그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본질에 관한 질문들과 가정이 부정당했을 때, 바로 그 존재의 가치는 스스로의 행동에 의해서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실존주의의 해답이다. 어떤 숭고한 모습도, 어떤 우스꽝스러운 결론도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기위한 해답이 될 수 있다. 물론 존재의 의미를 찾기를 포기하는것도, 보통사람에게 있어서는 감당하기힘든 초인적인 성찰을 요구하는 일이기는 해도, 하나의 훌륭한 해답이다."기투"니, "본질보다 실존이 선행한다"라느니, 하는 실존주의의 명제는 바로 이러한 상황을 압축한 표현이다.
따라서 존재의 근원과 이유를 찾기 위한 엘리자베스 쇼(누미 라피스 분)의 2단계 탐험은 아마도 비극적 결말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쇼는 그런 결말을 예감하고 확인하러 탐사를 진행려는 듯한 분위기다. 오히려 쇼는 그 탐험의 와중에서 자신의 존재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 경험들을 통해, 스스로를 형성하면서 존재의 이유를 찾게 될 것이다.
* 리들리 스콧은 앞서 근대인이 겪었던 멘탈붕괴를 자신들이 애초에 믿어왔던 숭고한 목적이나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산업논리의 일부가 된 인물들을 통해 드러내는데 일가견이 있다. 에일리언에서, 그리고 블레이드 러너에서 진실을 알게된 인물들의 내면은, 그들이 목격하는 풍경을 통해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프로케테우스에서는 비록 독창성은 부족하지만 여전히 에일리언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 인공지능이나 인간형 로봇이 감정이 없다는 케케묵은 신화는 도대체 언제쯤 되어야 사라질까? 인지, 계산주의 혁명이 심리학을 휩쓴지가 30년이 넘은 지금에 와서도, 이런 이야기들이 의심없이 받아들여지는 현상이 신기하기만 하다. 인공지능과 로봇연구의 1인자라고 할 수 있는 로드니 브룩스도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로봇을 만드려면 아마도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보일 것이라고 말한다. 뇌과학 연구에서도 감정은 행동을 촉발하는 중요한 기제이다. 아무리 논리적인 판단을 해도 그것이 감정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면, 다시말해 감정을 느낄 수 없다면 어떤 행동도 불가능하다. 아마도 이러한 이유는 즉각적인 감정반응이 의식적인 계산보다 오류가 많은 상황이 존재하기 때문일텐데, 그렇다고 해서 감정과 이성이 대립되는 기능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이것은 상호협력하는 독립기제다. 적어도 SF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면, 대중의 오해를 심화시키는 이런 초보적인 실수는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 영화 초반에서 외계인이 어떤 약물을 마시고 몸이 DNA수준으로 분해되는 장면은 인상깊지만 과학적으로는 완전한 넌센스이다. 아마도 중국의 반고 신화나, 기독교의 거인 아담의 이미지에서 발견되는 세계탄생신화(이 세계는 어떤 초자연적 존재의 몸을 원료로 탄생했다는, 희생을 강조하는 기원설명의 신화)를 묘사한것이지만, 이것이 인간과 외계인(엔지니어)의 DNA가 같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지구의 다른 모든 생물 간의 DNA유연성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내가 기억하기로 외계인이 그 약물을 마시고 있을 때는 이미 지구에 수많은 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인간의 지구에 생존하고있는 모든 생물종들과 유연관계라는 것은 바로 DNA분석들 통해 발견된 사실이다. 만약 외계인의 DNA가 지구의 모든 생물종의 탄생을 촉발시킨 것이라면, 그러한 진화과정을 거친 인간과 외계인의 염기서열이 일치하는것은 말도 안되는 우연이다.
**** 제목이 프로메테우스인 것으로 봐서, 그리고 외계인(엔지니어)의 체구가 신화의 티탄족을 떠올리게 하는 장신안 것으로 봐서, 어쩌면 인간을 창조한 외계인이나 인간에게 지식을 전파한 외계인은 동일한 세력이 아닌, 오리지널 그리스 신화처럼 서로 대립되는 세력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그렇게 판을 벌린다면, 리들리 할아버지 연세도 적지 않은데, 이걸 다 어떻게 수습하려고.
***** 2014년에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 리메이크가 제작된다고 한다. 아마도 오리지널 블레이드 러너와, 프로메테우스의 연장선상에서 존재론에 관한 질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을 시도하려 할 것 같다. 어느모로 보나 아직 전체적인 그림이 완결되지 않았기에, 지켜보기 흥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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