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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독재자 이승만 평전"을 쓰는 이유 - 김상웅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2-02-17 18:44:26
추천수 3
조회수   596

제목

[추천] "독재자 이승만 평전"을 쓰는 이유 - 김상웅

글쓴이

이태봉 [가입일자 : 2004-10-30]
내용
Related Link: http://blog.ohmynews.com/kimsamwoong/456141

개인적으로 이승만이라는 인물의 책이나 글이 나오는 것 자체가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수구친일배들의 '국부 망령 부활'을 위한 역사 왜곡과 우상화활동이 도를 지나쳤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는다는 의미에서 제대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글을 쓰신 김삼웅 선생께서도 이러한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내용이 상당히 긴 글이지만 굳이 독재자의 평전을 쓰는 이유만 읽어보셔도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위 링크에 가시면 김삼웅선생께서 연재를 하고 있는 평전들이 있습니다.

김대중,노무현,리영희,장준하,안중근,조봉암,김상덕,이회영,송건호 평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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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이승만 평전>을 쓰는 이유 ①] ‘이승만 망령’ 살리기의 반민주성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ㆍ중동의 아랍국가에서 시민들이 독재자들과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을 때,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원조’격인 한국에서는 독재자 이승만의 망령을 불러들이는 ‘초혼제’가 끊이지 않았다. 벤 알리(튀니지 전 대통령), 무바라크(이집트 전 대통령), 카다피(리비아 전 대통령)는 온갖 만행을 저지르다가 분노한 시민들에게 쫓겨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2012년의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수구보수세력의 이승만 부활 움직임이 극성이다. 어떤 논객은 4ㆍ19세대의 이승만 비판을 종북좌파라 매도하고, 어떤 자치단체장은 광화문에 이승만의 동상을 세우자고 호들갑을 떨고, 한 보수단체는 남산에 이승만의 동상을 세웠다. 어용화된 공영방송은 그를 미화하는 작품을 만들고, 대형서점에는 이승만을 미화하는 책이 줄줄이 쌓인다.



그런가하면 이명박 정권은 광화문에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지으면서 이승만과 박정희 우상화에 예산을 퍼붓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모두 박정희의 약효가 떨어지는 듯하자 이번에는 이승만을 부활시켜 보수극우의 구심으로 삼으려는 전략이다.



한국 보수세력의 결정적 과오의 하나는 이승만과 박정희 등 독재자의 비호다.

이승만은 독립운동가로 알려졌지만 미주 망명시절의 행적을 살펴보면 독립운동보다 오히려 친일적인 언행이 적지 않았다. 독립운동단체를 분열시키고 장인환ㆍ전명운ㆍ이봉창ㆍ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테러행위라고 비난하였다. 이승만은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대한민국에서 두 차례 축출되었다. 이승만은 영구집권을 획책하면서 3ㆍ15 부정선거에 저항하는 시민학생 200여 명을 죽이고 6천여 명의 부상자를 낸 독재자다. 불과 반세기 전의 일이고 아직도 부상자가 그날의 분노를 삭이고 있는 실정이다.



3ㆍ15 뿐만 아니다. 이승만은 발췌개헌, 사사오입개헌 등을 통해 헌법을 짓밟고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공염불처럼 북진통일을 되뇌다가 막상 인민군이 남침하자 혼자 도망치고 한강다리를 폭파시켜 서울시민을 적치하에 남겨두었다. 원조물자는 특권층에게만 안겨주어 국가경제와 국민의 생계는 파탄지경이 되었다. 친일경찰을 등용하여 독립운동가를 탄압하고 경찰국가체제를 만들었다. 총독부 판사 출신들로 사법부를 장악케 하고 많은 독립운동가, 민주인사들을 처형했다.



이승만은 반민특위를 해체하고 친일파를 중용하여 민족정기와 사회정의를 짓밟았다.

그리고 일본군 출신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킬 온상을 만들고 독립운동가들을 학대했다. 백범 김구 암살배후, 죽산 조봉암 사법살인을 비롯하여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에게 피눈물을 강요했다. 이승만 추종자들은 지난해 대법원의 죽산 조봉암 선생 무죄선고에 한마디 사죄도 하지 않았다.



보수세력의 이승만 부활작업에는 분명한 목적의식이 담겨 있다.

자신들의 정체성에서 취약한 ‘친일’의 행적을 지우려는 것이다. 이것이 임시정부를 폄훼하고 정부수립일을 ‘건국절’이라 우기면서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내세우는 배경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대한민국의 정통세력이라 참칭하면서 항일독립운동, 평화통일운동, 민주화운동세력을 빨갱이 → 친북 → 용공 → 좌경 → 종북세력이라고, 그때 그때 용어를 바꾸어가면서 매도한다.



이승만 정권의 경찰과 검찰, 어용언론은 3ㆍ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어린 학생들의 호주머니에 불온삐라를 투입하여 이들을 용공으로 몰고, 4ㆍ19시위 때에도 그랬다. 지금도 저들은 비판세력의 입을 막거나 논리가 막히면 그 짓을 한다. 미국산 수입쇠고기 비판 촛불시위, 심지어 일본 원자력발전소 방사능오염 우려, 한ㆍ미FTA 반대, 이승만, 박정희 비판에도 어김없이 용공 좌경의 딱지를 붙힌다. 가히 정신질환성의 수준이다.



대한민국 헌법(전문)은 임시정부의 법통과 4월혁명 정신을 국가정체성으로 선언한다.

이것은 친일세력과 독재세력을 배격하는 헌법의 기본 이념이고 정신이다. 그럼에도 친일후손들과 여기 빌붙은 언론인ㆍ지식인들은 이승만ㆍ박정희ㆍ전두환ㆍ이명박으로 이어지는 독재세력이 마치 이 나라의 ‘정통’인 것처럼 내세우는 것은 망발이다. 역사와 국민과 정의에 대한 모독이다. 도둑이 주인을 내쫓고 주인 행세하는 적반하장격이다.



이승만의 추종자들은 마치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건국’한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아니 역사를 왜곡한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일제강점기 국내외 독립운동단체 460개 중에 민주공화제 국가의 건설을 추구하는 민주지향형이 244개로 53%를 차지했고, 제헌국회의원 절대다수가 민주공화주의자였다. 결코 이승만의 독점물이 될 수 없다. 이승만은 오히려 내각책임제의 헌법 초안을 임의대로 대통령중심제로 바꾸는 등 초반부터 반 공화주의적 행태를 서슴지 않았다.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찬양과 비난이 양극단으로 갈린다.

정직한 연구가들은 이승만의 공과(功過)를 ‘공3 과7’로 평가한다.



미국의 <사이언스 모니터>지는 그를 “유엔의 문제거리 아이”라 했고, <오웬래티모어>는 “작은 장개석”이라 평하고, <워싱턴 포스트>지는 “형편없고 비열하기 짝이없는 이박사”라 칭하고, <크리스챤 센츄리>ㆍ<만체스터 가디언>ㆍ<런던 타임스>ㆍ<더 네이션>지는 다같이 “독재적이며 야심에 차고 반동적이며 무책임하고 잔인한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벤프리트 장군은 일찍 이 박사를 “그의 체중과 같은 중량의 다이아몬드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격찬하고, 고 델레스 국무장관도 “이박사를 친구로 가진 것을 자랑으로 알며 그는 실로 훌륭한 정치가”라고 찬양한 일이 있다.“(송건호, <이승만박사의 정치사상>)



이승만에 대한 정신의학적 분석도 들어 둘 가치가 있다.



이승만 박사의 성격을 분석해 본 결과 결국 야심ㆍ충성ㆍ반항ㆍ증오ㆍ고집ㆍ자기주장ㆍ의심ㆍ질시ㆍ타협 없는 강인한 자아 등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편집성 인격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이병윤, <정신의학자가 본 이승만>)



최근 중동ㆍ아랍국가의 민중들은 반독재 민주화투쟁에 온몸을 던졌다. 그리고 독재자(세력)를 가차없이 처단하고 있다. 그런데 반독재 투쟁의 ‘원조’ 격인 한국에서는 독재자의 망령을 부르는 소리가 요란하다.



더 이상 대한민국임시정부와 4월혁명을 욕되게 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헌법정신이 짓밟혀서는 안 된다.

동상을 세우려거든 당신들 집안에 세워라!

더 이상 역사를 왜곡하지 말라!



이것이 <독재자 이승만 평전>을 쓰는 이유다.



이승만의 전력을 있는 그대로 까발려서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평가하여 그가 결코 ‘건국의 아버지’는 커녕 ‘타매의 대상’ 임을 밝히고자 한다. 초기의 계몽운동과 항일 구국운동은 그것 대로 평가하겠지만 중년 이후에는 독립운동은커녕 많은 부문에서 독립운동을 방해한 사력을 하나하나 추적하고자 한다.







[<독재자 이승만 평전>을 쓰는 이유 ②] 이승만의 죄상을 논한다



군사독재자 박정희 전 대통령을 ‘환생’시켜 재미를 톡톡히 보아온 수구세력이 이번에는 ‘이승만 살리기’에 총력전이다. 그를 미화하는 책이 속속 출간되고, ‘국부’ ‘건국의 아버지’란 용어가 거침없이 쓰인다. 남쪽은 ‘국부환생’, 북쪽은 3대에 걸쳐 ‘어버이수령’ 한반도의 역사는 혈족 중심 봉건시대의 과거로 달리고 있는 형국이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정략적인 ‘연구’와 역사왜곡에 있다. 뉴라이트계열과 일부 족벌신문이 일제강점기의 긍정적 부각 → 이승만의 분단정부 수립 → 박정희의 근대화론 → 이명박의 토목공사론을 한국현대사의 정맥(正脈) 또는 정통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교과서를 뜯어고치는 등 역사를 왜곡하고 국민을 색맹으로 만들고자 하기 때문에 문제가 많다.



보수족벌신문들은 이승만과 박정희의 비판을 ‘자학사관’이라 매도한다.

일본우익이 전범재판, 군벌해체 등을 자학사관이라 비판하면서 교과서 왜곡을 주도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어법이다. 수구세력은 자신들이 현대사의 ‘정통’이라 여기면서 거침없이 역사를 왜곡한다. 자고로 남의 사상을 검증하고 역사를 직접 쓰겠다고 덤비면서 어용 언론ㆍ지식인들이 곡필(曲筆)을 휘두르는 사회는 비극의 막장임을 보여왔다. 이같은 현상이 비극으로 종말을 고하는 것을 역사는 숱하게 증언한다. 우리만 해도 자유당 말기, 유신 말기, 5공 말기에 그랬다. 그럼에도 아류(亞流)들은 끊임없이 전철을 밟는다.



이승만은 젊은 시절 한 때 대단히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선각자였다.

독립협회에 참여하여 개화운동, 만민공동회 연사, <제국신문> 주필, 6년여 투옥, 하와이 한인학원 운영과 잡지 <태평양> 창간, 구미위원부의 외교활동, 제네바 국제연맹회의에 참석하여 한국독립 호소 등은 업적에 속한다.



하지만 이승만의 과오는 이런 업적을 덮고도 남는다. 차례로 살펴보자.



첫째, 하와이에서 한인 소년병학교와 대한인국민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한 무장독립운동가 박용만을 내쫓는 등 한인사회의 분열획책.



둘째, 샌프란시스코에서 장인환ㆍ전명운 의사가 국적 스티븐스를 처단하고 재판을 받을 때 예수교인으로서 살인재판의 통역을 원치 않는다며 거부한 비애국행동, 이후에도 이봉창ㆍ윤봉길 의거를 테라라고, 임시정부에 중단을 요구.



셋째,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될 때 국무총리에 추대되었으나 대통령직위를 주장하고 스스로 대통령직함을 사용한 것, 미국에 눌러앉아 위임통치론 등 정부의 방침과는 따로 행동하다가 임정 대통령이 되고서는 의정원의 불신임과 탄핵을 받은 일.



넷째, 해방 뒤 맥아더 장군의 주선으로 미군복을 입고 귀국하여 좌우합작 반대, 미소공위 활동 비판, 김구ㆍ김규식 등의 남북협상 반대 등 통일정부수립보다 단정수립 노선을 추구.



다섯째, 제주 4ㆍ3항쟁과 관련하여 국무회의에서 제주도민들을 강력히 처벌하라 지시하고 법에도 없는 계엄령을 선포하여 많은 도민이 참살당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여섯째, 귀국 후 친일파들의 정치헌금을 받고, 반민특위를 폭력으로 해체한데 이어 친일파를 중용하여 민족정기를 짓밟으면서 친일파재등장의 계기를 조성했다.



일곱째, 국방상의 아무런 대책의 마련도 없이 공염불처럼 북진통일을 외치다가 낚시질 중에 북한군의 남침을 보고받고 ‘수도사수’ 방송 녹음만 남긴 채 혼자 피난, 한강철교를 폭파하여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켰다. 환도 뒤에는 적반하장격으로 피난가지 못한 시민들을 부역자로 몰았다. 국민방위군사건, 보도연맹사건 등 전국 각지의 100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 학살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덟째, 제헌의원 선거 때 독립운동가인 경쟁자 최능진 처형, 김구 암살배후, 조봉암 사법 살인, 장면부통령 저격사건 등 정적제거에 잔혹성을 보였다.



아홉째, 발췌개헌, 사사오입개헌, 보안법파동, 3ㆍ15부정선거 등 권력연장에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반민주 독재자였다.



열번째,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4ㆍ19 시민 학생들에게 발포하여 186명 사망, 6,026명의 부상자를 낸 폭군의 전형이다. 이에 대해 사죄하지 않았다.




<경향신문>이 2005년에 실시한 정부수립 60주년 여론조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3ㆍ3%만이 이승만을 뽑았다. (김구는 28.3%) 국민의 절대다수는 이승만을 ‘국부’는 커녕 그의 존재 자체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승만 숭배자들’이 역사를 왜곡하면서 가장 방점을 찍은 대목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확립하여 대한민국을 세운 ‘건국의 아버지’라는 대목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승만은 민주주의를 짓밟았고 시장경제를 살리지도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의 대통령 재임기 남한의 경제는 미국의 막대한 원조에도 불구하고, 6ㆍ25전쟁으로 전국토가 초토화된 북한보다도 오히려 뒤처졌다. 원조 물자는 소수의 권력자와 기업인들의 배만 불렸다. 이것을 시장경제체제라고 우기는 것은 진실과 학문에 대한 모독이다.



독립운동 지도자들과 제헌의원들 대부분이 해방 된 조국의 미래상을 민주공화제와 시장경제에 뜻을 모았다.

이승만이 제헌헌법의 제정 과정에서 가장 관심을 보였던 대목은 헌법의 내각책임제 초안을 대통령중심제로 바꾼 일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권력독점을 위해서는 몇 차례나 헌법을 헌신짝 버리듯 바꾸고, 각급 선거를 경찰ㆍ관권을 동원하여 조작하였다. 헌법은 이승만의 장기집권의 장식물이 되고, 선거는 3ㆍ15부정선거가 말해주듯이 선거라는 이름의 협잡이었다.



외신이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기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고 조롱할 만큼, 그는 민주주의를 짓밟았고 국위를 실추시켰다.



한국의 보수수구세력이 이승만식 폭압통치나 형편 없는 국정운영, 장기집권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면, 그의 ‘국부’ 추대를 위한 재평가의 의미는 어떤 의미에서도 용납되기 어렵다.



“역사는 있는 모습 그대로 파악해서 거기에 필주(筆誅)를 가함으로써 있어야 할 모습을 살리는 일이다”(사마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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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철 2012-02-17 18:59:41
답글

너나 잘

조영남 2012-02-17 19:16:51
답글

철이 방가 방가....<br />
<br />
밥은 묵고 댕겨라, 굶을라.... <br />
<br />
이 엄동에.... 챙겨 입고.... ㅋㅋ

이석주 2012-02-17 21:32:44
답글

훈철이는 승만이를 존경하나 보네.

고태영 2012-02-18 18:13:25
답글

이승만 개쌍노무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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