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역사’를 읽고 느낀 점 입니다.
안동 권씨 36대 입니다.
제 부모세대인 35 대에서는 2분이 저를 위해 계시고,
그 위에 34대에서는 4분이 부모님과 저를 위해 계시고.
..........
왕건의 고려 창건을 도운 공로로 성 씨를 하사 받았다고 하는, 안동 권씨 1대에서는 2의 36승 = 128억 명의 조상이 계셔서, 결국 제가 태어 났군요. (물론 상당수의 조상이 겹치기 출연했겠지요)
그 조상들이 저를 위해서 만나 결혼하고, 수억의 정자/난자 중에서 저를 위해 특별한 쌍을 조합하고, 유전자 풀에서 후대를 위해 형질을 선택하고...
그럴 것 같지는 않네요.
제가 후대를 위해서 그런 고민이나 선택을 하고 있지 않고
또는 다른 후대를 위한 프로그래밍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 것 처럼,
저를 위해 과거에 그런 배려나 계획은 없어 보입니다.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초 울트라 천문학적인 숫자의 조상과 그 조합이 저의 탄생을 위해 필요하군요. 진화단계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역사시대 인류조상 – 선사시대 인류 – 직립원인 – 유인원 – 포유류 – 파충류 – 어류 – 단세포생물 - 지구 초기 물질 - 우주 물질 – 빅뱅 - ???
다시 안동 권씨의 역사가 시작된다면 제가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요?
다시 빅뱅이 시작된다면, 제가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우연이 똑 같이 반복되어서 다시 제가 태어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의 조상들이 부인되지는 않습니다. 이 점은 다른 면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지요)
지나가는 개미 한 마리가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하기 때문에 이 세상을 살고 있다” 라고 한다면?
우습지요. 사람이 개미와 다른 점은,
우리가 탁월한 두뇌의 능력으로 자신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어남 자체는, 사람이나 개미나 풀이나 나무 등등 전부 우연적이라고 보입니다.
자라면서 받아온 교육과정에서 우리는 나의 존재의 의미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태어남 자체에 너무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태어남 자체는 필연(미리 계획된 의도라는 측면에서)이 아니라,
이런 인연의 결과인 우연적인 것 같습니다.
결국 인생이라 함은, 우연으로 발생한 우리의 생을, 필연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