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다녔던 첫 직장은 (주)대우 무역부문, 지금의 대우인터내셔널이었습니다.
참 재미있었습니다. 주간에 내 일 처리하고 나면 야간에는 지구 반대편 지사에 주재원들이 출근합니다. 그 사람들이랑 전화하고 서신교환하다보면 24시간이 부족했습니다. 그런 야근이 끝나고 나면 어김없이 부서 실세 술상무가 신삥들 교육한답시고, 군기가 빠졌다면서 대우빌딩 뒤 후암동 골목으로 집합시켰습니다. 그러면 끝없는 술판이 벌어집니다. 아예 회사 탕비실 같은 곳에다가 옷 몇 벌을 가져다 놓고 회사에서 살다시피 했던 날도 있었습니다. 저도 술을 즐기는 편이지만 이 사람들은 조금 정도가 심했습니다. 그래서 어느날은 한 번 고참에게 슬쩍 물어봤죠. 이 술 문화의 기원(?)에 대해서...
그랬더니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우린 대우맨(?) 이니까. 삼성, 엘지, 현대 다 와도 우리 대우가 제일 잘놀아. 대우맨은 다른거 다 필요없고 술 잘 마시고 잘 노는게 가장 중요해. 일은 어차피 깨져가면서 배우면 되는거야."
인간의 능력치를 능력, 인성, 유흥력 셋 으로 나눌 때 대우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바로 유흥력이었더고 하더군요. 어떤날은 점심시간에 나가서 그 다음날 점심시간에 들어온 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 사이 계속 술을 마셨죠. 지금은 생각만 해도 어질합니다.
오늘 오랜만에 서울역 근처를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서울스퀘어 빌딩 (구 대우빌딩)이 참으로 쓸쓸해보이더군요. 공실률이 20퍼센트가 넘는다고 하던데...문득 상사맨의 부푼 꿈을 안고 세계를 휘젓고(?)다니던 그 시간들이 생각나서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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