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여기 계신 회원분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저와는 비교할 수 없이, 식견도 높고, 인품도 훌륭하고, 경제적인 능력까지 두루 갖추고 계실 줄로 압니다.
온갖 문제 투성이인 제가 그런 분들에게 무엇을 알려 주고 또 전하고 설득한다는 것이 한편으론 송구스럽고 코미디일 수도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조금만 관심 있게 제가 올린 글들을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수많은 철학자들과 과학자들과 종교인들, 그리고 유명인들이 그럴 듯하게 죽음에 대해 말들은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음이라는 깜깜하고 억지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동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동굴 뒤편, 또는 동굴 안쪽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 지 아무도 온전히 증거해주지 못합니다.
분명한 것은 죽음이 죽어야 할 인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고, 그 뒤편에는 영원한 세월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無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귀신들의 세상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이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 혹은 고통이 존재하는 세상일 수도 있습니다.
나이 좀 드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어릴 때는 인생이라는 테잎이 저속으로 감기다가 한창 때에는 정상적으로 감기고, 후반부로 갈수록 2배속, 3배속으로 빨리 감기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건강하고 조금이라도 오래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연의 심정일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만...
결국 죽음 뒤편의 세계는 세계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닫힌 세계라는 것입니다.
프랑스 화가 고갱이 타히티 섬의 주민들을 그린 그림들 가운데 하나가 이런 제목의 그림입니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우리라는 단어는, 나나 너 또는 너희들과는 다른 느낌의 공동체적인 따뜻함이 아주 진하게 느껴지는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서양 또는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특히 한국에서는 "우리"라는 단어는 특별히 가까운 사람들에게 많이 사용합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사용한다는 것은 그 단어에 따뜻함과 공동체의 속성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빠, 우리 엄마, 우리 형, 우리 누나, 우리 학교, 우리 회사...
"우리"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정서는 아빠가 아프면 나도 아프고, 엄마가 슬프면 나도 슬프다는 공감과 연대 의식이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의 우리라는 연대 의식을 가지고 사람들 시리즈를 올려 보려 합니다.
기독교 신학자들 가운데 가장 급진적인 진보 신학자라 할지라도...
성경의 인물 중 바울이라는 인물의 실존과 그의 서신과 말의 진실성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바울은 처음에는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자였습니다.
그렇게 기독교인들을 잡아다가 가두기 위해 가는 다마스커스의 길 위에서 햇빛보다 더 강렬하게 자신에게 비추는 빛 가운데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을 만나고서, 핍박자이고 죽이는 자에서...
예수님을 위해 핍박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처지로 바뀝니다.
그가 복음을 전하다가 예루살렘으로 가라는 성령의 계시를 받고...
가면 필연히 유대인들에 의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알고서도 예루살렘으로 가서...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후에...
유대의 최고의 통치자들인 유대 총독 베스도와 유대의 분봉 왕 앞에서
자신이 어떻게 기독교인들을 죽이고 잡아가두었으며,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는지를 설명하면서 총독과 유대왕을 전도합니다.
그 때, 유대 총독인 베스도가 이렇게 외칩니다.
"너의 많은 지식이 너를 미치게 하였도다"
바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이렇게 쇠사슬에 묶인 것 외에는 당신들도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말에는 모든 것을 가진 유대 총독이고, 유대 왕이지만,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오직 예수님이라는 바울의 따뜻하고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고 봅니다.
유명한 프랑스의 수학자 블레즈 파스칼은 자신이 은혜 받아서 회심한 증거를
평생 옷 속에 넣어 꿰멘 후에 평생 입고 다니면서 이렇게 호소합니다.
믿는 것은 도박이다,
50%대 50%의 도박이다
믿어서 천국간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도박이지만...
만일 천국 가는 일이 없을지라도 결코 손해는 아니다.
왜냐하면 믿고 죽으나 안믿고 죽으나 죽음이라는 것은 동일하니까라고 주장합니다(오래 전 본 책이라서 정확한지는 모르지만 의미는 비슷할 겁니다)
성경은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는데 돈이 제일 중요하다고 합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공기가 지상에서 10분만 사라지면, 지상에서 아무리 많은 부와 권력을 소유한 사람이라도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선화 한 포기가, 솔로몬이 가졌던 모든 부보다 가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솔로몬 사후에 애굽 왕 파라오가 유대에 침략해서 가져간 금이 수백톤에 달한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오늘날로 환산해보면 최소한 수천억은 될 것입니다.
영적인 문제도 그렇습니다.
인간들에게는 최고로 중요한 것이, 예수님에게는 한 포기 풀만도 못하듯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공기이지만, 그것이 너무도 당연히 주어지기에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듯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영혼의 구원의 문제이지만 살아가는 데 전혀 지장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전혀 무관심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올린 글들을 통해서 그 무관심을 조금이라도 관심으로 전환되고...
죽음 뒤의 영원한 세계를 좀 더 긍정적으로 맞이하게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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