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기 말, 실용오디오에서 앰프들 끼리 소리가 다 똑같다는 무식한 주장을 하길래,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과학기술적으로 입증해 보여주마 하고 장난을 시작했습니다.



제 귀로는 분명히 인켈AX-7RMK2는 둔한 소리가 나고, 아남AA-77은 쏘는 소리가 나고, 페로앰프(120만원에 구입, 모델명 잊음)는 섬세한 소리가 나는 것으로 들렸기 때문에, 최소한 두개의 앰프는 주파수특성에서 장난을 쳐놓았거나 부품을 하도 싸구려로 썼기에 다른 특성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표준앰프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입력신호를 그대로 확대복사해서 내보내주는 아주 충실한 전자기기를 만들었습니다. 고배율 증폭단을 2중으로 하고, 부되먹임을 강력하게 걸어서 확실한 가변배율파워증폭회로를 만든 것입니다.



드디어, 동네 동호인들이 인켈앰프 아남앰프를 가지고, 저는 페로앰프와 그 자작앰프를 가지고 가서 모였습니다. 아, 또 저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위한 셀렉터도 만들어 갔습니다.



네 가지 앰프의 소리를 비교해보니 웬 걸, 모두 다 같은 소리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셀렉터를 쓰던 안쓰던 음량을 같게 맞추고 나면 구분할 수 없이 같은 소리였습니다.



부랴 부랴 펑션제너레이터와 오실로스코프로 주파수특성을 측정했더니, 페로앰프는 초저음과 초고음이 좀 감쇄되어있었지만, 나머지 앰프들은 모두 가청대역에서 아주 평탄한 특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구형파에 대한 반응도 측정해보았는데, 페로앰프는 오버슈트로 발진가능성이 있었지만, 나머지는 모두 양호한 특성이었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도, 인켈앰프는 계속 둔탁한, 아남앰프는 쏘는 소리로 들렸습니다. 제가 만든 주먹 한개 반만한 작은 앰프는 계속 가벼운 소리로 들렸습니다.



하지만, 그 작은 자작 앰프를 인켈1311같은 한 덩치하는 놈들과 맞비교할 때, 똑같은 소리로 들릴 때면, 정말 황당하였습니다. 덩치 큰 스피커를 그 작은 놈이 큰 앰프와 똑같이 힘차게 구동하는 것이 정말 희한했습니다.



다시 집에 돌아와서 그 작은 자작 앰프를 홀로 놓고 사용하면 경쾌하고 가벼운 소리로 들렸습니다. 그럴 때면, 이론, 경험, 실험결과를 이성적으로는 알지만, 감정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제대로 만든 앰프들끼리 소리를 인간이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기까지는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실험을 더 해보고나서 였습니다. 전자 전공자인 저도 그 정도였으니 실험을 많이 해보지도 않았고 이론도 알지못하는 분들은 오죽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