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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별 지다,,,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1-11-28 19:57:48
추천수 11
조회수   1,356

제목

똥별 지다,,,

글쓴이

주세봉 [가입일자 : 2008-06-09]
내용
Related Link: http://www-nozzang.seoprise.com/board/view.php

.........국방부 장관을 지낸 유재흥 예비역 육군중장이 26일 오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1세.

1946년 군사영어학교를 나온 고인은 6ㆍ25전쟁에 참전했다. 육군 7사단장과 2군단장, 육군참모차장과 1군사령관, 제3대 합참의장 등을 역임했다. 예편 후에는 주 태국ㆍ스웨덴ㆍ이탈리아 대사, 3ㆍ4대 한국 석유화학공업협회 회장, 한국 참전단체총연합회 회장 등을 지냈다.........





그에 대한 일화는 링크 또는 아래 글을 참조하시면 잘 알수 있지요...





‘똥별’ 유재흥과 전시작전통제권

(서프라이즈 / 솔트 / 2010-09-28)





지난번 이야기한 무다구치(무다구치의 최후와 이명박 ☜)보다 한 수 더 뜬 한 병신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최근 뉴스를 보다 깜짝 놀란 적 있다. 경북 하양의 한 초등학교에 유재흥 전승비를 세웠다는 것. 사진은 이 병신과 인터뷰한 한 잡지사의 타이틀이다. 사진만 봐도 짐작할 테지만 이 글을 읽어 보면 딱히 경악할 것이다. (※ 이 글은 다음 블로거 이철님 글을 참조했다.)



어떻게 해서 대한민국 군대에 대한 작전통제권이 미국에 넘어가게 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아마 그리 많지 않다. 그럴 수밖에. 역대 정권에서 결코 알리고 싶지 않은 치부였다. 그에 깊숙이 관여한 한 인사가 이후 군부의 요직을 두루 거친 이고 보면 군도 밝히기 꺼려졌을 터이다. 하여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이 한국전쟁 도중 미국에 넘어가게 된 것은 알아도 그 과정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유재흥은 원래 일본 육군사관학교 출신이었다. 당시 일본군에 복무했던 인사들이 대부분 그러했듯 유재흥 역시 자신의 친일전력을 가리기 위해 친미와 반공을 부르짖으며 이승만 정부에 합류했다. 그의 초기 공적(?)은 제주에서의 4.3항쟁 진압이었다. 당시 유재흥은 2345명의 유격대와 1608명의 민간인을 살해했다. 이조차 한참 축소된 것이고 보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민간인을 학살했는지 감히 추측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제주도에서 용맹(?)하게 민간인을 사냥했던 유재흥이 1950년 6·25 발발 초기 의정부에서 7사단 자체를 아예 해체해버리는 위업을 달성한 것은 뭐라 설명해야 할까? 1950년 6월 25일 당시 준장으로 의정부 방면에서 7사단을 지휘하고 있던 유재흥은 경계임무에 소홀히 하고 있다가 느닷없이 나타난 북한군에 대해 병력을 축차 투입하는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름으로써 단 사흘 만에 서울까지 뚫리는 빌미를 마련하게 된다.



그러나 의정부에서의 졸전에도 불구하고 유재흥은 이후 2군단 군단장으로까지 진급한다. 그러면서 벌인 또 하나의 삽질이 덕천전투다. 1950년 11월 인천상륙작전의 여세를 몰아 북진을 거듭하던 연합군은 크리스마스 이전에 전쟁을 끝내자는 희망찬 전망 아래 크리스마스 공세을 펼치고 있었다. 그때 압록강을 건너 한반도로 들어와 있던 중국군이 덕천 일대에서 8군의 우익을 담당하던 한국군 2군단의 6, 7, 8사단을 포위공격하여 괴멸시킴으로써 연합군은 더 이상의 공세적 군사작전을 유지하지 못하고 후퇴를 결심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이때도 물론 2군단장이던 유재흥은 중국군이 공세를 취하기 전까지 그러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포위 괴멸당한다. 2군단의 붕괴를 안 연합군 지휘부에 의해 터키군 여단이 동일 지역으로 파견되었는데, 이들은 중국군의 기습을 받았음에도 제대를 유지하여 후퇴하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아무튼 덕천에서의 패배를 기점으로 인천상륙작전 이후 승승장구하던 연합군으로 하여금 더 이상의 공세적인 군사작전을 포기하고 긴 후퇴의 길에 오르게 되었다. 이어 청천강 방어선까지 무너지면서 저 유명한 흥남 철수에 이르렀다. 마침내 이듬해 1월 다시 서울을 버리고 남쪽으로 후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6월 28일 처음 북한군이 서울을 함락하는 데 큰 공을 세웠던 유재흥에 의해 이듬해 1월 4일 다시 서울이 함락당하는 역사에 보기 드문 위업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역시나 유재흥은 덕천에서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그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 3군단 군단장으로 임명되어 또 한 번의 대한민국 군 역사에 있어서 가장 치명적일 삽질을 준비하게 된다. 그 이름도 유명한 현리전투다.



1951년 당시 연합군에 의한 재차 역습에 의해 다시금 전선이 고착되자 중국군은 서부와 중부전선에서의 지지부진한 전황을 타개하고자 21개 사단을 동원해 미 10군단과 한국군 3군단이 포진한 인제 지역에 대한 공세를 시작한다. 인제를 돌파하여 서부전선을 포위하겠다는 전략인데, 돌입한 중국군에 의해 미 10군단에 속해 있던 한국군 5사단과 7사단이 돌파당하면서 중국군 한 개 대대에 의해 3군단의 보급로이자 퇴로이던 오마치 고개를 점령당하게 된다.



퇴로를 차단당하기는 했지만 아직 완전히 포위된 상황은 아니었다. 더구나 당시 3군단은 예하 3사단과 9사단의 병력과 장비를 온존했다. 장차 미군으로부터 공군 및 포병의 지원을 받는다면 역습도 충분히 가능한 상황. 보급물자도 적지 않아 최소한 버티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버틸 수 있었다. 굳이 더 열악한 상황에서 완전히 포위되었던 영국 27여단의 가평전투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럴 의지만 있었다면 결코 5만여 명에 달하는 병력과 모든 물자와 장비를 잃어버리는 한국 전사상 최악이라는 치욕적인 패배는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 9사단장이던 최석을 비롯한 상당수 고위장교들이 계급장을 떼고 먼저 도망치기 시작했고, 혼란을 수습하고 예하 사단들을 통솔해야 할 군단장 유재흥조차 작전 회의에 참석한다는 명분으로 정찰기를 타고 후방으로 도망쳐 버렸다. 전작 싸우려 해도 지휘할 지휘관 없이 병사들과 하급 지휘관들만이 남은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 상황에 무얼 어찌해야 할까? 결국 국군 제 3군단 예하 병력들은 지휘관 없이, 체계적인 지휘조차 받지 못한 채, 지리멸렬 와해되어 사흘 동안 무려 70km를 퇴각해야 했다. 더구나 당시 노획된 물자며 장비며 병력이 다시 중국군과 북한군에 의해 연합군을 공격하는 데 쓰이게 되었다.





▲ 현리전투에서 중공군에게 포로가 된 국군 3군단 병사들





당시 밴플리트 사령관과 유명한 일화가 있다.



밴 플리트 : 유 장군, 당신의 군단은 지금 어디 있소?

유재흥 : 잘 모르겠습니다.

밴플리트 : 당신의 예하 사단은 어디 있소? 모든 포와 수송장비를 상실했단 말이오?

유재흥 : 그런 것 같습니다.

밴플리트 : 당신의 군단을 해체하겠소. 다른 보직이나 알아보시오!



결국 이 현리전투의 패배로 말미암아 이미 전해 3군단은 완전히 해체된다. 한국군에는 1군단 하나만 남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 왔다. 한국군의 작전 능력에 대해 미군은 더 이상 신뢰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나마 한국군의 체면이나 입장을 고려해서 육군본부를 통해 간접적으로 지휘했는데, 그 패배 이후 한국군의 지휘를 미국 장성이 맡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미군 수뇌부에서 나오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들은 이후 한국군에 대한 모든 작전통제권을 미국이 가져가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두 차례 서울 함락과 2군단과 3군단의 해체, 그리고 작전통제권의 미국 이양 등 한국전쟁 당시 있었던 굵직한 사건들에 유재흥의 역할은 더없이 컸다 할 수 있다.



유재흥은 현리전투 이후로도 여전히 이승만 정부에서 중용되었다. 군사령관에 3대 합참의장에, 박정희 아래에서 국방부 장관까지 역임했다. 적전 도주죄가 군법상 즉결처분도 가능한 중죄였음에도 어떠한 책임도 처벌도 지거나 받지 않고 오히려 중용되어 요직을 두루 거쳤던 것이다. 그나마 1군단장은 시키지 않았으니 1군단까지 말아먹는 것은 막은 것을 잘했다 해주어야 할까?



지난 참여정부 노무현 대통령이 너무도 당연한 전시작전권 회수를 내세우자 똥별들 난리 났지. 이 똥별들 가운데 유재흥은 당당히 얼굴을 들이댔다. 자신이 마무리한 최대의 공적인 한국군의 작전통제권 완전 이양을 다시 되돌리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던 걸까.



한편, 이 잡지 인터뷰를 보니 현리전투 패배에 대해 유재흥이 이르길 자신이 가볍게 중공군을 다 섬멸했다고 하더라. 병신새끼.



그런데 이 새끼 아직 살아 있단다. 천수를 다 누리려 하나 보다. 개족 같다는 게 바로 이런 거다. 길 가다 만나면 염산 한술 입에 넣어 주시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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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복 2011-11-28 20:16:36
답글

참 읽을수록 정떨어지는 나라입니다....<br />
이상한게 저런놈들이 판을 치는데도 이나라가 존재하는게 참 신기하네요..<br />

정정훈 2011-11-28 20:17:37
답글

이 인간까지 돼져서,<br />
이 시간 이후라도 이나라의 굴곡진 역사가 조금이나마<br />
바로 설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정영회 2011-11-28 20:32:19
답글

헐,,,,,세상에 벽에 똥칠하고도 더살은 매국노이네요.

김주영 2011-11-28 20:34:25
답글

군법과 총은 저런 사람들 총살하라고 있는건데... 예나 지금이나 책임감도 없고 책임도 안지고... 에라이~

varuna21kr@yahoo.co.kr 2011-11-28 20:41:45
답글

죽을 넘들은 안 죽고 살아야 할 사람들은 죽고

정윤환 2011-11-28 20:49:09
답글

국립묘지 안장은 저런 똥별에게는 어울리지않는 대접이네요

임기종 2011-11-28 21:16:32
답글

전시작전권이 넘어 갈만 하네요

박종열 2011-11-28 23:09:20
답글

지금도 똑 같이 하고 있습니다. <br />
천안함의 패장들을 요직에 기용하고 있다네요. 이 넘의 나라는 지휘하는 넘들에겐 책임이 없다는 겁니다.... 지금도 똥별 무지 많을 겁니다. 진정한 CEO대통령이 들어서면 제일 먼저 구조조정해야 할 부분이 군입니다.

entique01@paran.com 2011-11-29 00:56:26
답글

이런쥐새퀴들은 참 오래도 쳐사는군요.

김재형 2011-11-29 02:18:33
답글

군에서는 똑똑하고 잘난 장교는 크게 성장 하지 못합니다.<br />
자신 보다 잘난 동기나 후배를 추천 하지 않지요. 좀 모자르고 자기가 휘두르기 좋은 사람을<br />
등용해줍니다.<br />
<br />
직업군인은 입바른 소리, 똑똑한척 해봐야 손해라는걸 다 압니다.

김재형 2011-11-29 02:20:35
답글

아참... 똥별이 가셨는데 인사 한마디 못했네요.<br />
<br />
" 잘 죽었다... 저승에가서 니가 사지에 버리고온 3군단 장병들 원혼을 실컷 면회 해보그라, 유똥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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