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의 어떤 모습을 볼 때 가장 참을 수 없는가?
"재벌의 무소불위(無所不爲)와 안하무인을 볼 때다. 정권은 5년이지만 재벌은 오래간다. 교체되지 않는 오만한 권력이다. 마음먹으면 못 하는 게 없다. 자기들 돈벌이에만 열심이다. 늘 자기들만 옳지, 세상의 다른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
"우리 사회는
..."이들을 옹호하는 '재벌장학생'도 너무 많다."
정 위원장은 대기업 사외이사나 연구비를 받아 쓴 적이 없나?
"나 자신을 나름대로 관리해왔다. 나는 고위관료나 재벌 쪽 사람은 안 만나려고 했다. 이들을 자주 만나면 이해하게 돼서 객관적 사고를 하는 게 힘들어진다."
―정 위원장도 재벌을 '개혁 대상'으로 보는가?
"너무나 당연하다. 우리가 경제대국이 되는 데 대기업의 역할은 있었다. 하지만 대기업은 특혜 속에서 자랐다.
1960년대 수출신용장만 갖고 오면 대출해줬다.
당시 대출받은 돈으로 부동산에 투자했다.
'양키본드'(미국시장에서 외국인이 발행하는 달러화 채권)를 발행할 때도 정부가 혜택을 줬다.
그렇게 커왔으면 이제 '동생'(중소기업)을 돌봐줘야 하지 않나.
착한 형이라면 그래야 한다.
오히려 수출시장에서 가격경쟁을 위해 협력업체에 납품단가 후려치기나 해왔다.
그런 식으로 이익을 많이 남겼으면 보상적 차원에서 돌려줘야 한다.
그것 하나 안 하려고 한다."
―요즘 여·야 정치권은 물론이고, 사회 전체가 재벌을 때리고 있다. 갑자기 재벌이 맞을 만한 짓을 많이 했나, 아니면 포퓰리즘에 편승하고 있나?
"상황이 굉장히 나빠진 것이다.
양극화가 심해졌다.
지난 수년간 10대 대기업은 닷새가 멀다 않고 기업을 인수하거나 설립했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은 다 나자빠지는데.
삼성·현대차·LG·SK 4대기업의 매출이 GDP(국민총생산)의 53%다.
30년 전에는 20% 선이었다.
대기업이 안 하는 업종이 없다.
이를 해소하지 않고 우리 사회가 제대로 존립할 수 있겠나."
―재벌에 대한 적개심을 부추기는 것이 유행처럼 됐다.
"균형을 위해 약한 쪽을 편드는 것이다.
1997년 경제 위기, 2008년 글로벌 위기가 왔을 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경쟁'밖에 없었다.
경쟁, 경쟁하다가 경쟁에서 유리한 대기업의 독식이 심해졌다.
물론 양극화는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의 갑부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자본주의 제도가 안정돼야 계속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세금을 더 거두라 하고 기부도 한다."
―정 위원장이 '이익공유제'를 꺼냈을 때,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잘 모르겠다.
경제학 책에서 그런 말을 보지 못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회장은 세상의 변화를 읽어야 한다.
이 회장이 기업가 집안에서 태어나 경제학 공부를 했다지만,
대학에서 공부한 것은 1960년대일 것이다.
'스톡옵션(임직원들에게 자사 주식을 나눠주는 것)'이라는 단어가 나온 지는 20년밖에 안 됐다.
그걸 놓고 공산주의인지 사회주의인지 하겠나."
이런 행태는 대다수 국민들에 대한 도전이다. 인구의 99%가 재벌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를 아직도 모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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