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정훈
2012-03-30
18:15:33
박정희가 자립경제형계획을 수출주도형으로 바꾸면서 모딜리아니 경제모델을 도입과 과잉설비투자 문제가 있었던거 아시죠? 게다가 생각없이 만든 정경유착의 고리는 지금 우리에게 엄청난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고. 그럭저럭 생각은 모자랐어도 청렴하거나 정치라도 잘했으면 모르겠는데, 부정부패에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라고는 그냥 유치한 일제 군국주의 장교수준. 도대체 뭘 보고 공이 과보다 많다고 하시는지. 무슨 용기로 남들의 비판을 그리 쉽게 비판하시는지? [del]
이홍엽
2012-03-30
18:17:13
용정훈님/ 개인적 경험이 아니고 보릿고개를 면한건 역사적 사실이겠죠?
그 사실을 말한거지 그것이 박정희의 공이 될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나라를 경영하는 지도자라면 당연히 해야할 일들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님처럼 다른 사람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는 부류야말도 이 사회가 지극히 경계해야할 인물이라고 생각되네요.
도대체 어떤 근거로 내가 공부도 안하고 감성적으로 주장한다는건지 이유를 설명해 주기 바랍니다.
내가 이야기하는 논점은 박정희를 지지하고 칭송하자는게 아니구요, 그래도 우리가 가진 한 역사적 인물에 대해서 좀 진지하게 비판하자는 겁니다.
그저 조롱이나하고 천박한 댓글을 달게 아니고 말입니다.
용정훈
2012-03-30
18:18:29
덧붙여 박정희의 공과 실을 따지지 않고라도 박정희의 일생은 천박하고 자기만 아는 기회주의자의 전형이었습니다. 누가 뭐래도 자기가 끌어들인 남로당 후배들을 밀고하고 자기만 살아님은건 특히 그렇고요. 같이 있으면 말도 섞기 싫은 인간. [del]
용정훈
2012-03-30
18:32:19
말이 심해서 지웠지만 보셨다니, 계속 이어나가겠습니다. 박정희를 비판해도 진지하게 비판해야 한다는 말에는 공감합니다. 그런데 공이라고 할만한게 뭐냐고요. 보릿고개가 없어진것을 박정희 치적으로 생각하고 그 인과관계를 정확하게 따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감정적임에서 비롯된 오류입니다. 야구시즌과 철새도래가 같은 시기에 일어났다고 해서, 즉 상관관계가 높다고 해서 인과관계가 성립되는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님의 답글에서는 보릿고개가 그 치세에 없어졌다는 사실만 있을 뿐 박정희의 경제정책이 그 보릿고개에 미친 영향을 적시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감정적이라고 말한 것이고요.
위의 근거들 처럼 박정희의 경제적 실책을 살펴보면 박정희의 경제적 치적이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부정적으로 평가받아야 하는데, 그에 대한 반박 없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으시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적으셔서 그렇습니다.
또, 현재의 기준으로 박정희의 경제적 실책을 평가하는것이 문제라고 칩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거 중세의 무지한 마녀사냥도 그시대의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여야할 뿐 비판할 수 없을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감정적 기억이 아니라 자료와 근거에 기대어 현재적 관점으로 판단해야 하는것입니다. 이해는 할 수 있으되 그때의 감정이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비판이 과했나요? [del]
박노균
2012-03-30
18:42:36
http://nozzang.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3&uid=52544
박정희의 경제는 .. 경제에 대한 일자무식인 군인치고는 나름대로 열심히 한 편이다.. 정도.
이것 저것 다 엉망인데.. 경제만 완전히 나름 말아먹지는 않았습니다.
이홍엽
2012-03-30
18:51:19
용정훈님/ 님이 말하고자하는 내용은 알겠습니다.
거기에 대한 제 답변은 이미 발제글에 댓글로 달은 내용과 중복되는 내용이니 다시 되풀이 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계획은 누구나 세울수 있습니다. 1960년대 이후 수 많은 제3세계국가들도 나름데로 훌륭한 계획을 세웠지만 제대로 실효를 거둔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계획도 결국은 실행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다르게 나오겠지요.
우리나라의 성공이 과연 누구때문인지는 지금도 이곳에서 논란이 되는것 같습니다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건 박정희를 칭송하거나 우상화하자는게 아닙니다. 앞에 글에서도 썼듯이 좀 진지한 비판이 되었으면 해서이지 그저 조롱이나하고 욕이나하는 댓글은 지양하자는 겁니다.
용정훈
2012-03-30
19:16:40
첫째, 경제정책에 대한 공과를 가리는 일은 진지해야 하겠지만 그의 인격을 볼 때 도저히 진지해질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조롱의 대상이 되어도 쌉니다. 심지어 저는 박정희를 위해서는 조롱도 아깝다는 생각입니다.
둘째, 윗글의 댓글로서의 이홍엽님 말씀의 요지인 자립경제형-수출주도형 전환은 이후 우리의 경제가 심하게 대외종속적인 성향을 띄게 되었고 그 이유로 일반국민들의 생활수준향상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쳤으므로 공이라고만 말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또 박정희의 성공을 주장하기위해 근거로 드신 60년대 국가들의 발전 상황에서는 그당시 한국만큼 유니크한 상황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동남아 국가들과 비교하기 위해서 공업형국가로 가기 위한 노동자들의 교육수준이 이미 그 당시 우리나라보다 높은 경쟁대상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또 그 비교대상을 전세계적으로 확대할 경우, 티토와 유고슬라비아의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당시 유고슬라비아도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며, 티토는 박정희와 비교하여 오히려 모범적이게도 자신의 권력을 해체하기까지 했습니다. 급속한 경제성장 이후 유고의 경제는 악화일로를 겪었지만 그것은 소련의 위성국가라는 한계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경제발전이라는 결과물이 어느 인물의 결단이나 지도력에 의해서 결정될 수 있는것이 아니라는, 굉장히 복합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초기의 급속한 경제성장은 권위주의 체제하에서도 쉬운 반면, 방대해진 경제규모를 유지시키는 것은 제도적 상황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알 수 있고요. 따라서 경제성장을 박정희의 지도력과 연관시키는 사고는 순진합니다. 아무리 봐도 정황상 박정희의 혜안이나 지도력이 우리 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근거를 찾을 수 없습니다. 계속 진행하시려면 근거를 제시해주시죠. [del]
진현호
2012-03-30
19:17:27
박정희의 여성 편력이야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이죠.
채홍사 노릇하던 박선호의 증언을 보면 이 사람이 대통령인지 왕인지 ??
박통이 그 때 안 죽고 명이 길어 한 20년 더 해먹었다고 생각을 하면 모골이 송연합니다.
황준승
2012-03-30
19:32:59
미국에서는 경제의 주기가 민주당과 공화당의 집권주기와 비슷한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공화당이 똥을 싸질러놓았는데 민주당이 욕들어가면서 똥을 힘겹게 치워놓고 경제를 제대로 된
궤도에 올려 놓으면,
민주당 집권기간동안 경제가 어려웠다면서 국민들은 공화당을 선택하게 되고,
공화당은 민주당이 닦아놓은 경제의 토대위에서 마치 자신들이 잘해서 경제가 호황인 것처럼 행세한다죠
즉, 공화당 집권시기에 경제가 좋았다는 단지 그 사실 하나만으로 공화당이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용정훈
2012-03-30
19:50:10
또 이홍엽님의 주장이 사실과 다른 것이, 박정권도 장면정권처럼, 수입대체를 통한 자립경제정책을 추구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민족주의자라는 평가를 받은 측면이 있고요.그러나 미국의 경제관료들은 중공업위주의 수입대체산업이 아니라 경공업위주의 수출주도 산업이 맞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켰습니다. 미국이 ""우리가 먹여줄테니 가만히 있어라" 라고 했다는 이홍엽님의 주장의 근거가 궁금합니다. 이홍엽님의 주장과 다르게 오히려 박정희는 장면정권의 계획을 그대로 끌고 갈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미국의 요구에 의해서 수정한 것입니다. 미국의 요구는 한국을 대미경제종속적인 위치에 놓기 위해서였고요.
다시 말하지만 주장은 신뢰할 수있는 기록과 데이터를 근거로 해야 합니다. 감정과 풍문이 아니고요. 이에 대해 이홍엽님의 책임있는 답변을 바랍니다. 제가 위험한 사람인가요? 아니면 이홍엽님이 위험한 사람인가요?
이쯤 되면 누가 감정적이고 누가 사실에 근거한 주장을 했는지 어느정도 판단이 서지 않는지요? [del]
진현호
2012-03-30
19:56:45
뭐 간단하게 생각하면 부정부패의 원흉인 자유당 시절 이승만 정권을
국민들이 일어나서 4.19로 뒤집어 놓으니 과도 정부를 거쳐 장면 내각이 들어섰고
그 장면 내각을 만만하게 보고 총과 탱크를 앞세워 5.16쿠데타를 일으킨게 박정희죠.
시작부터가 저런데 뭔 놈의 공이 많아봐야 얼마나 많다고?
그리고 끝은 평생 해쳐먹고 싶어서 3선 개헌을 거쳐 유신 개헌 까지 하고는
안가에서 여대생 끼고 술쳐먹다 골로 갔네요.
이홍엽
2012-03-31
00:30:10
용정훈님/ 나갔다가 들어와 보니 몇가지 댓글이 달렸군요, 이런 문제로 서로 근거를 제시하고 생산적인 토론이 되면 참 좋겠으나 안타깝게도 그렇지가 못한것이 인터넷에서의 댓글들이 아닌가 합니다.
님이 가진 여러 의문점을 특히 박정희의 경제정책에 관하여는 인터넷에 수많은 자료들이 차고 넘치니 한번 검색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님이 사실을 모른다고 해서 제가 일일히 님이 모르는 사실을 가르쳐드릴 의무는 없겠지요.
님의 주장은 일견 맞는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전혀 사실관계가 다른 주장을 하고 있으니 먼저 첫번째 오류입니다.,
첫째 "조롱의 대상이 되어도 쌉니다. 심지어 저는 박정희를 위해서는 조롱도 아깝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인식을 가진분과 과연 정상적인 토론을 가진다는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둘째 장황하게 쓰셧습니다만 님의 글들은 정책의 부작용을 인정하지 않는 공격을 위한 근거로만 활용하기에 그저 님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에 불과한 글들을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됩니다.
먼저 대외종속적인 수출주도형 경제정책때문에 일반국민들의 생활수준향상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쳤다라는 님의 주장은 님의 경험인가요? 아니면 박정희에 대해 비판적인 학자의 견해인가요? 과연 장면이 기획했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실제로 이행되었다면 현재의 대한민국의 위치가 가능하다고 믿는지 궁금하네요. 장면정권 당시 아니 이미 이승만정권 당시 부흥부에서 계획해서 이승만에 의해 거부된 경제개발계획은 계획이라는 단어때문에 사회주의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이승만에 의해서 거부당하게 됩니다. 그후 장면정권시절 정권이 바뀌었지만 결국 공무원은 그대로이니 당시의 계획을 장면정부에서 추진했던것이고 그 내용이 어떻고 저떻고 세부적인 내용은 별개로 하더라도 결국 박정희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 그 추진과정에서 내용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당시 관련자들의 회고록이 남아있으니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님이 아는게 전부가 아니라 사실이 중요한 겁니다.
또한 님이 당시의 우리나라와 비교해서 발전한 나라가 있는지 근거를 대보라는 내용에 대해서 여러가지를 써놓았는데 죄송하지만 별로 와닿는 내용이 없어서 그냥 패스하겠습니다.
님이 단 두번째 댓글은 제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몇가지를 써 놓으셨는데 그 또한 사실과 다르게 여러가지를 써놓으셨네요. "박정권도 장면정권처럼, 수입대체를 통한 자립경제정책을 추구했습니다" 처음에는 박정희정권에서도 최초에 입안된 계획을 추진했었지만 그 문제점을 깨닫고 정책의 골간을 변경하게 됩니다. 그래서 정책의 주가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추구한게 아니고 내용이 완전히 다릅니다. 이 역시 당시 기록과 회고록에 남아 있으니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님이 두번째 댓글에서 단 내용은 우선 앞뒤가 맞지 않으니 뭐라고 반박해야 하는지 어이가 없네요.
"미국의 경제관료들은 중공업위주의 수입대체산업이 아니라 경공업위주의 수출주도 산업이 맞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켰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형편은 제대로된 양말공장조차 거의 없던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님의 말이 맞다면 당시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포함된 상공부의 오원철이 집어넣은 화학공업 5개년계획은 어디서 나온건지 묻고 싶네요. 모든게 순서가 있고 뼈대가 있어야 제대로 된 집을 짓는것 아닌가요? 이후에 진행된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과정은 님이 주장하는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았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박정희는 장면정권의 계획을 그대로 끌고 갈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미국의 요구에 의해서 수정한 것입니다. 미국의 요구는 한국을 대미경제종속적인 위치에 놓기 위해서였고요" 님의 추론인지 뭔지는 모르겠으나 미안하게도 그후의 상황은 님의 주장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됩니다. 역시 말이 앞뒤가 다르니 뭐가 뭔지 잘 이해가 되지를 않네요. 미국의 요구에 의해서 애초 장면정부하의 자립형 자주적 공업화정책을 수출 주도형 산업화전략으로 바꿨다는 건가요?
오히려 미국은 자신의 우리나라에 대한 대외원조에서 소위 산업화를 위한 기간시설건설이나 공장건설에는 반대를 했습니다. "우리가 먹여줄테니 가만히 있어라" 라는 말은 제가 지어낸 창작 소설이 아니고요, 당시 실무를 담당했던 정책당국자의 회고록에서 읽은 내용이니 역시 수고스럽겠지만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님이 주장하는 감정과 풍문이라는 글에 대해서는 그대로 돌려드리고 싶네요.
기본적으로 토론이라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나의 주장이 잘못일 수 도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해야 함에도 님은 댓글에 써놓은데로 박정희를 조롱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으니 제대로된 대화가 될수가 없습니다. 이렇게라도 댓글을 다는 이유는 님이 길게 댓글을 달았기에 그냥 예의차원에서 몇자남깁니다.
제 주장의 요지는 본문의 마지막 댓글에 정확하게 남겨놨으니 보는 그대롭니다.
용정훈
2012-03-31
01:31:00
여전히 주장만 있고 근거는 없군요. 출처가 없는 글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지요? 저는 인터넷자료따위를 가지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책을 통해 얻는 자료에요.
지금도 옆에 정일용, 임휘철(한길사판 한국사)와 전재호(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의 논문과 책을 펴놓고 참조하고 있습니다. 이 글들은 수많은 레퍼런스에 근거해서 쓰여진 글들입니다.
위의 대한정책에 대한 기술은 미국케네디 정부의 Presidental Task Force on Korea의 자료입니다. "국가재건회의에서 일했던 이진수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들이 기존자료를 이용하고 구절을 바꾸어 최고회의 이름으로 계획을 추진했으며, 내용도 변하지 않아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전재호 2000. p68)
"은행국유화처럼, 박정권의 독자적인 안도 있었기때문에, 민주당 안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박정권의 제1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은 일부 그들의 독자적인 정책도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 민주당안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안은 나중에 수정됨으로써, 현실적으로 한국경제성장의 방향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위의 책 ,p68)
"초기 박정권의 경제정책에 참여했던 인물인 박희범 교수는 후진국에서 경제적 민족주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내포적 공업화를 통한 '수입 대체전략'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중략)....미국정부와 관료들은 한국의 산업 발전 단계가 아직 중공업 위주의 수입대체산업을 육성할 단계에 이르지 못했고, 재원이 부족하고 내수시장이 협소하기때문에 수입대체 산업화보다 수출주도 산업화가 적절하다고 믿고 있었다. ...(중략)...1964년2월에 발표된 제1차 보완계획은 당연히 미국정부와 관료들의 이런 생각을 반영하고 있었다....(중략)....결국 박정권 내 초기 경제적 민족주의자들의 의도와는 달리 제1차 계획은 점차 신고전파 학자들이 주장하는 수출주도형 산업화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물론 이를 박정권의 반민족적인 성격때문으로 분석할 수도 있겠지만 , 그보다는 박정권의 정책이 이미 미국과 세계 자본주의의 체제의 틀이라는 구조속에 편입되어있기 때문에 불가항력적으로 주어진 것이 타당할 것이다.(위의 책 p69~74)
이정도면 1. 박정권이 실제로 독창적인 계획을 세운게 아니라 민주당안을 베꼈고, 2.몇가지 독자안을 추가했지만 차후 수정을 통해 실제적인 효과가 없었으며, 3.그마저도 미국과의 갈등에서 미국의 주장이 관철되어 결국차후 미국의 의도대로 움직였다는 것을 주장하기 충분한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이해를 돕기위해 풀어 설명하자면, 1.박정권은 내포적 공업화를 통한 수입대체를 중점으로 추진하면서, 수출산업에도 관심을 보였으나 2. 기계, 금속, 조선, 등의 생산수단 생산이 아닌, 시멘트, 정유, 비료등의 기간산업, 즉 수입대체효과를 노릴 수 있는 산업에 집중함으로써 내포적공업화를 통한 수입대체전략을 채택한 것을 명확히 알 수 있으며(만약 처음부터 수출주도형을 염두해뒀더라면 생산설비부문에 집중했어야 논리적으로 맞죠),3. 미국의 압력에 의해 경제정책을 전환했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이러한 자신들의 주장을, 채권단 심사, 차관심사,이전 합의된 지원보류등의 방법을 통해 관쳘시켰습니다. 미국의 판단대로 초기에 경공업중심의 수출주도형 발전방향을 따르는 것이 합리적인 상황에서 박정권은 명료한 계획없이 내포적 공업화를 추진하다가 거부당하고 미측의 압력에 굴복했던 것입니다. 상황이 이런데, 박정권이 무슨 독자적이고 실질적인 효과를 거뒀습니까? 정확하고 논리적인 계획도 없이 그저 우왕좌왕 하다가 미국의 계획에 편입된 것이라고 보는게 정확하지 않습니까?
이 정황에 관해 더 많은 자료들을 원하신다면 더 적어드릴 수도 있고, 차후 미국의 대한정책의 변화에 따라 박정권의 경제정책이 변화한 것에 대해서도 자료를 올려드릴 수 있습니다.
이홍엽님이 저에게 남이 모르는 사실을 일일히 가르쳐드릴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 주장의 근거를 확실히 하기 위해 출전을 밝혔습니다. 출전을 밝히는 이유는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 주장의 신뢰성을 강조하기 위한것입니다.
또 저는 박정희의 인격이 조롱도 아깝다고 했지, 박정권의 경제정책이 진지한 토론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제 주장에도 "첫째 "조롱의 대상이 되어도 쌉니다. 심지어 저는 박정희를 위해서는 조롱도 아깝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인식을 가진분과 과연 정상적인 토론을 가진다는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하신 것은 오독때문인가요? 아니면 일부러 제 주장을 왜곡하기 위해서 그러신 건가요?
이제 이홍엽님 차례네요. 서로 끝까지 해보고 책임지는 모습 보이죠? 저 내일 오전에 산소다녀와야 하니 시간 충분하실 겁니다. 저녁에 글 확인하겠습니다.
그리고 주장을 하실 때는 인터넷에 떠도는 풍문따위가 아닌, 제대로 된 레퍼런스를 밝힐 수 있는 출전을 제시바랍니다. 학자들의 주장이나 연구를 언급하셨는데 이홍엽님이 어떤 학자들의 어떤 주장들을 근거로 들고 나오실지, 꽤나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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