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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왕 파사매금(波沙寐錦)[2]은 미질기지파진십기(微叱己知波珍十岐)를 인질로 하여 금, 은, 채색능라(彩色綾羅) 등을 80척의 배에 실어 관군을 따라가게 하였다. 그 대문에 신라왕은 항상 배 80척의 조공을 일본국에 바친다. 이것이 그 연유다. 이에 고구려, 백제 두 나라 왕은 신라가 지도와 호적을 거두어 일본국에 항복하였다는 것을 듣고 가만히 그 군세(軍勢)를 엿보게 하였다.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스스로 영외에 와서 머리를 땅에 대고 "이제부터 길이 서번(西蕃)이라 일컫고 조공을 그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고려 때 편찬한 삼국사기에는 왜국에 조공을 보낸 기록이 없음
백제 왕족은 일본에서 태어나기도 하였고 백제에서 태어났어도 일본 왜백제에 가서 생활하다가 다시 백제로 돌아와 왕이 되는데 그 이유가 왜 였을까요?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의 패먕의 위기에 일본은 3만의 구원병을 백제 보내고 전쟁에 패하자 수많은 배를 보내어 관료와 백성을 걷어 관직을 그대로 유지하였다고 하는데 그 시대 왜국이 백제의 신하국이였까요? 아님 동등한 위치였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