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연식이 좀 짧은 편입니다. 처음으로 노스페이스 유행할 때...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이었는데요. 제가 그때 고등학교 1학년인가 2학년인가 그랬습니다.
저도 당시 부모님께 노스페이스 700 잠바, 당시 매장가 23만원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 벌만 사주십사 떼 아닌 떼를 쓰곤 하였습니다. 부모님 두 분도 아웃도어류 옷을 즐겨 입곤 하셔서 노스페이스의 가격에 대해서 큰 이질감은 없으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직접 아버지께 말씀드리는 것은 당시 저희 집 내부 규약(?)상 비선보고에 해당했기에...먼저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죠. 이런 잠바떼기 하나 갖고 싶은데 사주실 수 있나...
어머니께 시원하게 욕 한바가지 얻어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 것으로 포기할 순 없었죠. 집요하게 졸랐습니다. 결국엔 어머니와 저의 작은 분쟁이 아버지의 귀까지 들어가게 되었고 아버지가 어느날 조용히 절 부르셨습니다.
디지게 맞을련지...아니면 떡하니 하나 사주실려는지...?
둘 중 하나였죠.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식사하고 마당에서 담배 한 대 태우시는 아버지 옆에 조용히 다가갔습니다.
'잠바 갖고싶냐?'
'네!!! @.@'
'그래. 사줄게. 대신 조건이 있다. 나중에 네가 성인이 되어 스스로 네 삶을 꾸려나갈 때 쯤 깨닫게 되겠지만, 몇십만원짜리 옷은 쉽게 입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잠바 가격 23만원이라고 했지? 절반인 12만원을 나가서 직접 네 손으로 벌어와라. 그 때 다시 이야기하자.'
생각지도 못한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어머니는 쌍수를 들고 반대하셨습니다. 공부나 할 것이지 무슨 일이냐면서...하지만 노스페이스 잠바를 생각하며 득의양양해진 저는 친구들이 일한다던 가게를 찾아나섰습니다.
동네 닭집에서 찌라시 붙이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미성년자로써 구할 수 있는 가장 깨끗하면서도 가장 안전한 일 중 하나였죠. 보수는 장당 20원인가 30원인가 했었습니다. 목표금액인 12만원을 위해서는 4천장이나 붙여야 했죠. 동네 아파트 단지가 아파트 한 동에 100여가구가 있었으니 어림잡아 40개동에 빼곡히 전단지를 붙여야 했죠. 아파트 경비원에게 전단지를 모두 빼앗기고 뺨을 맞기도 했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투잡이 필요했죠.
또 하나 생각한 것이 지역 아파트 단지에서 새벽에 차를 닦아주는 사람의 시다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그런 분들은 독고다이로 뛰시는 것이 일반적인데 일손이 달리는지 시다를 구한다고 하시더군요. 새벽 세시부터 다섯시까지 시다를 하고 7천원인가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 최저시급, 보통 편의점 알바 시급이 천원 후반대였던 것으로 기억하니 꽤 짭짤한 수입이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목표 금액에서 만원을 더한 십삼만원을 벌었습니다. 개선장군처럼 당당히 부모님께 가지고 갔죠. 그랬더니 갑자기 아버지께서 식사를 하다 마시고 방으로 들어가시더니 옷장에서 비닐에 씌워진 반짝거리는 노스페이스 잠바, 꿈에도 그리던 그 잠바를 갖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미리 사놓으셨더군요. 약속한 금액인 13만원을 아버지께 드렸습니다. 하지만 받지 않으셨습니다. 용돈으로 쓰라고 하시더군요. 눈물이 핑 돌더군요.
'이제 조금 알았냐? 비싼 물건을 가질려면 얼만큼 네가 노력을 해야 하는지?'
이제 10여년이 지났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모두 그때보다는 많이 늙으셨네요. 그렇게 아버지의 임무를 수행하고 받은 노스페이스 잠바는 아직도 제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엊그저께 아버지와 어머니 입으시라고 블랙야크에서 잠바를 한 벌씩 해드렸습니다. 아버지께서 기분이 좋으신지 10여년전 노스페이스 사건(?)을 또 이야기하시네요. 이제 제가 그렇게 높아만 보였던 등산잠바를 부모님 한 벌씩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스스로 기쁘기도 하고, 또 시간이 이토록 흘러간 것을 깨달으며 조금은 먹먹하기도 합니다.
아이를 키우시는 선배 회원님들의 노스페이스 걱정(?)을 읽으면서...새삼 10년전 그때가 떠오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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