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지금 진화론 관련 글들을 보시고 피로함을 느끼시는 분들이 많을 듯 합니다. 회웜들간의 까칠하고 공격적인 언사에 불쾌감을 느끼는 분도 있을 것이고요. 토론에서 일정부분을 담당하고 가장 과격하게 상대를 몰아붙인 당사자로서, 이런 피로함과 불편함을 느끼신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 말과 함께, 왜 토론이 꼭 그런방식이어야 했는지, 제 의견에 대해서도 설명을 조금 드려볼까 합니다.
애초에 제가 자게 몇 분들과 토론을 진행한 이유는 사람들을 계몽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계몽은 우리가 더 나은 공통의 인식기반을 가지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지만, 그일에 꼭 제가 나설 필요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와싸다에는 열정을 가지고 저보다 훨씬 훌륭하게 그 일을 수행하시는 분들이 많으니까요. 저도 그런 분들의 글들을 보고 많이 배우고 계몽됩니다.
그러나 그분들과는 달리, 제가 토론을 진행하고자 한 이유는, 아는 척하는 지적 허세를 통해, 그러한 분위기를 보증삼아 신뢰감을 확보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릇된 정보를 제공하는 분들의 가면을 벗겨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이러한 지적 허세가 잘 먹힙니다. 어제 전화를 주신 준영님이 제게 강력히 피력하신 것처럼, 권위주의에 오랫동안 시달려오면서 제대로 의심하고 질문하는 버릇을 들일 기회를 교육과정에서 박탈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고 알아보는 대신, 그를듯해보이는 사람들의 권위를 통해, 답을 듣고 그것으로 자신이 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적 허세만큼 사람들에게 잘못된 정보와 태도를 가지게 하는데 큰 영향을 끼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저는 와싸다의 정감어리고 사람냄새나는 분위기를 참 좋아합니다. 거기에서 흘러넘치는 유머와, 올바르지 못한일에 비분강개하며 직접행동으로 보여주시며 그 경과들을 글로 옮겨주시는 분들의 글들을 특히 좋아합니다.
특히 권윤길님이나 박승빈님같이 유머감각이 뛰어나신 분들이 저는 매우 부럽고, 저도 흉내내려 하다가 간혹 무리수를 두곤 합니다. 아마도 유머는 타고난 재능인가보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강인권, 김준호, 이태봉님처럼, 늘 거리에서, 그리고 정의를 위한 단체에서 활동하고 개인적인 손해를 기꺼이 감수하시는 분들을 너무나 존경합니다. 그리고 이런 분들을 신뢰합니다. 제가 와싸다라는 곳에서 가장 큰 자극을 받은 것은 이런 분들을 통해서였습니다. 이분들은 저의 게으름을 꾸짖어 서울로 시위를 나가게 하고, 저의 이기심을 꾸짖어 옳은 활동에 기부하게 만든 분들이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유쾌하고 감동적인 글이 아닌, 남들을 공격하는 글을 쓰는 일은 저도 괴로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왜 하고 있을까요? 제 어줍지 않은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서일까요? 아닙니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습니다. 저는 언제나 엄청난 재능과 성실성을 겸비한 해당분야 전문가들이 늘 글을 지켜보면서 조용히 미소짓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뭐든 잘 모르는 것들에 대해 아는 척 하는것이 얼마나 부끄러운일일지에 대해서는 저보다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시겠죠.
그럼 무엇 때문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 말하기 민망한 이유를 하나 대라면, 아마 사랑 때문일 겁니다. 저는 제가 접하고 배운 학문들을 사랑합니다. 그 사랑의 이유중 가장 큰것은 그 학문들이 해당분야에 몸을 던진 진짜 전문가들의 엄청난 희생과 노력을 통해 얻어진 "정직한" 지식이라는 점에 기인합니다.
이것은 많은 학문이 동일합니다. 진화론을 포함한 생물학 전반이나 물리학, 화학같은 분야도 그렇지만, 철학이나, 사회학, 심리학, 문학 같은 인문과학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런분야에 자신의 허세를 통해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싶어하는 사기꾼들이 언제나 호시탐탐 기회를 노립니다. 전문적인 사기꾼 뿐만아니라, 자신의 교양을 대중만방에 과시하고 싶은 보통사람들도 그런 유혹을 느낍니다. 이런 사람들은 게으르고 비겁한 방법으로 진짜 장인들과 천재들이 이룩해놓은 값비싼 결과물들을 오염시킵니다. 마치 짝퉁 명품들처럼요. 차라리 짝퉁들은 진짜 정교한 모방을 통해, 전문가급의 판별노력을 요구하기라도 하죠.(학문에 비유하자면 어떤 학자가 다른 학자의 성과를 가로체는 일이겠죠 이경우도 아주 비열하지만 최소한 사기를 치는 학자가 해당분야와 대상학자의 연구를 완벽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지적허영은 이런수준에도 한 참 못미치는것이죠.) 이런 지적 허세들은 마분상자에 유닛모양을 그려놓고 스피커라고 우기는 꼴입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자신의 지적 허영을 만족시키기 위해 해당분야의 학문들을 얼마나 더럽혀왔는지 잘 알고 있고, 그런 분야를 취미로 공부해오고 있는 사람으로서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특히 인문학 분야가 더욱 그런데, 그것은 별도의 훈련없이도 누구나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학술적인 용어의 정확한 용법과 해당 학문에 대한 이해없이 자의적인 흰소리들을 늘어놓는것을 무척 혐오합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해당분야 전문가들이나 성실한 취미가들이 같이 욕을 먹기 때문입니다. 또 그 문제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일반인들의 오해를 부추키고 잘못된 지식을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쓴 글들을 검색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남들을 계몽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글을 세운 적이 없습니다. 제가 토론을 요구하거나 댓글을 적을 때는, 상대가 틀린 주장을 하는것이 확실하다는 판단이 섰을 때 뿐입니다. 이런 분들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안다고 주장한 댓가로,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사과하고 주장을 철회함으로서 댓가를 치뤄야합니다.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러나 이 가혹함이 없으면 그들은 제대로 반성하지 못하고 또 나섭니다. 그럴 사람이 아니라면 애초에 사과와 인정, 주장철회가 어렵지 않은 분들이니 가혹하달 것도 없고요.(이번 토론에서도 이 사실을 또 한 번 확인했습니다.)
저는 관심분야를 공부하는 것 말고는 그다지 열정적인 취미도, 헌신하고 싶은 분야도 없고, 그러면서도 공부를 위한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평범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솔직하고 성실하게 공부하는 것 뿐입니다. 이 방법은 단순하고 어렵지 않습니다. 아는 것은 최대한 정교하게 갈고 닦고, 모르는 것은 빨리 인정하고 질문하는 것입니다. 사람과 대화할 때 뿐 아니라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권 수에 집착하거나 모르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고 마지막장까지 읽었다고 덮는 것은 읽은 것이 아니라 그냥 글자를 본 것입니다. 저는 어디가서 책을 읽었다고 할 때, 이렇게 초벌독서를 한 것은 책의 제목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연속해서 2~3번 책을 읽고, 묵혔다가 또 읽고. 저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이래야. 이 책이 제가 가진 지식 속에 유기적으로 녹아들 수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배웠으니까요. 운동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각 구분동작을을 수천번 연습해서 연속동작으로 만들고, 그 연속동작을 매끄럽게 연결되도록 또 죽어라 연습하지 않으면 실전에서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건 바로 티가 나죠. 우리는 그런 얼척없는 짓을 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동작들을 반복합니다. 책읽기라고 해서 왜 다를까요?
어떤 책을 읽었다고 말하면, 해당분야 작가나 저작가 그 분야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며 어떤 한계를 가지는지 까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모든 저작들은 그 주변을 흐르는 무한한 맥락을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가 어떤것을 완벽하게 안다는 것은 아무리 많은 시간을 투자해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큰 흐름은 이해하고 있어야죠.
그리고 토론할 때, 자신의 주장을 보증할 수있는 근거로서 책의 내용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책의 제목을 말하는 것이 유용할 때는 이 때, 뿐입니다. 지적허영을 위해 그저 글자를 본 책의 제목을 말하는 것은, 맛도 모르는 포도주를 허영때문에 마시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려면, 차라리 좀 무리를 해서라도 명품수트와 맞춤홍창구두를 구비해서 거리로 나가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겁니다. 뭐 아는 척 하는 남자, 여자한테 별로 매력없어요. 남들은 정말로 그 학문이 좋아서 공부하고 있는데, 수트와 구두를 살 돈이 없어서 지적허영을 부린다는 것은 너무나 비참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허영을 기반으로 자신의 신념과 다른 주장을 하는 이를 자신없이 공격하는 것도 너무 민망한 일입니다. 특히 토론은 승부의 갈림보다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이라,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는 점 때문에, 더 있어서는 안되고 적극적으로 막아야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위반자들에게 철저한 자기반성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느정도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는것이, 안타깝지만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러한 토론의 결과를 공유함으로서 한 사람이 했던 노력을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쳇바퀴 도는듯한 무한반독을 피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계속해서 어떤 사람에 대한 검증이 얼추 끝나면 그사람이 계속 시비를 걸더라도, 응대하지말고 기존의 결과물들을 링크하는것이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영역에서 벗어나면, 우리는 또 서로 농담하고 유쾌하게 느슨한 시간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추가하고 싶은게 있습니다. 아직도 진화론이 가설수준의 이론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간혹 보입니다. 꼭 창조론자들이 아니더라도, 제가 평소 글을 보고 존중했던 분들 중에서도 이런 분들이 있더군요. 제가 공부한 바로도, 대를 이어 생물학을 전공하고 있는 제 외삼촌 부녀의 의견을 따라서도, 이러한 의견은 학계의 주류의견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적어도 최근까지, 진화론은 "사실에 준하는 지위를 획득한 이론"입니다. 진화론의 전제없이는 없이는 생명공학이나 유전학조차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진화론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좀 더 신중하면 어떨까요? 요즘 너무 경솔한 발언들이 자주 눈에 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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