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미적 전통에는 '골계'라는 것이 있지요.
보통 골계에 해당 하는 범주로 '풍자'와 '해학'을 이야기 합니다.
'웃음'이라는 말입니다.
서양의 미학적 범주와는 구분이 되는 부분이 있지만,
세세한 이야기는 뒤로하고요.
평론가라는 직업군에 속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향하여 말을 던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말을 던지는 방법은 현학적인 말 이어서는 안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설명해주고,
자신의 견해를 덧붙이기 때문에 대중의 언어로 이야기 하는 사람이야말로
훌륭한 평론가라는게 제 견해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자주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풍자'와 '해학'이지요.
어렵고 복잡해 보이는 사회적 이슈를 적당한 비유와 상징을 통해 풀어내는 것이죠.
풍자는 가벼운 공격의 개념을 내포하는 부정적 웃음이라고 보겠네요.
그래서 비아냥, 욕설, 비유, 상징등이 많이 등장합니다.
우리나라의 고전 시가에도 많이 등장하지요.
해학은 그냥 말이나 몸짓을 통한 긍정적 웃음이겠죠.
평론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 대부분 민감한 사회적 이슈에 관한 내용입니다.
긍정적 웃음을 보이며 평론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래서 풍자가 자주 쓰이죠.
김용민 후보는 풍자라는 도구를 아주 적극적으로 이용했습니다.
지금 상황으로 본다면 '과하게'라는 말을 쓰고 싶은 분들도 많아 보입니다.
나는 김용민 후보의 도구가 충분했다고 봅니다.
김용민 후보의 평론가 시절 세상을 향하여 던진 말들은
(발언의 장소와 모습이 마이너한 모습이었다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시절 그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현상들에 대한
간명하고 확실한 전달 그리고 견해였습니다.
김용민 후보의 과거시절 발언들이 화제가 되는 지금,
우리가 김용민 후보의 도구를 비난 할 때가 아니라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시절 벌어졌던 미국의 만행과 우리의 모습을 돌이켜 봐야합니다.
김용민 후보가 눈물을 보이며 사죄한다고 했을때 나는 가슴 아팠습니다.
도대체 뭘 사죄해야 하는 건가요?
그렇게 진솔하게 세상을 향하여 말을 던지는 그 사람에게 말입니다.
과연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미국의 행위와 우리의 모습이 김용민 후보의 발언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지금처럼 서슴치 않고 돌을 던질 정도로 그렇게 당당할까요?
'누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느냐?'
예수님의 말을 돌이켜 봅니다.
누구보다 진솔하게 시대 상황에 대한 문제점들을 전달하고자 노력하였고,
지금도 세상을 향하여 진심을 담은 말들을 던지는
김용민 후보를 응원합니다.
당신의 한결같은 모습이 대한민국을 바꾸고 있습니다.
시련과 고난이 사람을 키운다고 믿습니다.
목아돼 김용민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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