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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 이야기라고 해서 그리 재미있는 주제는 아닙니다.
그리고 글이 좀 깁니다. 글로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을 겁니다.
시간 나시면 천천히 읽어보세요. ^^
- 음력
요즘 세대들은 대부분 생일을 양력으로 쇨 겁니다.
물론, 저를 포함해 와싸다 뇐네들은 음력이겠지만요.
음력은 초승달에서 반달이 되고, 둥근 보름달을 거쳐 다시 반달, 그리고 그믐달,
이렇게 매일 변하는 달의 모양을 보고 만든 달력입니다.
달의 모양이 변하는 한 주기(음력 한 달)는 대략 29.5일입니다.
이를 '삭망월'이라고 하는데요.
달력을 보면 음력이 29일까지 있는 달이 있고, 30일까지 있는 달이 있습니다.
이게 삭망월이 딱 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 음력 1일은 어떻게 정하나?
음력 초하루에는 달을 본 분 계시나요?
봤다면 ‘뻥’입니다.
음력 1일은 '합삭일'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인데요.
여기서 '합삭'은 태양, 달, 지구가 일직선이 되는 때를 말합니다.
그런데 태양, 달, 지구가 일직선에 놓인다니,
달이 태양을 가리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태양, 달, 지구가 위에서 보나 옆에서 보나 공간적으로 완벽히 일직선에 놓이면
달이 태양을 가립니다. 이게 바로 '일식'입니다.
그런데 매달 일식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매일 태양과 달을 관찰하면 하늘에서 그 위치가 조금씩 변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건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달은 지구 주위를 공전하기 때문이죠.
이렇게 태양과 달이 하늘에서 움직이는 길을 각각 ‘황도’, ‘백도’라고 합니다. 복숭아 아닙니다.
그래서 일식은 황도와 백도가 교차하는 시점에 합삭일일 때만 일어납니다.
합삭이 되는 시각은 태양, 달, 지구가 일직선이 되는, 한 순간이기 때문에 음력 1일이라고 해도
실제 합삭이 일어나는 시각은 0시 1분일수도 있고, 23시 59분일수도 있습니다.
어찌되었건 합삭이 들어있는 양력 날이 음력 초하루입니다.
- 음력 1년과 양력 1년의 차이
앞서 얘기했듯이 음력 29일, 또는 30일까지 있습니다.
음력 열두 달을 모두 합하면 354일 밖에 안 됩니다. 양력이 365일이니 11일이 모자란 것이죠.
만약, 이런 음력을 계속 사용하면 음력 1월이 한여름이, 음력 8월이 한겨울이 돼버리는 경우도 생길 겁니다. 그래서 만든 게 ‘윤달’입니다.
매년 11일씩 모자란 것을, 대략 3년마다 음력 한 달을 더 넣어 열세 달로 만들어 양력과 맞춰주는 것입니다(정확히는 19년에 7회의 윤달을 둡니다).
- 24절기
24절기 하면 음력으로 알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24절기는 양력입니다!
음력을 양력과 비교해보면 일정하지 않고 왔다 갔다 합니다.
음력 1월 1일 설날이 양력 1월에 있기도 하고 2월에 있기도 하죠.
이러다 보니 음력만 쓰면 계절과 잘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련한 게 24절기입니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365일에 걸쳐 한 바퀴 돕니다.
지구를 기준으로 보면, 태양이 하늘의 어느 한 지점에서 시작해서 365일 동안 하늘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게 양력 1년입니다.
이때 하늘에서 태양이 지나가는 길(‘황도’라고 했죠)을 24등분 하여 각각의 지점에 위치할 때를 하나의 절기로 정한 것이 바로 24절기입니다. 한 절기에서 다음 절기까지는 각도로 15도이고 날짜로는 대략 15일입니다(이는 지구를 기준으로 한 것이고, 실제로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공전궤도를 24등분 한 것이죠).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입하, 소만, 망종......이렇게 24절기가 있습니다.
입춘, 경칩, 청명 등의 홀수 번째를 ‘절기’, 우수, 춘분, 곡우, 소만 등 짝수 번째를 ‘중기’라고 합니다. 24절기라고 부르지만, 정확히는 12절기, 12중기입니다.
이중 중기가 음력을 결정합니다. 우수가 들어간 달을 음력 1월로 시작해서, 춘분이 들어간 달은 음력 2월, 곡우는 3월, 소만은 4월...이런 식이죠.
이렇게 우리 조상들은 음력만을 사용하지 않고 양력도 함께 사용했습니다.
- 몇 월을 윤달로 정하나?
윤달을 넣는 데도 규칙이 있습니다.
앞서 중기가 들어간 달이 그 해당 중기의 음력 달이라고 했죠.
그런데 어느 음력 달은 중기가 포함되지 않는 달이 있습니다.
삭망월은 29.5일이고, 절기에서 절기까지는 대략 30일 차이가 있어서 음력 29일 다음 날인, 그 다음 달 음력 1일에 중기가 들어가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렇게 중기가 안 들어간 음력 달에 앞 달의 이름을 빌려서 윤달로 하는 것입니다.
2012년 올해는 음력 3월 다음에 음력 윤3월이 있습니다.
달력을 보면 소만이 양력으로는 5월 21일, 음력으로는 4월 1일입니다.
즉, 음력 4월 전달(윤3월)에는 입하라는 절기만 있고 중기가 없는 것입니다.
- 표준시
우리나라에서는 동쪽 끝 울릉도나 서쪽 끝 백령도나 같은 시간을 사용합니다.
우리나라 전체가 하나의 시간을 사용하죠. 이게 우리나라 표준시입니다.
그런데 정확하게 하루의 시간은 그 지역의 태양 위치를 바탕으로 해서 정합니다.
태양은 동쪽에서 떠서 하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다가(이때 위치가 정남쪽이며, 이때 시각을 ‘남중시각’이라고 합니다) 서쪽으로 집니다.
정오(12시)라고 하는 건 태양이 바로 정남쪽에 위치할 때인 ‘태양의 남중시각’을 말합니다.
이런 식으로 하면 울릉도에 태양이 정남쪽에 오는 시각과 백령도에 정남쪽에 위치하는 시각이 다르니 각 지역마다 다른 시간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 나라 안에서 서로 다른 시간을 쓰면 불편하기 때문에 통일된 하나의 시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물론, 땅덩어리가 넓은 나라에서는 여러 개의 표준시를 쓰기도 합니다. 미국은 5개의 표준시가 있죠. 중국은 그 넓은 땅덩어리에서 하나의 표준시만을 쓰고 있지만요.
표준시를 정할 때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넓은 영토에서 어디를 기준으로 할 건지요.
보통은 그 나라의 중간 지점을 지나는 경도선(‘표준자오선’이라고 합니다)을 기준으로 합니다. 우리나라는 동경 127.5도 정도가 우리나라의 중앙 경도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는 이걸 기준으로 하지 않고 동경 135도 선을 표준자오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동경 135도가 어딜까요? 예, 일본입니다.
잘 아시듯이 우리나라와 일본은 같은 시간을 씁니다. 이렇게 쓰기 시작한 건 1961년 5.16 군사쿠테타 이후부터입니다. 대한제국 때 동경 127.5도를 쓰다가 일제강점기 때 동경 135도로 강제로 바뀌고, 해방 이후에 다시 127.5도로 원 위치했습니다.
1961년에 동경 135도로 바뀐 건 군부의 의지보다는 주일미군과의 작전 편의 등을 위해 미국의 힘이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현재는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시간으로 12시 정오에 태양이 정남쪽에 오지 않습니다. 그 시각에는 동경 135도 지역의 정남쪽에 있죠. 지구가 동쪽으로 30분 정도 더 돌아가야 비로소 우리나라의 정남쪽에 해가 위치합니다.
심심할 때마다 한번씩 서머타임(summer time) 이야기가 나오곤 하는데요. 우리는 1년 내내 30분의 서머타임을 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 윤3월이 윤3월이 아닐 수도 있다?
서두가 길었습니다. 지금부터가 본론입니다. ^^;;
앞서 얘기했듯이 여기 어르신들 대부분 생신이 음력일 겁니다.
그리고 제삿날도 음력일 거고요.
설이나 추석 명절 역시 음력으로 쇱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의 지리적 위치를 기준으로 한 우리의 시간을 사용하지 못하고,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한 표준시를 씀으로 인해 음력과 윤달에 미묘한 문제가 생깁니다.
우선 올해 윤달을 보죠.
앞서 소만이 5월 21일이라고 했는데요. 소만 시각은 5월 21일 00시 15분입니다. 만약, 우리나라의 중앙경도인 동경 127.5도를 사용한다면 30분 빠른 5월 20일 23시 45분이 소만입니다. 이렇게 되면 소만이 현재의 윤3월로 가니 윤3월이 윤3월이 아닌 음력 4월이 되고, 소만이 빠진 현재의 4월이 윤4월이 되는 것입니다.
음력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올해 음력 5월 1일은 양력 6월 20일입니다. 그리고 이날 합삭 시각은 00시 02분입니다. 우리나라의 중앙경도를 기준으로 하면 6월 19일 23시 32분이 합삭 시각입니다. 즉, 합삭이 들어 있는 6월 19일이 음력 5월 1일이 되는 것입니다. 음력 5월에 생일이나 제사가 있는 분들은 하루의 차이가 나게 되는 것이죠.
- 음력을 정하는 기준을 바꾸자
윤달에는 이장을 해도 탈이 없다 하여 이장도 많이 하고, 반대로 결혼은 피하기도 합니다. 이런 건 우리 고유 풍습이고 전통이죠. 그런데 우리의 지리적, 그리고 예부터 써온 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윤3월이 윤3월이 아닌 게 돼버립니다. 1997년 설날의 경우는 2월 8일이었는데, 이날 합삭 시각은 00시 06분이었습니다. 역시 우리 시간으로는 2월 7일이어야 하죠.
표준시 자체를 바꾸려는 노력은 몇 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표준시를 바꾸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단순히 우리만 바꾼다고 되는 게 아니고, 국제적인 문제도 있고, 남북 간의 문제도 있으니까요. 다만, 음력이나 윤달을 정하는 기준은 바꿀 수 있습니다. 음력을 사용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와 중국 말고는 거의 없고, 실제 국제 관계에서 음력을 기준으로 하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요.
사실 음력을 안 쓰는 사람도 많고, 음력이 하루, 이틀 틀리다고 해서 사는 데 큰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나 표준시를 우리 의지대로, 우리의 시간을 갖지 못했고, 예로부터 전해 온 우리 전통적인 날들이 이러한 표준시 문제로 우리의 전통적인 시간과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큰 문제일수도 작은 문제일수도 있습니다. 다만, 최소한 이런 게 있다는 사실이라도 아셨으면 해서 두서없이 긴 글을 썼습니다.
읽으시니라 고생하셨습니다. ^^
참고로 이와 관련해 아고라 서명을 진행 중입니다.
공감하시면 서명 부탁드립니다. ^^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petition/read?bbsId=P001&articleId=122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