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10대 때, 바둑에 잠시 재미를 붙인 적이 있습니다.
집에 신문이 오면 바둑기사를 꼭 챙겨보곤 했지요.
그 때가 이른바 '조서시대'였습니다. 조훈현, 서봉수가
결승전을 맡아놓고 두던 시대죠.
조서시대 바둑기전으로는 국수전, 기왕전, 국기전 같은
한문투의 기전이 대부분이었지요. 그 시절 MBC에서는 윤
기현 9단(당시 8단), KBS에서는 노영하 9단(당시 7단)이
해설가로 인기가 괜찮았고요. 기전 본선 멤머로는 김희중
7단, 하찬석 8단 같은 분들이 활약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김인 9단, 윤기현 8단도 가끔 노익장을 과시하며 본선에 오
르기도 했죠.
어제 제가 TV리모컨을 누르다가 우연히 바둑TV를 보게 됐
는데, 2011 올레배 결승 4국 이창호(백)vs이세돌(흑)의 대국
이었습니다. 작년에 했던 대국을 다시 보여주는 것 같더라고요.
꽤 오랜만에 보는 바둑 대국이었지요. 아마추어인 제가 봐도
이창호가 확실히 유리한 대국을 실수를 거듭하더니 반집 역전
패하면서 이세돌이 타이틀을 차지한 판이었습니다.
이창호의 등장은 조서시대의 종막을 고하면서 한국바둑의 역사
를 이창호 전과 이창호 후로 나눈다 할 정도로 한국에서 뿐 아
니라 세계바둑사의 일대사건이었지요.
무관으로 전락한 이창호가 어제 이세돌에게 역전패하는 모습을
보면서 '세월'이 느껴지더군요.
이창호도 그 옛날 이창호가 아니요, 기전도 그 옛날 기전이
아니니까요. 세월 앞에 달라지지 않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하
는 상념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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