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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국사 선생님의 분노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2-02-19 21:00:38
추천수 3
조회수   1,811

제목

어느 국사 선생님의 분노

글쓴이

박태규 [가입일자 : 2003-12-05]
내용
인터넷에 '국사 선생님의 분노'라는 제목으로 공개된 사진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사진은 어떤 학생이 국사 시험 문제를 찍어서 올린 것입니다. 그런데 사진에 찍힌 국사 시험문제의 지문에는 욕설까지 포함돼 있어 다소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국사 선생님의 분노'는 어떤 내용일까요? 국사 과목 시험문제로 알려진 사진을 살펴보면 '밑줄 친 그는 누구인가?'라는 더불어 장문의 지문이 설명돼 있습니다. 국사 과목 21번 문제였으며 3점 짜리였습니다. 지문 설명은 "그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 조국의 은혜를 배반하고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매국노이다. 그는 친러파에서 친일파로 둔갑하는 등 자신의 영달을 위해 조국을 일본에게 앞장서서 팔아넘긴 배은망덕한 짓을 하였다"고 시작됐습니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내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욕설과 더불어 다소 과격한 내용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시험문제 지문은 "그의 매국행위는 미친개새끼와 같은 짓이다. 그는 매국행위로 인해 일본으로부터 백작 작위를 부여받은 후 계속해 일본인 행세를 한 개호로자식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에게 10원짜리 욕을 듣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었습니다. 시험문제 지문 설명에 욕설이 여과없이 등장해 파격적이었습니다.







국사 선생님의 분노, 시험문제 내용은?



'21. 밑줄 친 그는 누구인가?(3점)'



"그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 조국의 은혜를 배반하고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매국노이다. 그는 친러파에서 친일파로 둔갑하는 등 자신의 영달을 위해 조국을 일본에게 앞장서서 팔아넘긴 배은망덕한 짓을 하였다. 그의 매국행위는 미친개새끼와 같은 짓이다. 그는 매국행위로 인해 일본으로부터 백작 작위를 부여받은 후 계속해 일본인 행세를 한 개호로자식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에게 10원짜리 욕을 듣고 있다"







이같은 '밑줄 친 그는 누구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답변은 5지선다였습니다. 5지선다 답안 인물에는 이완용, 안중근, 윤봉길, 이재명, 서재필 등 5명 인물이 열거돼 있었습니다. 물론 정답은 '이완용'입니다. 나머지 안중근, 윤봉길 등은 독립투사를 비롯 애국자들입니다. 기본적인 역사 상식만 있다면 쉽게 맞출 수 있는 문제이지요. 이완용은 을사조약(을사늑약) 매국노 오적 중 한 명입니다. 을사오적은 1905년 일제가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을사조약에 찬성하여 승인한 5명의 대한제국 대신을 일컫는 말입니다.



친일파 매국노 '을사 5적'이란?

을사오적은 학부대신 이완용,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군부대신 이근택,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등 5명을 가리킨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하면서 한국을 보호국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같은 해 10월 일본의 총리대신 가쓰라, 주한공사 하야시, 외무대신 고무라는 을사조약 체결을 모의한다.



1905년 11월 9일 추밀원장 이토 히로부미를 특파대사로 한국에 파견하여 고종에게 '한일협약안'을 제출하게 했다. 또 하야시는 조선주둔군사령관 하세가와와 협력하여 궁궐을 포위하고 고종을 감시하는 한편, 11월초 친일단체 일진회로 하여금 보호국화 찬성의 선언을 발표하게 했다. 11월 14일 이토는 고종을 다시 알현하고 조약원문을 제시, 체결을 강요했고 다음날에는 대한제국의 각 대신들과 원로대신들을 숙소에 납치하여 조약체결을 강권했다.



그런데 11월 17일 이토 히로부미와 하세가와는 일본군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가운데 군신회의를 개최하게 하여, 회의는 오후 3~8시까지 열렸으나 조약거부로 결정이 났다. 이에 이토는 귀가하는 대신들을 위협하여 다시 강제로 회의를 열게 하여 대신 한 사람마다 조약체결 찬성 여부를 물었다. 주무대신으로 처음 지명된 박제순이 "만약 명령이 있다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라고 하자, 이토는 "당신은 절대적으로 이 협약에 반대한다고는 볼 수 없다. 폐하의 명령만 내린다면 조인할 것으로 본다고 믿는다"고 못박았다.



이후 회의는 이완용과 법부대신 이하영이 대세를 장악하여 "조약의 체결을 거부하면 일본이 무력으로 한국을 침략할 것이므로 차라리 체면을 살리면서 들어주자"는 명분과 왕실의 안녕과 존엄은 유지할 수 있다는 조건을 들면서 조약 체결을 주장했다. 대신들 중 참정대신 한규설, 탁지부대신 민영기만이 적극적으로 반대했으며, 나머지는 체결이 불가피함을 시인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리하여 박제순과 일본특명전권공사 하야시 간에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다.



이에 을사조약 반대의 함성이 전국적으로 드높은 가운데, 이들 을사오적에 대한 응징 기도도 빈번했다. 기산도, 구완희 등이 이근택을 암살하려 했고, 1907년 3월 오기호, 나인영 등이 결성한 '을사오적 암살단'이 이들을 제거하려 했으나, 삼엄한 경비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또 1909년 서울 종현성당에서 이재명이 이완용을 암살하려 했으나, 부상만 입히고 말았다. 이들은 한일합병 후에 모두 친일의 대가로 '조선귀족령'에 따라 일제의 작위를 수여받았다.









▲ 친일파적 행각을 벌이는 뉴라이트는 역사왜곡도 서슴치 않고 있다



국사 선생님이 욕설을 포함해 시험문제를 낸 것에 대해 네티즌들은 대체로 "매국노는 욕먹어도 싸다. 당연하다, 속시원하다"는 반응이 많았지만 일부는 "아이들이 보는 시험문제에 욕설 표현은 부적절하다"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사실 일제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가운데 친일파 매국노들에 의해 자행된 을사조약은 불평등 계약이기 때문에 국제법상 조약이 아니라 '을사늑약'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강한 측면도 있습니다.



비록 국사 선생님의 시험문제 지문이 직설적인 욕설이 있어 과격해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 비극적 역사를 감안하면 매국노 이완용의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자주권을 가진 대한제국을 일제에 팔아먹은 것이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완용, 이지용 등 을사오적을 비롯 친일파 16명이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일왕에게서 돈을 받은 바 있습니다. 당시 친일파 매국노들이 받은 돈은 현재 가치로 5886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일본 왕에게 나라팔아 은사금 30억원을 받은 이완용과 친일파 매국노들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일제 강점 직후 '병합의 공로자'로 인정받은 조선 귀족 등은 귀족 작위와 일제에 대한 공로, 대한제국 황실과의 관계에 따라 수만엔씩 은사금(임금이나 상전이 내려준 돈)을 받았다고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조사위에 따르면 대표적인 친일파 백작 이완용은 15만엔을 받았습니다. 당시 1엔의 가치는 요즘 돈으로 환산하면 약 2만원이다. 즉,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먹고 30억원을 받은 셈입니다. 이완용은 국사 선생님이 분노의 욕설로 시험문제를 낼 만한 역적인 것입니다.













친일 매국노들은 일왕으로부터 막대한 은사금을 받아 호의호식했고 해방 후에도 권력에 기생했다



또한 이지용은 일왕으로부터 은사금 10만엔(20억원)을 챙겼습니다. 당시 초등학교 교사 연봉이 634엔(1268만원)이었으므로 200배에 육박하는 돈을 은사금으로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자작 중에는 친일파 송병준과 고영희가 10만엔(20억원)씩 지급받았는데, 두 사람은 을사조약과 정미칠조약을 주도했던 장본인입니다. 민영휘 권중형 김성근 윤덕영 등은 5만엔(10억원)씩을 받았고, 박제순은 3만엔(6억원)을 받았습니다. 천인공로할 역적들입니다.



친일파는 왕족도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왕족 출신으로 후작이 된 이재각과 이재완은 일왕의 은사금 16만8000엔(33억6000만원)씩 받았습니다. 조선귀족회 회장으로 중추원 부의장까지 오른 박영효는 28만엔(56억원)을 받아냈습니다. 순종의 장인인 후작 윤택영은 무려 50만4000엔(100억8000만원)을 받았습니다. 가장 많은 은사금을 받은 사람은 이재면이었는데, 그는 궁내부 대신으로 한일병합조약 체결에 참가한 대가로 무려 83만엔(166억원)을 받았습니다. 또, 일본의 시조신을 모신다는 신궁봉경회의 총재로 활동한 이준용은 16만3000엔(32억6000만원)을 받았고, 한일병합을 도운 이용구도 10만엔(20억원)의 은사금을 챙겼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비극의 시작에 대해 중요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친일파 매국노들이 받은 일왕의 은사금이 바로 현재 우리나라 사회의 기득권층인 친일파들의 재산 축적의 씨앗이라는 사실입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 권력을 잡은 독재자 이승만은 친일파들을 그대로 등용을 했습니다. 단죄받지 않은 친일파 매국노들이 여전히 권력의 핵심이 됐던 것입니다. 일왕의 은사금은 바로 현재 친일파들이 땅과 부를 축적한 배경이자 권력의 도구였던 셈입니다.





뉴라이트 인사가 '김구는 빈라덴 테러리스트'라고 망언을 한 바 있다



친일파들이 일제 시대에 받은 돈을 더 이야기해 볼까요. 일왕은 은사금은 가장 낮은 작위인 남작도 2만5000엔(5억원) 정도였습니다. 일제하 고위 관료나 중추원 고문의 월급과 수당도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는 수준이었습니다. 1920년 기준으로 고급 관료를 의미하는 주임관 1급은 3100∼4500엔, 2급은 2700∼4100엔, 3급은 2400∼3800엔을 월급으로 받았다. 군수급인 8급의 월급은 1200∼2000엔을 받았다. 현재 기준으로 환산하면 월급으로 2400만∼9000만원을 지급받은 것입니다. 친일파 대부분은 일본 정부로부터 직접 하사받은 돈 외에 일제 권력과 유착해 따낸 각종 특혜를 통해 엄청난 부를 쌓아왔던 것이지요.



단죄받지 않은 친일파들이 권력과 부를 지키기 위한 국민 이간질 편가르기 수법은?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보면 민족의 정기가 친일파들에 의해 유린된 것입니다. 프랑스가 제2차대전 후 나치에 부역한 매국노들을 3천명 이상 사형시키고 재산을 몰수한 것과는 너무 비교가 됩니다. 친일파들은 해방 후에는 이승만에 붙어서 호의호식하고 박정희 독재정권과 결탁해 생명과 재산을 유지해 왔던 것입니다. 이승만 독재 치하에서 오히려 김구 선생 등 독립투사들이 죽음을 맞이한 역사가 원통할 지경입니다. 그 이후에도 친일파들은 계속 승승장구했고 친일파 이완용의 후손이 조상 땅찾기에 나서 승소 판결을 받은 일도 있습니다. 친일파들이 단죄받지 않은 오욕과 반역의 역사가 바로 우리나라의 비극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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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visiter@paran.com 2012-02-19 21:15:50
답글

친일 매국행위를 한 그들의 후손들이 지금 부귀영화를 누리는 아이러니...... <br />
<br />
독립운동을 하면서 조국을 &#52287;겠다고 가족을 버린 독립투사들의 자손들은 <br />
<br />
지금 국적도 취득못하고 다시 중국으로, 그리고 남의 땅에서 조상들을 원망하면서 남은 여생을 보내고... <br />
<br />
둑립운동을 한 후손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못하고 피눈물을 흘리며 되돌아간 배경은 <br />
<

최수혁 2012-02-19 21:21:28
답글

ㄴ 와싸다 생활 10년만에 을쉰이 존경스러워 보이긴 첨 입니다...(본문과 상관없는 쉰소리해서 죄송합니다.)

ktvisiter@paran.com 2012-02-19 21:21:58
답글

수혁님...ㅠ,.ㅠ^ 맛난 음식이나 함 먹어보라고 불러주세요...ㅡ,.ㅜ^

손영민 2012-02-19 21:26:46
답글

역사가 저러니 지금 쥐바기도 저렇게 해처먹으려고 설쳐 대는거 아니겠습니까<br />
자손대대로 호위호식할테니... -_-;

박영문 2012-02-19 21:37:51
답글

몰표 던진 사람들이 더 문제이지요. 가장 먼저 한 일이 서울 수도권 규제완화

이희정 2012-02-20 02:05:03
답글

미천개새끼는 욕이 아니고비유같습니다<br />
<br />
특히 이완용같은놈에겐 오히려 존칭이죠 개는 충성심이라도있죠<br />
<br />

김태영 2012-02-20 18:55:25
답글

그래도 학교선생은 그러면 안됩니다..어쩔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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