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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학의 심각성과 주류로 자리 잡은 이유 (꼭 봐야합니다)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1-12-27 17:32:41
추천수 3
조회수   867

제목

식민사학의 심각성과 주류로 자리 잡은 이유 (꼭 봐야합니다)

글쓴이

최정현 [가입일자 : 2008-06-19]
내용
Related Link: http://blog.daum.net/nero1003

 펌)


  연세대 교수를 지내신, 역사학계의 존경받는 원로이신 김용섭 선생님께서 최근에 발간하신 회고록에서 해방 이후 어떻게 잘못된 과정으로 식민 사학이 역사학계의 소위 주류로 자리 잡으면서 아직까지 강단 권력을 휘어잡으면서 우리 역사와 민족을 좀먹게 되었는지 그 상황을 잘 증언해주신 부분이 있어서 발췌, 소개해 드립니다.  
보시는 분의 객관적인 판단을 위해서 가급적 저의 별다른 사족 같은 것은 달지 않겠습니다.

6.25전쟁 이래로 남에서 제기되는 통사의 편찬 문제는, 아직은 깊은 연구에 기초한 식민주의 역사학의 청산없이, 우선은 기성의 일제하 세대 역사학자들에게 일임되는 수밖에 없었다.
그 기성학자들은 일제하 일본인 학자들에게 역사학을 배우고, 그들과 더불어 학문 활동을 같이해온, 이른바 실증주의 역사학 계열의 학자들이 중심이었다.
(김용섭, "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 p35)

해방이 되었을 때, 서울에는 전통적 역사학에 기초하여 우리 역사의 고대사를 연구하는 신채호 계열의 정인보, 안재홍 등 민족주의 역사학 또는 신민족주의 역사학의 학자가 건재하고 있었다...중략...
그렇지만 6.25전쟁 이후에는 이들 모두가 북상을 하였고, 따라서 그 학문적 전통이 대대적으로 계승 발전되기는 어려웠다.
따라서 실증주의 역사학자들은 역사학계의 원로로서 주요 대학의 교수직을 독점하였으며, 그 저술은 역사학계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가는 자산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중심이 되었던 것은 이병도의 『조선사대관』과 그가 이끄는 진단학회의『 한국사』(전 7권)이었다.
(김용섭, "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 p35~36)

별다른 사족을 달지 않겠다고 했지만 정인보 선생님께서 피랍, 납북되신 것은 정말 하늘을 우러러 땅을 치고 통탄해 마지않을 엄청난 비극입니다.
정인보 선생님만 계속 대한민국에 계셨다면 어떻게 이병도 따위가 국사학계의 태두로 군림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을 것이며 나아가 식민 사학이 학문 권력을 잡고 소위 주류로 군림하는 비상식적인 일이 지금까지 벌어지고 있겠습니까?
정말 두고두고 통탄해 마지 않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곡된 역사학의 청산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던 학자들은 대부분 북상하고, 서울이나 기타의 대학에 남아서 학생을 교수하고 지도하게 된 학자들은 이러한 문제를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인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역사학을 단지 과학적·합리적 근대 학문으로서 연구하면 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역사 인식의 자세가 안이하였으며 그러한 한에서는 일제하의 역사학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하여 남의 역사학계에서는 이 청산 문제가 사실상 실종 상태에 들어가게 되었다...중략...
친일 민족반역자 처벌(반민특위법)이 무산되었던 사정과도 관련하여, 역사학에서 식민주의 역사학의 청산 문제를 거론하기 어렵게 하였다.
(김용섭, "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 p469)

마지막으로 본 포스트의 주제와는 무관하지만 김용섭 선생님께서 평가하시는 민족주의 사학이란 어떤 것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한국 시기의 역사학을 계승, 발전시킨 것은 이른바 '민족주의 역사학'으로 불리는 학자들이었다.
민족주의 역사학은 구한국 시기에서 일제 초기에 걸쳐 활약하였던 박은식이나 신채호 등에 의해서 계발되었다.
그리고 이 민족주의 역사학을, 구래의 전통적 역사학의 단계에서 한 단계 높은 위치로 비약시킨 것은 단재 신채호였다.
민족주의 역사학의 방법론적 기반은 전통적 역사학의 고증학이었지만, 그러나 그에게는 그와 같은 기반 위에 근대 역사학의 방법론이 도입되고 있었다.
(김용섭, "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 p516)


 


 


 


 


 


[한겨레] 김용섭 전 연세대 교수 회고록서 밝혀


식민주의 역사 연구활동 반발 부딪혀

"(동료 교수들의) 말씀은 부드러웠지만 논조는 강하였다. 명령이었다."

일제 식민사학 극복의 초석을 닦은 역사학자로 평가받는 김용섭(80·사진) 전 연세대 교수가 최근 낸 회고록에서 서울대 교수 시절 자신의 사관을 둘러싼 동료 교수들과의 갈등으로 서울대를 떠났다고 밝혀 눈길을 끌고 있다.





조선후기사회의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B3%BB%C0%E7%C0%FB+%B9%DF%C0%FC%B7%D0&nil_profile=newskwd&nil_id=v20110412210040755" target=_blank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mouseover="UI.toolTip(event)">내재적 발전론, 자본주의 맹아론 등을 주창해온 김 교수는 자신의 학문적 여정을 담은 회고록 < 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 > (지식산업사)에서 1975년 16년간 봉직했던 서울대를 떠나 연세대로 옮긴 배경으로, 해방 뒤 친일 전력에도 국내 역사학계 1인자로 군림한 이병도(1896~1989) 전 서울대 교수와 그를 따르는 동료 교수들과의 알력을 지목하며 당시 비화들을 공개했다. 특히 1966~1975년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로 일하던 때는 "연구활동이 절정기"였고, 당시 이병도가 이끌던 주류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BD%C7%C1%F5%C1%D6%C0%C7&nil_profile=newskwd&nil_id=v20110412210040755" target=_blank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mouseover="UI.toolTip(event)">실증주의 역사학(문헌, 유물 고증에 바탕한 역사학) 등을 성찰·비판하는 학술운동을 펼치며 적극 발언에 나섰던 시기였다. 이런 활동이 다른 학자들 반발을 불렀다는 것이다.

회고록을 보면, 동료였던 고 김철준 교수는 "김 선생 민족주의는 내 민족주의와 다른 것 같아"라고 했고, "이○○(이병도) 선생에 대해서 무슨 글을 그렇게 써!"라고 질책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이를 각각 경고성 발언과 절교성 발언으로 받아들였다고 회고했다. 고 한우근 교수는 여러 사람이 있는 가운데 "김 선생, 우리 이제 민족사학 그만하자"라고 말했다고 썼다. 김 교수는 이런 교수들의 지적들을 '명령'으로 보고 서울대를 떠날 결심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또 자신의 강의 시간에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C0%D3%B3%AA%C0%CF%BA%BB%BA%CE%BC%B3&nil_profile=newskwd&nil_id=v20110412210040755" target=_blank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mouseover="UI.toolTip(event)">임나일본부설 등 식민주의사학을 제창해온 일본 학자 스에마쓰 야스카즈(전 경성제대 교수)가 참관을 요청한 일도 떠올렸다. 스에마쓰의 제자였던 고 김원룡 교수가 찾아와 "강의를 참관코자 하시기에 모시고 왔어요. 김 선생 되겠지?"라고 했다는 것이다. 식민주의 청산을 주창했던 김 교수에 대한 '은밀한 압박'으로 받아들여지는 대목이다.

한편 김 교수는 12일 < 한겨레 > 와의 통화에서 "식민주의 사학이 극복됐다는 사람도, 극복되지 않았다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 서로 다른 학문적 경향들이 하나의 '한국사학'을 만들기 위한 과정 속에 함께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회고록 출간의 소회를 밝혔다. 서울대 역사교육과의 한 교수는 김 교수가 책에 공개한 내용에 대해 "당시 사학계에서는 민족주의가 대세였다. 교수들 간에 입장이 갈릴 수는 있으나 논쟁을 벌이고 싸운 적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아직도 이병도를 민족사학자 까면  사살 드립 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추천 역사 홈페이지


하나가라 우리나라   http://blog.daum.net/nero1003




추천스크랩소스보기 목록
배정진 2011-12-27 17:44:10
답글

현재 역사학의 주류가 식민사관이 맞나요? <br />
<br />
이덕일씨가 현재 주류 사학자들과 여러가지 다른 시각을 제공해서 아주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br />
100% 옳다면 문제가 있지만 과거에 우리가 역사를 봐왔던 시각과 다른점이 많아서 아주 흥미로웠습니다.<br />
김용섭 교수님의 회고록 내용을 보자니 일면 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보이기도 하네요.<br />
<br />
그런데 자주가는 옆동네(dp)는 제법 진보

최정현 2011-12-27 17:50:40
답글

제가 추천해드린 블로그에 가시면 정리가 되실겁니다<br />
http://blog.daum.net/nero1003<br />
이덕일씨와 민족사학을 까는 원인이 초록불의 엉터리 글때문인데<br />
위에 블로그를 가시면 제대로 반박 그 거짓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br />
<br />

최정현 2011-12-27 18:09:43
답글

학도병 모집을 하고 조선 역사 말살하는 조선편찬위에서 승승장구하며<br />
그 공로로 일왕에게 상까지 받은 이병도를 민족사학라고 칭송하고<br />
단채 신채호 선생 정인보 선생을 정신병자로 매도하는 초록불의 정신상태 자체가<br />
글러먹은 것인데 거기다 민족을 거부하는 반민족적 성향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남두호 2011-12-27 19:41:15
답글

학교 다닐 때 윗쪽 책을 조금 읽은 적이 있는데<br />
역사 부분은 '주체사상, 김일성 교시' 부분만 뺀다면 우리쪽 역사 기술 보다는 훨씬 민족적이었습니다..<br />
아쉬운 것이 역사 마저도 교시와 주체 사상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br />
하지만 행간을 읽는다면 우리가 잘못 알고 , 잘못 생각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br />

최정현 2011-12-27 19:44:05
답글

남두호님 말씀대로 북한 역사관은 체계가 잘 잡혀있죠 <br />
정인보 선생같은 사학분들이 대거 북한으로 간것도 하나의 이유겠지요<br />

황규석 2011-12-27 20:09:03
답글

통탄할일이지요..<br />
대다수가 알지도 못하려니와 관심도 없습니다.

최정현 2011-12-27 20:17:59
답글

어찌 매국노 이병도를 민족사학자라고 칭송하는지 초록불 이작자 뇌를 뜯어봐야 합니다

남두호 2011-12-27 20:56:50
답글

아~ 이병도..<br />
MB만큼이나 우리 역사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인물이라 생각합니다..

최정현 2011-12-27 20:58:43
답글

ㅎㅎ 초록불이라는 종자는 신채호 선생을 정신병자라고 합니다<br />
이병도는 민족사학자라고 칭송을 하구요

어후경 2011-12-27 21:53:43
답글

좋은글 감사합니다. 제가 역사에 관심은 많은데 비해 아는것이 없는데 참 유익한 글이었습니다.

최정현 2011-12-27 21:57:01
답글

시간이 날때마다 역사글을 올리겠사오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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