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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과 조갑제도 말하는 박정희의 경제허구와 부정축재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2-03-30 16:49:06
추천수 2
조회수   850

제목

전두환과 조갑제도 말하는 박정희의 경제허구와 부정축재

글쓴이

이태봉 [가입일자 : 2004-10-30]
내용
Related Link: http://board.wassada.com/iboard.asp
[펌, 한국근현대사] 전두환이 말하는 박정희의 허구 = 전두환의 자랑 2가지

살인마전두환이 자랑하는 2가지가 있다.

1. 최초로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바로 자신의 집권기간 중 대한민국 유사 이래 최초로 무역흑자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출강성대국 "경제 '하나만'은 잘했다"는 박정희는 뭥미?

일본으로부터 식민지피해배상금 최소 12억불 손해
(장면내각에서 18억불 요구, 일본은 12억불 제시하였으나,... 박정희는 꼴랑 3억불 받고 혼자서 지 맘대로 역사청산... 아직도 일본이 큰소리치는 이유, 정신대할머니들이 평생 시위하여도 10원 한닢도 보상못받는 이유)
18년 장기독재집권기간중 233억불 적자,
18년 장기독재집권기간동안 겨우 GDP 순위 1단계 올라갔을 뿐,
말기에 국가부도 - 전두환이 일본에 40억불 빌려 겨우 수습


2. 최대의 쌀 생산량을 이룩하였다.

1982년 봄 청와대 오찬 대담에서 전두환이 그날(출입 기자단 대담) 한 말중에 이런 얘기가 있었다.

'올해 쌀 생산량이 3,500만섬을 약간 넘겼는데, 이게 사실 사상 최대의 수확량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해에 미국으로부터 부족분을 수입해와야 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누구나 아는 바에 따르면 77년 박정희독재정권 발표의 쌀 수확량은 사상 처음으로 4000만 섬을 넘겨 해외(인도네시아)에 수출까지 하지 않았던가!


전두환의 계속되는 설명(일부는 중앙일보 자료 참조) -

73년부터 박정희는 신년초만 되면 전국의 도지사들을 청와대로 호출해서 우격다짐을 늘어놓았다.

그는 도지사들에게 매년 쌀 생산량을 10%이상씩 획기적으로 증산 시키라고 지시했다. 만일 목표를 달성치 못할 경우엔 책임을 지고 옷을 벗으란 위협을 곁들이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것을 주문했다. 이에 걱정을 한아름 안고 돌아간 도지사들은 관할 지역의 시.군수들을 소집해서 박정희가 자신들에게 지시한 내용을 앵콜 방송을 했다.

농업 생산량이 일시적으로 획기적인 증가를 할 수는 있어도, 거의 동일한 재배지에서 매년 10%씩 증산을 한다는 것은 농업경제의 기본도 모르는 무식한 소리였다. 오로지 군대만 믿고 설치는 것들의 대가리에서나 나올 법한 구상이었지만, 시키는 대로 깔 수밖에 없었던 시.군수들은 무식한 묘법을 짜내기에 이르렀다.
대개 지방 관리들의 임기는 보통 1~2년 정도에 불과했다. 자신의 임기만 적당히 채우고 책임은 후임자에게 떠넘기는 기막힌 아이디어가 당시의 지방관리들의 잔머리에서 나왔다. 즉, 되든 안되든 매년 10%씩의 증산량을 허위로 보고 하고 자신은 다음해에 다른 임지나 직책을 받아 튀어 버리면 된다는 술 수였다. 이를 도지사들이 다시 써먹었다.

이렇게 조작된 허위 통계는 결국 74년부터 77년까지 한국의 쌀 생산량이 단위 면적당 세계 최고수준이었던 스페인을 제치고 기적적인 증산을 이룩하였다. 77년 마침내 4000만섬을 달성하고 온 나라는 관제 축제에 휩싸였다. 이제부터 정부는 새로운 문제로 골치를 앓아야 했다. 항상 보릿고개로 고생하던 한민족이 어느날 갑자기 남는 쌀을 어떻게 처분하느냐는 즐거운(?) 고민이었다. 때마침 78년도 인도네시아에 기근이 발생해 한국 정부는 염가로 우방국에 쌀을 수출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그해 말에 쌀값이 폭등하기 시작하고 시장에선 쌀을 찾아보기 힘들어 지게 되었다. 놀란 정부는 세밀한 점검을 하기 시작했고, 막대한 쌀이 부족하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부랴부랴 미국에 특사를 파견해서 쌀 생산지의 미 의원들을 붙들고 한국에 긴급히 쌀이 수출될 수있도록 해달라고 통사정을 해야했다.물론 국민들이 알세라 언론을 단속하면서 몰래 쌀을 들여와야했다.

전두환은 이 부분에서 마지막 말로 끝맺는다. 당시(77년도)의 쌀 수확량은 사실은 3,300~400만섬 정도로 올해(82)보다 더 적었다고.

중앙일보엔 당시 UN에선 한국측이 허위로 날조된 통계를 제출한다고 비난했다고 한다.


[부록]
<조갑제도 밝히는 박정희의 부정축재

인혁당 사형집행은 박정희 지시 - 제임스시노트 신부
제임스시노트 신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군사정권이 장기 집권했던 칠레나 브라질은 지금 과거사 청산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데, 왜 한국은 아직 군사독재정권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나요?”

함석헌 선생이 말하였다.
"5.16쿠데타는 분명 우리 역사에 와서는 안 될 일제강점기 친일(=부일반민족매국행위)로 먹고 살았던 못된 군인들이 저질은 정치권력의 도적질이었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18년,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최봉환님께서 2012-03-30 13:40:26에 쓰신 내용입니다
: 아마 와싸다들어 오시는 분들중
:
: 욕먹을까봐 기분상할까봐 일부러 조용히 하고 계시는 제목과 같은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많을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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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합니다.
:
: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서 큰틀에서 보면 좋은 대통령이다라는 식의 평가는
:
: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서 큰틀에서 보면 독일을 부국 강병으로 이끌었던 히틀러도 좋은 사람이 됩니다.
:
: ---------------
:
: 평가라는것은 그 시대 상황을 고려 해야 맞습니다.
: 그런데 그와 동시에 세세한 업적의 공과 과 그리고 그 이후의 여파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
: 일제시대 강제 부역한 사람이나, 무서워서 조용히 따르던 사람 욕하는 사람이 와싸다에 몇분이나 있을지 궁금합니다.
: 혈서쓰면서 충성맹세나 하는 사람은 그런 범주가 아니라고 봅니다.
:
: 그밖에도 세세히 열거하면 끝도 없겠지요.
:
: 다만 이승만 퇴진후 정상적인 민주주의 절차가 진행될 수 있었던 상황을
: 자기가 볼때 정치력이 부족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쿠데타를 했습니다.
:
: 거기까지는 그렇다 쳐도. 단칸 셋방에 살던 그가 남긴 유산이 어마어마합니다.
: 모두 비리라고 봐도 되겠지요. 어디로보나 나라위해 몸바친것이 아닌 일신을 위한 것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
: 그렇기때문에 사회적 상황을 고려한다고 해도, 집권의 목적부터 좋게 볼수가 없습니다.
:
: 그뿐만 아닙니다.
: 경제개발 5개년 계획 흔히 박정희의 공으로 알고 있지만, 장면내각에서 다 해놓은 공을 가로챈 경우 입니다.
:
: 고속도로 건설.. 흔히 반대 했다고 알고 있지만, 반대가 아닌 진행상의 문제를 지적했다고 봐야 합니다. 남북대신 동서를 위주로 해야 된다던가, 기간/ 물량등에 대한 반대였다고 봐야 합니다.
:
: 지금 서울-부산으로 우리나라 경제가 집중화를 격는 원인이 경부고속도로라고 보는 입장도 있을 정도 입니다. 국토균형개발을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그걸 망친 장본인이기때문에 문제점을 지적하는 겁니다.
:
: 그 밖에도 하나하나 집어보면 많은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그런 문제를 총합해서 보니 나쁜 대통령이라고 하는겁니다.
: 일부 작은 문제가 아니라. 공보다 과가 많다고 볼지, 과보다 공이 많다고 볼지는 이러한 세부 사항들을 다 따져 봐야 합니다.
:
: 그 당시 발전에 기여했으므로.. 이 한마디로 끝날 간단한 작업도 아닐뿐더러, 그걸로 용서될만큼 가벼운 일만 한건 더더욱 아닙니다. 구체적인 평가과 사과 그리고 공까지 두루 검토 해야 되는 상황에서 맥락적에서 보니 나쁜건 아니다라고 일축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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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엽 2012-03-30 17:42:13
답글

맞습니다. 태봉님이 올린 자료외에 수많은 부정부패와 허구,날조가 있었죠.<br />
하지만 저는 기억합니다. 어찌되었건 1960년대는 당장 다음날 끼니거리가 걱정이었던 시절이었고 제가 학창생활을 하던 1970년대까지도 보릿고개가 존재했었습니다. 같은반 급우들중에 도시락을 싸오지 못해 굶는 친구들이 있던 정말 어려웠던 시절입니다. 어떤분은 발제글의 댓글에서 박정희를 옹호하는 사람들을 돈만 아는 부류로 매도하는데요, 사람이 먹는 문제도 해결을 못

이태봉 2012-03-30 18:03:13
답글

이홍엽님...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br />
지금까지 수십년간 박정희 우상화에 공치사하기에 바빴습니다.<br />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수십년간은 박정희가 저지른 잘못이 이야기되어야 그나마 좀 균형이 맞는 겁니다.<br />

정대용 2012-03-30 18:06:42
답글

60년대 끼니를 걱정하던 보릿고개를 극복한 것은 어쩌면 박정희 공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도 언급되어 있다시피, 그 기본 계획은 장면정부에서 이미 계획되고 실행되고 있던 것들을 거의 그대로 차용한 것들이 대부분 이었다는 것이죠. 즉, 박정희가 아니어도 박정희가 차용한 장면정부의 발전계획대로 진행되었다면, 보릿고개는 없어지게 되는 상황 이었다는 것이죠. <br />
이 이야기를 들은 지인이 하는말이 " 실컷 기획안 만들어 놓고 시작하

용정훈 2012-03-30 18:15:33
답글

박정희가 자립경제형계획을 수출주도형으로 바꾸면서 모딜리아니 경제모델을 도입과 과잉설비투자 문제가 있었던거 아시죠? 게다가 생각없이 만든 정경유착의 고리는 지금 우리에게 엄청난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고. 그럭저럭 생각은 모자랐어도 청렴하거나 정치라도 잘했으면 모르겠는데, 부정부패에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라고는 그냥 유치한 일제 군국주의 장교수준. 도대체 뭘 보고 공이 과보다 많다고 하시는지. 무슨 용기로 남들의 비판을 그리 쉽게 비판하시는지?

이홍엽 2012-03-30 18:17:13
답글

용정훈님/ 개인적 경험이 아니고 보릿고개를 면한건 역사적 사실이겠죠? <br />
그 사실을 말한거지 그것이 박정희의 공이 될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나라를 경영하는 지도자라면 당연히 해야할 일들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br />
님처럼 다른 사람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는 부류야말도 이 사회가 지극히 경계해야할 인물이라고 생각되네요.<br />
도대체 어떤 근거로 내가 공부도 안하고 감성적으로 주장한다는건지 이유를 설명해 주기 바랍니다.<br

용정훈 2012-03-30 18:18:29
답글

덧붙여 박정희의 공과 실을 따지지 않고라도 박정희의 일생은 천박하고 자기만 아는 기회주의자의 전형이었습니다. 누가 뭐래도 자기가 끌어들인 남로당 후배들을 밀고하고 자기만 살아님은건 특히 그렇고요. 같이 있으면 말도 섞기 싫은 인간.

용정훈 2012-03-30 18:32:19
답글

말이 심해서 지웠지만 보셨다니, 계속 이어나가겠습니다. 박정희를 비판해도 진지하게 비판해야 한다는 말에는 공감합니다. 그런데 공이라고 할만한게 뭐냐고요. 보릿고개가 없어진것을 박정희 치적으로 생각하고 그 인과관계를 정확하게 따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감정적임에서 비롯된 오류입니다. 야구시즌과 철새도래가 같은 시기에 일어났다고 해서, 즉 상관관계가 높다고 해서 인과관계가 성립되는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님의 답글에서는 보릿고개가 그 치세에 없어졌다는

pnkbs@chollian.net 2012-03-30 18:42:36
답글

http://nozzang.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3&uid=52544<br />
<br />
박정희의 경제는 .. 경제에 대한 일자무식인 군인치고는 나름대로 열심히 한 편이다.. 정도.<br />
이것 저것 다 엉망인데.. 경제만 완전히 나름 말아먹지는 않았습니다.

이홍엽 2012-03-30 18:51:19
답글

용정훈님/ 님이 말하고자하는 내용은 알겠습니다.<br />
거기에 대한 제 답변은 이미 발제글에 댓글로 달은 내용과 중복되는 내용이니 다시 되풀이 하지는 않겠습니다.<br />
다만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계획은 누구나 세울수 있습니다. 1960년대 이후 수 많은 제3세계국가들도 나름데로 훌륭한 계획을 세웠지만 제대로 실효를 거둔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br />
아무리 훌륭한 계획도 결국은 실행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용정훈 2012-03-30 19:16:40
답글

첫째, 경제정책에 대한 공과를 가리는 일은 진지해야 하겠지만 그의 인격을 볼 때 도저히 진지해질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조롱의 대상이 되어도 쌉니다. 심지어 저는 박정희를 위해서는 조롱도 아깝다는 생각입니다. <br />
<br />
둘째, 윗글의 댓글로서의 이홍엽님 말씀의 요지인 자립경제형-수출주도형 전환은 이후 우리의 경제가 심하게 대외종속적인 성향을 띄게 되었고 그 이유로 일반국민들의 생활수준향상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쳤으므로 공이라

황준승 2012-03-30 19:32:59
답글

미국에서는 경제의 주기가 민주당과 공화당의 집권주기와 비슷한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br />
공화당이 똥을 싸질러놓았는데 민주당이 욕들어가면서 똥을 힘겹게 치워놓고 경제를 제대로 된 <br />
궤도에 올려 놓으면,<br />
민주당 집권기간동안 경제가 어려웠다면서 국민들은 공화당을 선택하게 되고, <br />
공화당은 민주당이 닦아놓은 경제의 토대위에서 마치 자신들이 잘해서 경제가 호황인 것처럼 행세한다죠<br />
즉, 공화당 집권

용정훈 2012-03-30 19:50:10
답글

<br />
<br />
또 이홍엽님의 주장이 사실과 다른 것이, 박정권도 장면정권처럼, 수입대체를 통한 자립경제정책을 추구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민족주의자라는 평가를 받은 측면이 있고요.그러나 미국의 경제관료들은 중공업위주의 수입대체산업이 아니라 경공업위주의 수출주도 산업이 맞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켰습니다. 미국이 ""우리가 먹여줄테니 가만히 있어라" 라고 했다는 이홍엽님의 주장의 근거가 궁금합니다. 이홍엽님의 주장과

이홍엽 2012-03-31 00:30:10
답글

용정훈님/ 나갔다가 들어와 보니 몇가지 댓글이 달렸군요, 이런 문제로 서로 근거를 제시하고 생산적인 토론이 되면 참 좋겠으나 안타깝게도 그렇지가 못한것이 인터넷에서의 댓글들이 아닌가 합니다.<br />
님이 가진 여러 의문점을 특히 박정희의 경제정책에 관하여는 인터넷에 수많은 자료들이 차고 넘치니 한번 검색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님이 사실을 모른다고 해서 제가 일일히 님이 모르는 사실을 가르쳐드릴 의무는 없겠지요.<br />
<br />

용정훈 2012-03-31 03:04:51
답글

여전히 주장만 있고 근거는 없군요. 출처가 없는 글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지요? 저는 인터넷자료따위를 가지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책을 통해 얻는 자료에요. <br />
<br />
지금도 옆에 정일용, 임휘철(한길사판 한국사)와 전재호(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의 논문과 책을 펴놓고 참조하고 있습니다. 이 글들은 수많은 레퍼런스에 근거해서 쓰여진 글들입니다. <br />
<br />
위의 대한정책에 대한 기술은 미국케네디 정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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