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데모라는 거
딱 세번 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세번 모두 세상을 바꾸긴 했지요.
그 첫번 째가 만 다섯살 이맘때입니다.
아주 어렸을 때이고
제 가장 오래된 기억중 하나입니다.
어머님 따라 자성대 앞 길로 나갔는데
어릴때 제눈에는 엄청 큰 길이었죠.
그 큰 길에 사람들이 가득 하고
시끄러운 소리 이리저리 몰려 가다가
갑자기 기침이나고 어머님은 재치기 하다 코피를 흘리면서 나를 붙잡고 집으로 돌아온 기억까지 납니다.
아마도 최루탄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 것이 4.19 였다는 것도 한참 뒤에야 알았습니다.
두번째는 대학 다닐 때
가을 중간고사 끝나던 날
모처럼 시내 나갔다가 장전동 본교다니는 다른과 친구들 만났습니다.
시내는 온통 시위대들 물결
나도 친구들과 함께 그들 틈에 끼어 유신타도를 외치며 이틀간 돌아 다녔습니다.
그 바로 후 거리에 탱크가 딱!!
군인들이 딱!!
학교문은 닫히고
휴학이되어 전 여행을 갔습니다. 설악산으로..
가다가 인제 쯤에서
검문소에서 헌병에게 잡혔습니다.
부산에서 온 학생이라니까 집으로 돌아 가라고 ..
안그러면 헌병대로 데리고 가겠다고 으름장을 하길래
여행도 못가고 돌아왔는 데
돌아오던날 날 박정희가 죽었습니다.
세번째는 큰애가 태어 난 두달 쯤 후입니다.
제가 다니던 병원이 부산 대청동에 있었고
그 바로 밑에 부산 카톨릭센터가 있었는데
그 쪽이 며칠째 시끌 시끌 하더니 병원까지 최루탄 냄새가 진동 .
나도 토요일 과 일요일에는 시위에 참가했습니다.
최루탄이 좀 뜸해진 평화 행진을 한 일요일에는
당시 두달 정도 된 아기를 안고 갔습니다.
그 녀석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녀석 처음 참가한 데모입니다.
부산지역에서 개헌운동을 주도하던 분이 저와 친했던 박모 신부님이어서
저와 제처 그리고 아기는 신부님과 함께 시위대 제일 앞에 서서 걸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호헌을 주장하던 자들에게서 개헌하겠다는
발표가 있었지요.
모두 부산에서였습니다.
부산은 원래 야도였습니다.
야구를 좋아하고
야당을 지지하는 도시였지요.
제가 살던곳은 박순천 같은 여성 야당지도자를 배출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지금 부산을 보면 비교하기가 좀 민망합니다.
오늘 갑자기 그날 들이 생각나서 주절 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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