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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대한제국을 병합하자 마자 우리의 역사책 20만권을 수거해 불태웠다는 주장을 많은 사람들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다. 조선일보 기자 서희건이 지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 1986년 고려원]에 이 이야기가 나오면서 인구에 회자되었는데 그 이야기의 출처가 문정창이 지은 [군국일본조선강점36년사]다. (문정창은 일제시대 군수까지 지낸 친일파지만 그가 재야사학자로 민족주의자라고 믿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1912년 11월 19일에 조선총독부 관보에 그 책이름이 실려 있다.
어떤 책들일까? 고대사의 비밀을 간직한 우리 민족의 귀한 자료인줄 생각하게 하지만 실제로 보면 지금도 구할 수 있는 그런 책들이다. 환단고기류의 책이름은 하나도 없다.
01. 初等大韓歷史(國文,漢文) (초등 대한역사(국문,한문)) / 정인호 편집 장세기 교열 / 1908년 발간 / 단군에서 조선까지 간략하게 기술한 개설서. 배일, 애국사상 고취
02. 普通敎科東國歷史 (보통교과 동국역사) / 현채(玄采) 지음 / 대한제국 학부에서 1899년에 펴낸 중학교 교과서로 8권 3책으로 되어있다.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부터 기술
03. 新訂東國歷史 (신정 동국역사) / 유근(柳瑾:1861∼1921) & 원영의(元泳義) 1906년에 지은 역사책
04. 大東歷史略 (대동역사략) / 국민교육회(國民敎育會:1907년 흥사단에 병합됨) / 대한제국의 교과서. 1906년 간행. 7권 1책. / 단군조선, 기자조선, 마한, 신라 등의 역사를 소략하게 기술.
05. 大韓新地誌 (대한신지지) / 장지연(시일야방성대곡의 그 장지연) / 1906년 지리교과서로 만듦 / 우리나라의 자연지리와 풍속, 물산 등 인문지리를 다룸
06. 大韓地誌 (대한지지) / 현채(玄采) / 1899년 교과서로 편찬 / 총론과 13도편으로 대한전도와 각도의 지도를 붙인 뒤 각 지역을 설명함
07. 最新高等大韓地誌 (최신 고등 대한지지) / 정인호(鄭寅琥) / 1909년 교과서로 편 / 동해를 조선해로 표기하고 있음
08. 問答大韓新地誌 (문답 대한신지지) / 노익형(박문서관 주인, 국채보상운동 등을 한 사람)
09. 最新初等大韓地誌 (최신 대한 초등지지) / 정인호
10. 最新初等小學 (최신 초등소학) / 정인호
11. 高等小學讀本 (고등 소학독본) / 장지연
12. 국문과본 / 원영의
13. 初等小學 (초등 소학) / 국민교육회(國民敎育會) / 1906년 교과서로 편찬
14. 國民小學讀本 (국민 소학독본) / 대한제국 학부에서 1895년 교과서로 편찬 / 자연현상과 이치, 세계 주요 도시 문명화 파악, 중상주의 등 기술
15. 小學漢文讀本 (소학 한문독본) / 원영의
16. 녀자독본 (자는 아래아) / 장지연 / 1908년 / 여성용 교과서
17. 婦幼讀習 (부유독습-조선총독부 관보에는 婦女讀習이라고 잘못 나와있다) / 강화석(姜華錫) / 1908년 교과서로 편찬
18. 高等小學修身書 (고등 소학 수신서) / 휘문의숙 편집부 / 1907년 교과서로 편찬
19. 初等倫理學敎科書 (초등 윤리학 교과서) / 안종화(安鍾和) / 1907년 교과서로 편찬
20. 中等修身敎科書 (중등 수신 교과서) / 휘문의숙편집부 / 1908년 교과서로 편찬
21. 初等小學修身書 (초등 소학 수신서) / 유근(柳瑾:언론인)
22. 獨習日語正則 (독습 일어 정칙) / 정운하(鄭雲复:독립운동가) / 1907년
23. 精選日語大海 (정선 일어 대해) / 박중화(朴重華:교육가, 보성중학교 교장) / 1909년
24. 實地應用作文法 (실지 응용 작문법) / 최재학(崔在學:평양 유생, 애국지사) / 1909년
25. 飮氷室文集 (음빙실문집) / 양계초(청나라 사상가. 1873-1929) / 1899년 독립신문과 황성신문에서 [애국론]을 소개한 후 1905년부터 양계초 붐이 일어날 정도로 유명했음.
26. 國家思想學 (국가사상학) / 정인호(鄭寅琥:최초 발명특허권자, 최초 저작권 분쟁을 일으킨 사람)
27. 民族競爭論 (민족경쟁론) / 양계초(청나라 사상가) 지음 유호식(劉鎬植) 번역
28. 國家學綱領 (국가학강령) / Johannes Bluntschli(독일)의 학설을 안종화(安鍾和)가 번역 / 1907년
29. 飮氷室自由書 (음빙실자유서) / 양계초(청나라 사상가)
30. 準備時代 (준비시대) / 천도교 중앙총부 / 1905년 / 천도교 해설서
31. 國民須知 (국민수지) / 김우식(金宇植) / 1906년 / 대한제국 시절 가장 널리 퍼진 국민계몽서
32. 國民自由進步論 (국민자유진보론) / 유호식(劉鎬植) 번역
33. 世界三怪物 (세계삼괴물) / 斯密哥德文 지음, 변영만(卞榮晩. 수주 변영로의 형으로 제국주의 비판자였다. 1889-1954) 번역 / 1908년 / 이 책은 반제국주의 관점에서 쓰인 책이다. 책의 서문은 변영만의 절친한 친구였던 신채호가 썼다. (斯密哥德文이란 누군지 알 수 없는데, 斯密은 Smith, 哥德은 Gold로 Goldsmith를 哥德斯密이라고 쓴다. 혹시 이것의 잘못이 아닐까?)
34. 二十世紀大慘劇帝國主義 (20세기 대참극 제국주의) / 변영만 / 1908년
35. 强者의 權利競爭 (강자의 권리경쟁) / 유문상(劉文相:국채보상운동의 주역) 번역 / 일본책 『強者の権利の競争(1893)』을 번역한 것인데 이 책은 진화론을 통해 천부인권설, 이상주의 관념존 종교적 세계관 등을 소개하고 있음
36. 大家論集 (대가론집) / 유문상(劉文相) 번역
37. 靑年立志編 (청년입지편) / 유문상(劉文相) 번역
38. 男女平權論 (남녀평권론) / 최학조(崔鶴詔) / 1908년 / 남녀평등 사상을 다룬 책
39. 片片奇談警世歌 (편편기담 경세가)/홍종온(洪鍾穩)/대한매일신보에 연재(아전에게 골탕먹는 지방 수령 이야기 등등이 수록)
40. 쇼아교육 (아의 ㅏ는 ㆍ) / 임경재(林景宰 : 휘문고 교장, 조선어학회 창설멤버)
41. 愛國精神 (애국정신) / 이채병(李採丙) / 아래 책의 한문본.
42. 애국졍신담 (애의 ㅏ는 아래아) / 이채병(李採丙) / 1908년 / 애국단체 서우학회(西友學會)의 기관지 서우(西友 : 1906.12-1908.1 박은식이 주필)에 연재되었던 글모음
43. 夢見諸葛亮 (몽견제갈량) / 유원표(劉元杓 : 해직군인) / 1908년 / 꿈에 제갈량을 만났다는 뜻으로 사회비판과 계몽주의를 논하고 있다.
44. 乙支文德 (을지문덕-漢文) / 신채호 / 1908년
45. 을지문덕 (국문) / 신채호 / 1908년
46. 伊太利建國三傑傳 (이태리 건국 삼걸전) / 양계초 지음 신채호 번역 / 1902 / 이탈리아 건국의 세 주역에 대한 이야기. 양계초는 이무렵 가장 인기있는 사상가여서 이 책은 무려 4종의 번역물이 있었다.
47. 噶蘇士傳 (갈소사전) / 양계초 지음 이보상(李輔相) 번역 / 원제는 [흉가리 애국자 갈소사 전]이다. 헝가리의 애국자 헤수스에 대한 이야기.
48. 華盛頓傳 (화성돈전) / 이해조(李海朝) 번역 / 1908년 /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의 전기다.
49. 波蘭末年戰史 (파란 말년 전사) / 작자불명 / 폴란드 왕국 말년의 독립전쟁을 다룬 것으로 1905년에 대한매일신보에 연재되었다.
50. 美國獨立史 (미국독립사) / 현은(玄隱) / 1899년
51. 埃及近世史 (애급 근세사) / 장지연 번역 / 1905년 / 이집트의 근세사를 기술함. 서문을 박은식이 썼다.
그리고 어떤 권력이 책을 다 없애려고 한다고 해서 성공한 예가 없다. 진시황제의 분서갱유로 사서삼경이 멸실되었는가?
여기까지 출처: 초록볼의 잡놈자식
창씨개명 신사참배 등으로 조선을 말살했던 총독부의 얘기를 그대로 믿으라?
아아아 그러나 어쩔것인가?친일매국노 명단에 오른
이병도를 민족사학자라고 입에 거품을 물고 쉴드를 치던 이 이작자
일본의 양심있는 학자가 일본이 유출한 고서 목록 5만권을 공개하는데
일 교수가 일본 유출 한반도 고서 5만여권 목록 집대성 |
한국학 이정표 평가...도야마대 후지모토교수 유일본 다수 발굴, ‘문화재 반환’ 요구 근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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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조선서지학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후지모토 유키오(65) 도야마 국립대 교수가 ‘일본 현존 조선본 연구‘ 중 첫 권인 ‘집부‘(개인문집)를 지난달말 발간했다고 10일 밝혔다. (도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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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으로 유출된 한국 고서 5만여권의 목록 이 한 일본인 학자의 일생에 걸친 작업 끝에 집대성됐다.
일본 조선서지학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후지모토 유키오(藤本幸夫.65) 도야마 (富山)국립대 교수는 그 결실로 '일본 현존 조선본 연구' 중 첫 권인 '집부'(集部.개인문집)를 지난달말 발간했다고 10일 밝혔다.
고려말부터 조선시대 전체에 걸쳐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네진 방대한 양의 고서를 확인, 일목요연하게 분류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한국학 연구사의 획기적 이정표로 학계는 평가하고 있다.
특히 이들 고문서에는 조선통신사의 전수 등 한반도의 선진문물 전래 차원에서 건네진 것 외에 임진왜란 등 전란과 일제시대를 거치며 사실상 약탈된 것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향후 우리 정부의 '문화재 반환' 요구의 근거로도 활용될 수 있을 전망이다.
목록에는 고서의 저자와 판본, 각수(刻手.판목을 새긴 사람), 장서인, 종이질, 활자, 간행연도 등 서지학적인 정보가 망라돼 책의 성격과 내용을 한눈에 짐작할 수 있도록 했다.
후지모토 교수는 한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1970년부터 궁내청 도서관과 동양문고, 국회도서관, 도쿄대, 교토대, 게이오대 도서관 등 일본 내 대형도서관은 물론 지방의 공.사립도서관과 개인서고, 영국 대영박물관, 대만 고궁박물관 등 100여곳의 도서관을 샅샅이 훑어 육안으로 책을 확인하고 목록을 옮겨적는 방식으로 작업을 마쳤다.
이번에 교토대 출판부에서 나온 첫 권인 '집부'(1천350쪽)에는 3천여종 1만권 이상의 개인문집 목록이 수록됐다.
특히 조선전기 성리학자인 김종직(金宗直)의 문집인 '이장길집'(李長吉集) 1권 1책, 안평대군의 문집인 '비해당선반산정화'(匪懈堂選半山精華) 6권2책, 조선 전기 문신 강희맹(姜希孟)의 문집인 사숙재집(私淑齎集) 17권4책, 조선 중기 문신 김인후(金麟厚)의 문집인 '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 13권13책 등 한국에는 없는 일본 유일본과 최고본, 선본(善本) 등 귀중한 문집이 다수 발굴돼 목록에 포함됐다.
후지모토 교수는 중국의 고서분류법에 따라 경(經.경전).사(史.역사), 자(子.자전), 집(集.문집)별로 일본 내 한국 고서의 목록을 만들었으며 경.사.자를 집대성한 성과는 내년 이후 차례로 발간할 계획이다. 또 색인집과 도록, 증보판 등도 출간하기로 했다.
후지모토 교수는 1967년부터 3년간 서울대에 유학하면서 언어학과 국어국문학을 공부했다. 한문과 문헌에 관심이 많던 그는 당시 서울대 규장각 등에서 고서를 접할 기회가 많았으며 귀국 후 일본의 조선 어학관계 고서를 발굴하기 시작하면서 대상을 고서 전반으로 확대, 일생이 소요된 대장정에 발을 디뎠다.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후지모토 교수는 "일본 전국을 돌아다니며 책 한권을 확인하는데 이틀, 사흘씩 걸리곤 해 시간이 부족한 것이 가장 힘들었다"며 "하지만 전체 유출본의 95% 가량을 찾아내 목록화한 만큼 이 작업이 조선학을 공부하는 세계 여러 나라 학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노경희(교토대 문학부 박사과정)씨는 "후지모토 선생은 지난 35년간 일본 각지를 직접 다니며 고서를 한권 한권 직접 열람한 뒤 목록을 정리했다"며 "일본에 소장된 한국 고서와 관련한 기초적인 자료는 모두 정리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평했다.
신지홍 특파원 shin@yna.co.kr (도쿄=연합뉴스)
日유출 한국고서 5만권 목록 만든 후지모토 교수
일본으로 유출된 한국 고서 5만권의 목록을 정리한 후지모토 유키오 도야마대 교수. 도야마=천광암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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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세기 일본으로 유출된 고려와 조선의 고서 5만 권의 목록을 60대 일본 학자가 35년에 걸친 추적과 조사 끝에 집대성했다.
조선 서지학(書誌學)의 권위자인 후지모토 유키오(藤本幸夫·65·사진) 도야마(富山)대 교수는 그 성과물인 ‘일본 현존 조선본 연구’ 1권을 지난달 말 발간했다.
편찬 작업에만 8년이 걸린 1권 ‘집부(集部)’는 조선과 고려시대의 개인 문집 1만 권(3000여 종)의 정보만 우선 추려내 정리한 것이다. 나머지 4만권에 대한 자료는 앞으로 7, 8년을 더 들여 3, 4권의 책으로 발간할 예정이다.
그가 집대성한 자료에는 현재 한국에 없거나 일부 내용이 소실된 고서 수백 권의 소재와 보관 상태도 상세히 기록돼 있어 조선 문화 연구의 귀중한 기초 자료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안평대군이 송나라 왕안석의 글을 모아 펴낸 ‘비해당선반산정화(匪懈堂選半山精華)’ 6권 2책, 조선 전기 문신 강희맹(姜希孟)의 ‘사숙재집(私淑齋集)’ 17권 4책, 조선 중기 문신 김인후(金麟厚)의 ‘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 원각본(原刻本) 13권 13책 등이 대표적인 사례.
후지모토 교수가 정리한 자료에는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실상 약탈된 책들에 대한 정보도 있어 우리 정부가 반환을 추진하게 된다면 근거 자료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후지모토 교수는 일본의 국회도서관과 주요 대학 도서관을 빠짐없이 뒤졌고 고려와 조선의 고서가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지방의 작은 도서관이나 개인 서고까지 마다 않고 찾아다녔다.
일본의 개화기에 고서 중 일부가 흘러간 영국 대영박물관과 대만 고궁박물관도 찾았다.
세월이 많이 흘렀거나 내용이 복잡한 책은 단 한 권의 서지 정보를 메모하는 데도 2, 3일이 걸렸다. 35년이라는 긴 세월을 들이고도 5∼10%는 아직 자료 정리를 하지 못한 이유다.
도서관의 목록에 조선의 고서가 중국의 고서로 분류돼 있는 사례가 적지 않았던 점도 바쁜 발길을 붙잡았다. 후지모토 교수는 이로 인한 자료 누락을 막기 위해 직접 서고에 들어가 고서를 한 권 한 권 확인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루한 작업이라 중도에 포기하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하지 않을 일”이라며 자신을 채찍질했다. 1967년부터 3년간 서울대 등에서 유학할 때 많은 도움을 주었던 한국의 지인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그에게 힘이 됐다.
후지모토 교수는 “이번 책이 일본의 정신문화를 연구하는 데도 기여하기를 바란다”면서 “일본은 삼국시대 이래 한반도에서 많은 문물을 전수 받아 그 정신문화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일본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도야마=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35년 긴 세월을 들이고도 10%가 정리 안된 일본에 빼앗긴 사서
그리고 세계역사 유래 고서가 말살된 사례
1) [아시리아]의 가혹한 통치(잔인한 포로처리*피정복자를 학살하여 해골언덕을 만들어 경고한 기록 등)와 민족 및 역사 말살정책(사르곤 2세 때 북北 왕국 이스라엘의 실례實例-아예 백성들을 제국 내 여러 곳에 분산시키고 정복지에는 다른 민족을 이주시키는 철저한 식민정책)은 대표적인 예例이다.
2) <바빌론>의 왕 <느브갓네살>에게 망한 <앗시리아>의 수도 <니네베>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1642년에 이르러 고고학자 레이아드(A. H. Layard)에 의해 유적이 겨우 발견될 무렵까지 <사르곤 왕>도 전설의 존재로 치부되었다(얼마나 완벽하게 소멸되었던지 BC 331 알렉산더의 대군大軍*BC 111 크세노폰의 군대*근세의 나폴레옹 군軍이 이 지역을 통과했으나 발견되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 <아슈르바니팔> 왕王은 왕궁王宮에 부속도서관을 짓고 각종 사료史料를 수집*정리하였는데 거의 대부분이 훼손*유실되어버린다.
3) <히타이트인>의 침입과 <페르시아>에 의한 마지막 공격으로 멸망한 <바빌로니아] 시대의 찬란한 문화유적*유물*관련 서적들은 그 중심이었던 [바빌론]이 완전히 파괴됨으로서 역사에서 사라져버렸다.
4) 평화 조약을 고지식하게 믿은 <카르타고> 문명의 소멸과 이에 대한 파괴*약탈*소각의 명분으로 내세운 로마인들의 [카르타고 사람들이 <몰록>이라는 신神에게 아이들을 제물로 바쳤다는 거짓말]은 그 전형적인 예例이다
5) [목마木馬의 사기술]을 생각해 낸 <오디세우스>의 꾀에 속아 적敵의 선물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가 심야의 대학살과 처참한 파괴를 맞게 된 <트로이>의 사례事例를 보라.
6) 신성神性으로 무장한...혹은 신神의 정의란 이름으로 <십자군>에 의해 이슬람 지역에서 벌어졌던 무자비한 살육과 파괴 그리고 방화는 아직도 우리의 기억에 생생하다.
7) 반란의 기미를 원초적으로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차곡차곡 진행되어 갔던 몽골의 정복지역 파괴는 무자비함의 극치였다.
※ 누가 <패자敗者들의 아름다웠던 문명에 대한 진실>을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역사책들은 우리에게 다윈주의에 바탕을 둔 역사관을 계속 주입한다. 그것에 따르면 어떤 문명들이 사라진 것은 적응을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를 면밀히 검토해 보면 가장 개화한 문명인들이 종종 가장 난폭한 자들 때문에 멸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5권>
1) 이방異邦이었던 <갈리아>를 정복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갈리아 전기』에서만 기록된 야만인에 대한 언급과 <켈트족>의 사라진 찬란한 문명에 대한 기억의 소멸을 생각해 보라.
2) 이집트의 기록에만『바다의 민족에 의해 멸망되었다』고 등장하는 <히타이트 제국>은 그야말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번성했던 <아나트리아> 고원은 400-500년간이나 사람이 살았던 자취를 찾지 못할 정도로 황폐해졌다. 최근 발굴 결과 수도首都로 추정되는 지역의 석벽石壁들이 고온高溫에 녹아버린 흔적이 있을 만큼 완전히 소각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3) 에스파냐 인人들의 강제적인 개종정책으로 말미암은 <아스텍족과 잉카족>의 역사 인멸湮滅은 참으로 잔혹했다.
4) 제국주의 확대과정에서 벌어진 영국의 아라비아지역에 대한 지속적인 문화 말살과 광범위한 지대에서 벌어진 약탈은 우리의 기억에 새롭다.
5) 유럽 세력에 의한 이집트를 비롯한 아프리카 선진 문명 및 인도 등 중동의 이방異邦 문화와 아시아에서의 고유 역사유물 강탈과 파괴를 보라.
6) 열강列强의 청淸 제국에 대한 무차별적인 방화와 약탈 그리고 많은 역사 유물과 고문서 등 탈취(태평천국의 난 등의 진압과정)는 특히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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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복자들은 피해자들의 진실이 담긴 역사책들과 물건들을 없애 버리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피해자들을 모욕한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5권>
마지막 결정타 총독부가 50권 사서만을 금서로 정했다는데
어라 이게 무슨 일????????????????
일제日帝의 민족사서 말살정책은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본격적인 작업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번째로 치밀한 행보行步가 시작되는 과정이 [조선사편수]를 빙자한 조선 고사古史 및 관련 문헌의 수집*인멸이다. 유구한 한민족韓民族의 역사 왜곡을 감추기 위한 두 번째 포석布石인 [조선사 편수를 미명美名으로 한 고사古史 수집 및 인멸 작업]이었다.
- ...그러니 차라리 이러한 서서史書에 대신하여 공명적확公明的確한(?) 새로운 사서史書를 만들어 내어 그들에게 읽게 하는 것이 그들로 하여금 동화同化의 효과를 가져오게 하는 첩경이며 또한 그 효과도 현저할 것인즉 여기에 조선반도사의 편찬을 새롭게 하고자하는 필요한 이유와 근본 취지가 있는 것이다. <조선사편수회 사업개요>
참 미묘한 표현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부분이 나타난다. 스스로 <조선사 편수>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즉 [조선반도사의 편찬을...]이란 말로 단군조선의 최대강역을 삭제하고 반도사로 축소할 의도를 공공연히 표출하였으며 이를 위하여 이에 배치되는 고서古書와 문헌들의 운명이 앞으로 어찌될지 암시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그렇게 시작하고 있다.
1) 조선민족의 기원과 국가의 개창開倉*형성에 이르기까지의 발전과정에 관한 이 나라 고유의 사화史話*사설史說 등은 일체 무시하고 오로지 기록에 있는 사료에만 의거한다. <同書 47p>
※ 이를 위한 뒷받침으로 앞으로 전개될 본격적인 전래 사서史書 압수와 수거 및 소각*인멸의 목적과 취지가 명백히 드러나는 문구文句이다.
2) 조선반도사(분명히 편찬의 범위를 적시하고 있다) 편찬의 시대구분은 제1편 상고上古*삼한三韓 제2편 삼한 제3편 통일신라...<동서 7p>
※ 특히 주목할 기록이다. 왜냐하면 전제로 한 [조선반도사 편찬]의 목적 달성을 위해 이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시대구분 원칙에서 제1편이 삼한三韓 이전(제1차 위원회)→ 신라통일 이전(제2회 위원회)으로 의도적인 변화를 겪기 때문이다.
결국 [조선민족의 기원과 국가의 개창開倉*형성에 이르기까지의 발전과정에 관한 이 나라 고유의 사화史話*사설史說 등은 일체 무시하고 오로지 기록에 있는 사료에만 의거한다]란 명제命題를 확실히 보장해주기 위한 조치가 이루어진다.
[1916년 1월]부터 <자료수집>의 명목으로 <반도사>의 범위를 넘어선 우리 민족사서에 대한 대대적인 수집 작업이 시행되고 있다. 이는 1918년에 이르기까지 오직 자료수집이란 미명美名에 집중하여 방대한 수거 목록과 수거수량 때문에 편찬연한을 부득이 연장한다는 기록을 보아도 여실히 짐작되는 부분이다(조선문화보급회 간刊 조선대관朝鮮大觀 154p>.
이어 총독 제등 실齊藤 實에 의해 1923년 5월 [조선사 편찬에 관한 고古 기록*문서 등 보존에 관한 훈시訓示]를 시달하여 각급 행정*경찰관서의 협조 아래 치밀한 수거작업을 강화한다. 조선사편수회사업개요(92p)는 대정大正 11년(1922년) 즉「조선사편수회」가 확대 개편되기 이전부터 사료를 수집했음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1922년 8명의 관계자가 연 122일을 출장했으며 23년에는 17명이 연 204일*24년에는 12명이 연 176일*25년에는 15명을 연200일 동안 전국을 누비어 누계累計로 보면 총 259명의 전문요원들이 2800일 동안 조선 사료를 찾아방방 곡곡을 쑤시고 다녔다.
이어 1926년 12월에 이르러 [사료탐방내규史料探訪內規]를 공포하여 각 관서官署의 강력한 후원을 기반으로 남아 있을지 모르는 사료史料와 일본*만주*대마도의 사서史書들도 포함시킨다.
결국 이 무렵부터 1937년 말까지 15년간이란 장기간長期間에 걸친 끈질긴 수집으로 그나마 남아 있던 전래傳來 고문헌古文獻들이 빠짐없이 수거收去되었는데 중요한 것만도 사책史冊 4950권*문기文記등 453점(대마도의 경우 古문서류 61,469장*고기록류古紀錄類 3576冊*고지도류古地圖類 34장 등)에 이른다.
※ 이 때문에 1922년 8월 2일 열린 제4회 위원회에서 최남선 등의 반발로 수집된 문헌자료 가운데 가장 귀중한 사료는 등사謄寫하여 [복본複本]을 만들어 본문과 함께 대학이나 도서관 등에 보존하기로 결정하였는데 1925-1937년 3월까지만 해도 수량이 1623책冊에 달하였으니 수거의 규모를 능히 짐작할 수 있겠다. 허나 이것들 역시 해방이 되면서 없어져 오늘날까지 전혀 행방이 묘연하다.
【3차 총독부 등 공식적인 통로와 관서官署를 동원한 조선왕조 소장 문헌*사서史書 수거 및 방출】
이 과정에서는 특히 왕실王室 공식公式 장서각(藏書閣-규장각奎章閣 등)에 있던 문헌사료나 관찬사서官撰史書*사찬사서私撰史書들이 수난을 당한다. 이와 병행하여 전국 주요처主要處에 있던 서사書肆*권문세가權門勢家*유향비장고儒鄕秘藏庫등의 은밀한 보존문헌과 도가사서류道家史書類의 잔질殘帙까지도 깡그리 약탈당하였다.
후일 식민사관의 표상이 된 [조선사 편수 작업]을 붕괴시키거나 민족사관을 회복할 가능성이 있는 근거 사료들을 집중적으로 압수*수색하여 말살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그리고 기록을 통한 관련 서목書目 조사가 공공연히 이루어져 이때에 반출된 수많은 사서류史書類들은 아직도 日本 궁실宮室에서 보관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므로 매우 주목을 요하는 부분이다.
1) 금서룡今西 龍조차 자신의 저서著書인 <朝鮮古史の硏究>의 <단군고檀君考>에서 <이조李朝 태종太宗 왕조실록王朝實錄 12년 條에 열기列記된 신비집 神秘集*고조선비사 古朝鮮秘詞*대변설 大辯說*조대기 朝代記*주남일사기 周南逸士記*지공기 誌公記*표훈천사 表訓天詞*삼성밀기 三聖密記*안함로 원동중 삼성기 安含老 元董仲 三聖記*도증기 道證記*지이성모 智異聖母*하사량훈 河沙良訓*문태산 왕거인 설업 등 삼인기록 文泰山 王居仁 薛業 등 三人記錄*수찬기소 일백여권 修撰企所 一百餘卷*동천록 動天錄*마슬록 磨虱錄*통천록 通天錄*호중록 壺中錄*지화록 地華錄*도선한도참기 道詵漢都讖記 등의 서적들이 왕씨고려시대王氏高麗時代에 서운관書雲觀을 중심으로 하여 많이 존재하였다. 이러한 서적들이 고려시대로부터 이조李朝 初까지 구전되어 내려오는 단군고기檀君古記에 연유하여 도가(道家-선가仙家)에 의하여 저술되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스스로 피력하고 있다(동서同書 53p)
어라?이게 무슨 일일까?
일본 총독부가 친절하게 금서라고 지정해준 50권 이외에<
조선 역사 말살에 선봉장이었던 금서룡이 언급하는책 전부 환단고기와 관련이 있지않은가?
그렇구나 금서룡은 시대를 앞선 국제적인 환빠! 없던 사서를 만들었구나ㅠㅠ
잔악하리만치 조선을 탄압하고 역사말살에 혼신의 힘을 다했던
일제 총독부 50권 금서 얘기가 무조건 믿어야할 100% 진실이군요
이야기 결론
1. 초록볼의 잡놈자식이라는 작자가 일제에 의해 강탈당한 역사서가 수십만권이라고 말한
민족사학자들을 한순간에 미친놈으로 만들고 일제를 두둔하기 위해 말장난을 했다.
무려 15년이 넘는 시간을 통해 조선에 있던 사서를 수십만권을 강탈한 기록이 남아있는데
이러한 얘기는 모두 빼버리고 총독부가 발표한 금서 목록 50권 이것만 보여주고
일제가 한국 역사를 왜곡했다는것은 거짓말 20만권 사서 강탈 얘기는 거짓으로 만들었다.
대체 누굴 위하여 진실을 왜곡하고 일본편을 들며 민족사학들을 정신병자로 만드는가?
위에 나와있는 고서 강탈 목록을 확인하지 못하고 한 얘기라면 이자는 역사를 입에 담을자격도 없는 아마추어 수준도 안되는 무식한 소인배라는 증거가 되는것이고
위에 나와있는 사실을 알고도 50권 금서 드립을 날린것이라면 이자는 21세기 친일매국노
작정하고 거짓말을 하며 분명하게 일본을 두둔하고 역사왜곡에 발벗고 나선 것이다.
일본의 양심있는 후지모토라는 학자가 찾아낸 무려 고서만 5만여권
문제는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일본의 왕실 도서관에 정말 중요한 서적이 있다는것
역사는 승자의 편이라는것은 거짓말이라며 죽어도 일제에게 사서를 강탈당한적이 없고
진시황이 분서갱유한 것과 일제가 수십년 동안 작정하고 사서를 강탈하고 없앤것을
동급이라고 보는 무뇌아적인 발언까지.... 국가대 국가 등식의 역사 말살의 사례는
페르시아에 멸망당한 바빌론 로마에 의해 흔적이 지워진 카르타고를 보면 된다.
그 화려했던 잉카 제국이 에스파냐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 사례를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