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나이 서른에 큰 누나가 돌아가셨습니다. 추석 즈음에 얼굴이 이상해지고 말도 어눌해져서 고향 제주도의 병원에서 뇌출혈 증상이란 것을 알았고, 동생이 근무하고 지인들이 있는 세브란스로 갔지요. 뇌혈관기형에 따른 뇌출혈....그리고 누나는 '진짜 이상해....마치 테레비 연속극 같아. 이렇게 아픈 게...'라고 비뚤어진 입으로 읖조렸습니다.
누나가 다니던 호텔신라. 그 곳에 다시 다니고 싶다고, 그리고 병원에서도 뭐 달리 시술할 게 없으니 그냥 불편한 채로 지내던지, 감마나이프 시술을 받아 보던지 권유해서, 좋아질 요량으로 감마나이프 시술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몸이 춥다고 그러고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심정지. 그리고 다시 전기와 약물로 심장을 뛰게 하고는.....죽음은 고향에서 맞게 하고 싶다고 아버지는 울면서 고향으로 의식없는 누나의 육체를 옮겼습니다.
주중은 서울, 주말은 고향 병원. 이를 몇번 해 보기도 전에 너무 쉬이 지쳐갔고, 힘들다라고 느낄 때 즈음에 누나는 돌아가셨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날 첫 아이는 태어 났고, 의사 선생님의 아이의 심장이 약하게 뛴다는 말에 그저 안전하게 제왕절개 해주라고...겁에 질려 그렇게 전화상으로 얘기했었지요. 아버지는 저에게 누나가 네가 병원비 보태라고 돈 많이 낸거 알고 있었냐고 물었고, 1년 즈음 지난 후에 한글 비석을 하나 만들어 누나의 묘 앞에 세웠습니다. 삼성에 다녔다는 내용도 쓰고 한글로 만들었지만, 사돈집 어른들은 그 비석을 건방진 짓이라며 파서 버렸지요. 다시 아버지는 울먹이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몇년....클라이언트 회사에서 배가 아파 응급실에 실려갔네요. 부정맥과 심부전으로 인한 신근경색. 콩팥 한 쪽이 혈전에 막혀 일부 조직이 괴사...마침 세브란스 영상의학과에 있던 친구놈은 뇌혈관이 안막힌 것만으로 다행으로 생각하라며 꾸짖고는 묵묵히 불규칙한 심장을 일일히 수기 보정하며 CT를 찍어 주었습니다.
두 아이의 아빠인 나, 두 아이의 엄마였던 누나....센티해져 눈물이 많이 나더라고요....생활의 스트레스를 줄인다고 세명이 동업하던 일도 그만하고 조그만 법인에 들어가고, 철 좋다는 면박 속에서도 자전거 타고, 등산하고, 재작년, 작년 부정맥 시술로 어느 정도 심장은 이제 약으로는 컨트롤이 되는 상황입니다.
어르신들이 많은 데, 술자리에서나 하는 부끄러운 이야기 하기가 좀 그러합니다만, 저는 삶보다는 죽음을 알고 느껴야 공존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슬픔, 안타까움, 부존재에 대한 어쩌할 줄 모르는 마음의 찢어짐....나라는 존재 또한 그러하게 사라질 것이고 타인 또한 그러한 찰나의 존재라는 것. 동 시대를 살아가는 그 기막힌 우연에 있으니, 타인의 삶에 대한 경외와 존중...이러한 나와 타인에 대한 연민이 건강을 잃고 나서 느낀 가장 큰 인생의 수확이었습니다.
성공과 출세?를 지향하고, 동시대인에게 귀를 기울이지 못한 내가 너무 부끄러워진 순간이기도 했고요. 나의 삶이란 것은 결국 타인이 나를 기억해 주는 어떠한 것, 내가 기억하는 타인 속의 나일 뿐 혼자 있을 순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저 이국땅에서 죽어가는 아이에 대한 뜨거운 연민이 생기더군요. 그저 남의 일 같았는데....
아버지가 조금 편찮습니다. 엄살이 심한 당신이지만 설에 온 가족이 모였는 것 보고 싶다고, 며칠 여유있게 있다 가라고 하시네요.
나와 남이 따뜻하게 공존할 수 있는 가족, 공동체, 나라, 지구, 우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먼 이상일지도 모르지만....더불어 따뜻한 와싸다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시 대학 다니는 기분입니다. 날적이를 적는 느낌. ㅋ 따뜻한 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