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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리전투....國軍 第3軍團은 1951년 5월26일 解體되었다.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2-05-26 17:05:12
추천수 13
조회수   1,954

제목

현리전투....國軍 第3軍團은 1951년 5월26일 解體되었다.

글쓴이

최미애 [가입일자 : 2008-05-29]
내용


중공군을 허탈케 한 현리 전투 3군단의 도주

http://parizal.egloos.com/3817243#8378491



현리 전투 3군단 붕괴의 시발

http://parizal.egloos.com/3814564



유재홍장군과 현리전투에 관하여

http://blog.naver.com/papa3378?Redirect=Log&logNo=110139045011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 한국사 3대 패전(敗戰) - 칠천량, 쌍령, 현리전투

http://blog.naver.com/mangga2000?Redirect=Log&logNo=150120350914









현리 전투(縣里戰鬪)는 1951년 5월 16일 ~ 5월 22일 동안



강원도 인제군 현리에서 중공군과 북한군, 한국군 사이에서 벌어진 한국전쟁 중의 전투다.



중공군이 춘계 공세를 벌였을 때 벌어진 전투로



인제군에 있던 한국군 제3군단이 방어에 실패하고 하진부리까지 밀렸다.







중공군 12군단, 27군단과 북괴군 5군단은 한국군 3군단을 공격하면서,



동시에 보급로인 오마치 고개를 점령했다.



(중공군 불과 1개중대 병력이 이 고개를 점령하였다 고.)







3군단은 지휘통제가 불가능한 와해 상황이 되었다.



("사단장들을 비롯한 모든 지휘관들이 지휘를 포기하고 계급장을 제거한 후



살기위해 무질서한 도피를 시작했다."는 기록도 있음.)







결국 현리에서 한국군 3군단 예하 3사단, 9사단 병력 1만9천여명이 희생됐고,



병력의 40% 가량만 복귀했다. (다른 기록엔 70%)







한국전쟁 사상 최악의 패전을 기록했다.







이 시점부터 모든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이 상실되었다.



國軍 第3軍團은 1951년 5월26일 解體되었다.



----------------------------------------------------------------------------

현리전투에 관한 글들을 읽다보니

오늘이 바로 51년전 국군 제3군단이 해체된 날이네요.



당시 지휘관은 나름의 사정과 판단이 있었겠으나

오마치고개에 돌진했더라면...

중공군 1개중대 vs 국군 1개군단

이거 제대로 한 번 붙지도 않고

3군단이 도망쳐서 게임을 포기해야 하는 형국인가요??



참 뼈 아픈 전투군요.

역사에는 if..를 대입시킬 여지가 없는지라.





우리나라의 전시작전권이 미국에 넘어가버린 계기가

바로 현리전투에서 줄행랑을 친 국군 제3군단의 혁혁한 공로였군요.



암튼,

우리나라 국군역사에 길이 남을 막장 코메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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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수 2012-05-26 18:18:00
답글

이래서 허구헌날.. 자주국방을 외치면 빨갱이, 좌파 소리나 하고.. 미군 바짓가랭이 붙잡으며.. 애고 행님여~~ 하는 신세가 된거였군요.. 참 치욕적인 역사 기록이라 생각 합니다.

이상훈 2012-05-26 19:31:26
답글

<br />
<br />
마치 임진왜란 때 일어났던 사건 얘기를 듣는것 같군요. 데자뷰 같은..<br />
<br />
<br />

p705@kornet.net 2012-05-26 19:35:36
답글

일본 육사출신 유재홍이라 합니다. 당시 월등한 화력과 군수물자에도 불구하고 지휘관들이 바로 줄행랑, 중공군은 노획한 화력으로 전력 급상승.<br />
그는 그러고도 그후 국방장관까지 지내고 자기 때문에 넘겨진 전시 작전권 환수에 반대까지 하고 있다고 합니다.

박진수 2012-05-26 19:38:51
답글

헐.. 대단한 쉐끼군요... 이런놈은 자자손손 대대로 팔로우되어.. 회자되어야 하는데..

p705@kornet.net 2012-05-26 19:56:40
답글

저 정도가 다가 아니라 정말 대단한 패전의 귀재입니다.<br />
제주 4.3사태때 민간인 학살을 명령했고 한국전쟁때 7사단장으로 패전을 거듭 결국 7사단 해체<br />
2군단장이 되어 중공국에게 전멸, 결과적으로 2사단 해체, 그뒤가 3군단 해체건.<br />
<br />
이승만땐 멍청한 군인으로 분류되 군에서 &#51922;겨났다가 박정희에 의해 <br />
다시 영예롭게 복귀하게 되었다는 군요.

박병주 2012-05-26 20:28:14
답글

거지같은 개자식 <br />
더럽게 빌붙어서 <br />
여러사람 죽였군요.<br />
박정희나 그놈이나 같은 출신이라<br />
"우리가 남이가"이런 논리가 통했군요.<br />
ㅠ.ㅠ

이석주 2012-05-26 20:47:32
답글

불패가 아닌 동방불승의 장군으로 이미 유명한 놈입니다.<br />
사병목숨 파리같이 잡아먹는 패전두꺼비였져. <br />

권윤길 2012-05-26 21:03:22
답글

원래 한국전쟁 직전 우리 군 장성을 비롯해서 국방부 장관까지 소대 이상 지휘 경험을 가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어요. 일제에서 부역했던 사람들로 구성한 국방부 장관부터 군단장, 사단장 중 일제의 군에서 가장 높았던 사람이 부식 창고 관리 장교였습니다. -_-;;<br />
반면 북한은 항일 유격대로 활동하던 자들이 군 장성을 차지하고 있었고, 중일 전쟁의 복판에서 혁혁한 전과를 이룬 조선인 사단이 통으로 들어와 있기도 했고요. 그리고 중공군

최미애 2012-05-26 21:14:18
답글

우리나라의 수많은 전쟁역사를 짚어보면 이긴 게임보다 진 싸움이 더 많습니다.<br />
의외로 6.25때 전시상황에 대해서 체계적인 자료도 부족하고,알려져있지 않은것이 많습니다.<br />
지는 전쟁이 많았던 우리나라 전쟁역사를 보며 지면서 사는 이유를 살펴 볼 필요성을 느낍니다.<br />
진짜 허술해요....<br />
<br />
p.s 본글에 51년전을 61년전으로 정정합니다.<br />
<br />

황준승 2012-05-26 21:25:55
답글

침략전쟁 보다는 방어전쟁이 훨씬 많았으니 지는 전투가 많았을 수밖에 없잖아요<br />
침략하려고 치밀한 준비를 한 군대가 이길 확률은 높겠죠<br />
자신감도 높을테고요

최미애 2012-05-26 21:48:47
답글

ㄴ현리전투에 관해 전투지경선을 핑계대는 어느글이 문득 떠오릅니다.<br />
<br />
역사적으로 긴 시간동안 숱하게 침략전이던 방어전이던 전쟁 경험을 하고도 태평한거죠.<br />
피할 수 없는 우리나라 위치에서 침략이던 방어전이던 전쟁은 붙었다 하면 이겨야 사는 게임이죠.<br />
이유가 필요없어요.패전에 대한 핑계도 무의미하구요.<br />
그 많은 패전을 경험하고도 늘 준비가 않되있었죠.<br />
<br />
<br

이석주 2012-05-26 21:56:40
답글

권윤길님 밀씀이 일리가 있고요.<br />
12.12.의 동조자였던 '차규헌'중장은 6,25 전쟁당시 거의 불패의 장교더군요. <br />
그런 인간이 박정희의 쿠데타를 지지하고 전두환의 쿠데타까지 지지한 걸 보면 패하지 않는 쪽에 서는데 일가견이 있나봐요.

p705@kornet.net 2012-05-26 21:56:42
답글

고려시대 무신정권을 제외하곤 어느시대곤 항상 문관 중심이어서 더 그랬을 겁니다.<br />
심지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전쟁 영웅들 중에도 문관 출신들이 다수....<br />
성리학적 세계관이 통치의 원리가 되었던 시대에 이순신 조차도 참으로 특이한 케이스이고 <br />
전쟁이 아니었다면 역사 어디에도 이름 한줄 못 남겼을 거라고 역사학자가 그러더군요.

박진수 2012-05-27 10:17:29
답글

그놈 완전 군에서의 마이너스 손이었군요...<br />
군에서의 쥐새끼 가튼 놈.. 거치기만 하면... 사단이며, 군단이 해체되니... ㅎㅎㅎㅎ

김용민 2012-05-27 23:06:44
답글

권윤길님 말씀이 개전 초기에는 틀리지 않았지만<br />
현리전투는 이미 전쟁이 1년여가 지난 시점이라<br />
경험부족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형편없었던<br />
지휘관의 문제가 맞다고 봅니다.<br />

정대용 2012-05-28 00:51:04
답글

더 심한 상황에 열배가 넘는 중공군 9병단(7개사단-12만명)에게 포위 된 장진호 전투에서 미해병 1사단(12,000명)은 병력과 무기를 지키거나 파괴시키면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나왔는데( 미군은 동상에 의한 피해를 포함 7천여명 사상, 중국은 4만여명 사상) , 3군단은은 적 1개중대에게 퇴로가 막혔다는 이유로 지휘관이 도망을(포위된 상황에서 예하병력들은 포위속에 두고 본인만 병력도 없고, 장비도 없는 예하부대와 연락도 안되는 곳으로 지휘

박수영 2012-05-28 01:31:47
답글

미군이 강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지금 이순간에도 축적되고 있는 실전 경험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 경험이 전사의 형태로 체계적으로 축적되어 관리되고 교육되어 강한 미군이 만들어 지는것 같습니다. 현재의 우리군도 군인이라기 보다는 국방예산을 집행하는 공무원들 되는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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