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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한국근현대사] 전두환이 말하는 박정희의 허구 = 전두환의 자랑 2가지
살인마전두환이 자랑하는 2가지가 있다.
1. 최초로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바로 자신의 집권기간 중 대한민국 유사 이래 최초로 무역흑자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출강성대국 "경제 '하나만'은 잘했다"는 박정희는 뭥미?
일본으로부터 식민지피해배상금 최소 12억불 손해
(장면내각에서 18억불 요구, 일본은 12억불 제시하였으나,... 박정희는 꼴랑 3억불 받고 혼자서 지 맘대로 역사청산... 아직도 일본이 큰소리치는 이유, 정신대할머니들이 평생 시위하여도 10원 한닢도 보상못받는 이유)
18년 장기독재집권기간중 233억불 적자,
18년 장기독재집권기간동안 겨우 GDP 순위 1단계 올라갔을 뿐,
말기에 국가부도 - 전두환이 일본에 40억불 빌려 겨우 수습
2. 최대의 쌀 생산량을 이룩하였다.
1982년 봄 청와대 오찬 대담에서 전두환이 그날(출입 기자단 대담) 한 말중에 이런 얘기가 있었다.
'올해 쌀 생산량이 3,500만섬을 약간 넘겼는데, 이게 사실 사상 최대의 수확량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해에 미국으로부터 부족분을 수입해와야 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누구나 아는 바에 따르면 77년 박정희독재정권 발표의 쌀 수확량은 사상 처음으로 4000만 섬을 넘겨 해외(인도네시아)에 수출까지 하지 않았던가!
전두환의 계속되는 설명(일부는 중앙일보 자료 참조) -
73년부터 박정희는 신년초만 되면 전국의 도지사들을 청와대로 호출해서 우격다짐을 늘어놓았다.
그는 도지사들에게 매년 쌀 생산량을 10%이상씩 획기적으로 증산 시키라고 지시했다. 만일 목표를 달성치 못할 경우엔 책임을 지고 옷을 벗으란 위협을 곁들이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것을 주문했다. 이에 걱정을 한아름 안고 돌아간 도지사들은 관할 지역의 시.군수들을 소집해서 박정희가 자신들에게 지시한 내용을 앵콜 방송을 했다.
농업 생산량이 일시적으로 획기적인 증가를 할 수는 있어도, 거의 동일한 재배지에서 매년 10%씩 증산을 한다는 것은 농업경제의 기본도 모르는 무식한 소리였다. 오로지 군대만 믿고 설치는 것들의 대가리에서나 나올 법한 구상이었지만, 시키는 대로 깔 수밖에 없었던 시.군수들은 무식한 묘법을 짜내기에 이르렀다.
대개 지방 관리들의 임기는 보통 1~2년 정도에 불과했다. 자신의 임기만 적당히 채우고 책임은 후임자에게 떠넘기는 기막힌 아이디어가 당시의 지방관리들의 잔머리에서 나왔다. 즉, 되든 안되든 매년 10%씩의 증산량을 허위로 보고 하고 자신은 다음해에 다른 임지나 직책을 받아 튀어 버리면 된다는 술 수였다. 이를 도지사들이 다시 써먹었다.
이렇게 조작된 허위 통계는 결국 74년부터 77년까지 한국의 쌀 생산량이 단위 면적당 세계 최고수준이었던 스페인을 제치고 기적적인 증산을 이룩하였다. 77년 마침내 4000만섬을 달성하고 온 나라는 관제 축제에 휩싸였다. 이제부터 정부는 새로운 문제로 골치를 앓아야 했다. 항상 보릿고개로 고생하던 한민족이 어느날 갑자기 남는 쌀을 어떻게 처분하느냐는 즐거운(?) 고민이었다. 때마침 78년도 인도네시아에 기근이 발생해 한국 정부는 염가로 우방국에 쌀을 수출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그해 말에 쌀값이 폭등하기 시작하고 시장에선 쌀을 찾아보기 힘들어 지게 되었다. 놀란 정부는 세밀한 점검을 하기 시작했고, 막대한 쌀이 부족하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부랴부랴 미국에 특사를 파견해서 쌀 생산지의 미 의원들을 붙들고 한국에 긴급히 쌀이 수출될 수있도록 해달라고 통사정을 해야했다.물론 국민들이 알세라 언론을 단속하면서 몰래 쌀을 들여와야했다.
전두환은 이 부분에서 마지막 말로 끝맺는다. 당시(77년도)의 쌀 수확량은 사실은 3,300~400만섬 정도로 올해(82)보다 더 적었다고.
중앙일보엔 당시 UN에선 한국측이 허위로 날조된 통계를 제출한다고 비난했다고 한다.
[부록]
<조갑제도 밝히는 박정희의 부정축재
인혁당 사형집행은 박정희 지시 - 제임스시노트 신부
제임스시노트 신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군사정권이 장기 집권했던 칠레나 브라질은 지금 과거사 청산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데, 왜 한국은 아직 군사독재정권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나요?”
함석헌 선생이 말하였다.
"5.16쿠데타는 분명 우리 역사에 와서는 안 될 일제강점기 친일(=부일반민족매국행위)로 먹고 살았던 못된 군인들이 저질은 정치권력의 도적질이었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18년,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최봉환님께서 2012-03-30 13:40:26에 쓰신 내용입니다
: 아마 와싸다들어 오시는 분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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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먹을까봐 기분상할까봐 일부러 조용히 하고 계시는 제목과 같은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많을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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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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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서 큰틀에서 보면 좋은 대통령이다라는 식의 평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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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서 큰틀에서 보면 독일을 부국 강병으로 이끌었던 히틀러도 좋은 사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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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라는것은 그 시대 상황을 고려 해야 맞습니다.
: 그런데 그와 동시에 세세한 업적의 공과 과 그리고 그 이후의 여파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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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시대 강제 부역한 사람이나, 무서워서 조용히 따르던 사람 욕하는 사람이 와싸다에 몇분이나 있을지 궁금합니다.
: 혈서쓰면서 충성맹세나 하는 사람은 그런 범주가 아니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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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밖에도 세세히 열거하면 끝도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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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만 이승만 퇴진후 정상적인 민주주의 절차가 진행될 수 있었던 상황을
: 자기가 볼때 정치력이 부족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쿠데타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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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까지는 그렇다 쳐도. 단칸 셋방에 살던 그가 남긴 유산이 어마어마합니다.
: 모두 비리라고 봐도 되겠지요. 어디로보나 나라위해 몸바친것이 아닌 일신을 위한 것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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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기때문에 사회적 상황을 고려한다고 해도, 집권의 목적부터 좋게 볼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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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뿐만 아닙니다.
: 경제개발 5개년 계획 흔히 박정희의 공으로 알고 있지만, 장면내각에서 다 해놓은 공을 가로챈 경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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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속도로 건설.. 흔히 반대 했다고 알고 있지만, 반대가 아닌 진행상의 문제를 지적했다고 봐야 합니다. 남북대신 동서를 위주로 해야 된다던가, 기간/ 물량등에 대한 반대였다고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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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서울-부산으로 우리나라 경제가 집중화를 격는 원인이 경부고속도로라고 보는 입장도 있을 정도 입니다. 국토균형개발을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그걸 망친 장본인이기때문에 문제점을 지적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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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밖에도 하나하나 집어보면 많은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그런 문제를 총합해서 보니 나쁜 대통령이라고 하는겁니다.
: 일부 작은 문제가 아니라. 공보다 과가 많다고 볼지, 과보다 공이 많다고 볼지는 이러한 세부 사항들을 다 따져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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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당시 발전에 기여했으므로.. 이 한마디로 끝날 간단한 작업도 아닐뿐더러, 그걸로 용서될만큼 가벼운 일만 한건 더더욱 아닙니다. 구체적인 평가과 사과 그리고 공까지 두루 검토 해야 되는 상황에서 맥락적에서 보니 나쁜건 아니다라고 일축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음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