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8월 26일 금요일, 부산 MBC에서 있었던 <문재인의 운명> 북콘서트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서울 2회 공연 후 지방에서는 처음 열리는 북콘서트인데, 예정과는 달리 부산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은 열 수가 없다고 합니다. 문재인 이사장이 그만큼 바빠졌다는 뜻이겠지요.
벌써 9년이 지났군요, 문재인 씨를 처음 본 것은 노무현 후보의 부산 선대본부의 출정식이었죠.
그 날의 유명한 발언,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는 노무현 후보의 소개에도 불구하고 문재인을 아는 사람은 그 자리에 많지 않았을 겁니다.
문재인 씨가 가장 먼저 연설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실과 다를 수는 있어도 큰 맥락으로는 이렇게 기억을 하거든요. "뒤로 갈수록 연설이 들을 만 했다고."
문재인 씨는 말이 많이 어눌합니다. 발음도 흐릿하고, 당시 기억으로는 내용도 재미 없었고 몹시 지루했습니다.
그 다음의 문성근은 반대로 너무 쇼맨쉽이 강했지요. 단상으로 굳이 뛰어 올라가는 연출, 약간 과도한 비분강개.
(왜 그렇게 안좋게 느꼈는가 하면 전에 동영상으로 한번 본 행동을 똑같이 반복했기 때문이었겠죠.)
정동영의 연설은 기술적으로 제법 들을 만 했습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큰 강점을 갖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물론 그 자리의 주인공인 노 후보야말로 연설의 끝을 보여 주었지요. 뚜렷한 논리, 우국지사적 비분강개, 설득력까지 어디 하나 부족한 게 없는 대단한 연설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 날은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찬조연설에 나온 추미애가 정몽준과의 후보 단일화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약속을 이 자리에서 하십시오, 하고 압박하고, 노후보는 말없이 웃었지만 당혹스럽고 불쾌한 표정이 역력했고, 저는 추미애가 왜 저렇게 노 후보를 가볍게 보고 건방진가 하고 기분이 나빴죠.
그로부터 바로 다음 날이던가 이틀 후던가, 노 후보는 전격적으로 단일화를 받아들이게 되지요.
다시 문재인 북콘서트 얘기로 돌아와서,
1부는 문재인, 오연호, 문성근, 김기식과의 4인 대화, 2부는 기획자 탁현민과의 대화, 그렇게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문재인 이사장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입장을 밝힌 적이 없습니다. 그날도 게스트들이 어떤 식으로든 대선출마에 대한 선언을 이끌어내려고 애썼지만 "아직은" 걸려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가까와 왔다는 느낌은 있었습니다.
1부의 주내용은 문성근이 주도한 "백만민란"이 확장되어 결성되는 <<혁신과 통합>>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본인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거라는 (이 분은 도무지 단언이라는 게 없습니다) 것과 차기 대선에 반드시 야권이 통합을 해야한다는 것이지요.
"문재인의 운명"을 몇 차례 통독한 다음이라, 그날 문재인이 말하던 에피소드는 거의 책 안에 다 들어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외 기억나는 발언은
1. 본인은 소신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경우에 따라 이렇게할까 저렇게할까 재면 귀찮기 때문에 그냥 소신껏 행동하는 게 편하다.
2. 오세훈의 셀프탄핵에 대해서는, 본인이 지금껏 봐온 정치행동 중에 한번도 본적이 없는 이상한 짓이라고 피식.
분위기는 참 좋았고, 노대통령 생전의 봉하마을처럼 훈훈함이 느껴지는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너무 준비가 안되어 있다! 권력의지가 있다, 없다 이전에 이 분이 아예 정치인인가 아닌가부터 논해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유시민을 차기대통령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건 2년 전 5월, 봉하마을에서 유시민의 살기어린 눈빛을 본 이후부터입니다.
쥐의 무리들을 거꾸로 매달아 악랄하게 탈탈 털어내서 5년간 먹은 걸 다 토해내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건 대전제 아닐까요?
반대의 입장에서, 김어준은 영결식장에서 백원우 의원의 돌발행동에 대해 MB에게 정중히 사과하는 문재인의 모습을 보고 이분이 대통령감이라고 생각했다고 하지요. 감정적으로 얼마든지 격해질 수 있는 그런 상황에서 극도의 냉정함을 갖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구요.
요즘 대세인 김어준 총수가 한 말이 맞겠지요.
그런데 제가 문재인 이사장에게 받은 인상은 그냥 상식인이라는 겁니다. 결코 도를 넘지는 못하는.
그날도 특별히 중요하거나 인상적인 발언없이 두루뭉수리하고, 말씀하시는 게 정말 어눌합니다. 이분에게 연설을 시키려면 보좌진들은 정말 많은 준비를 해야할 겁니다.
사실 이분이 크게 부각된 것은 책 발간 이후부터인데, 특히 공수부대 복무 때의 사진이 대중에게 강인하고 책임감있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각인시킨 게 아닌가 합니다.
정작 대중에게 야권 지도자로 노출되기 시작했을 때, 곧바로 노무현 급의 카리스마를 발산해내지 못한다면 급격히 실망하고 떨어져나가지 않을까요?
바로 문국현이 실패하고 돌아서 그 지점이지요.
2002년 당시의 노무현은 온몸에서 엄청난 기운을 쏟아냈었습니다.
문재인은 대통령감이 아니라고 단언하려고 이 글을 쓰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본인이 뚜렷한 권력의지를 갖지 않으면 이도저도 안되는 상황이 올거라는 건 분명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산에서 출마한 총선에서 실패한 후, 대선 하나만 바라보며 혹독한 공부에 들어갔습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컨텐츠를 준비하는데도 시간을 썼지만 무엇보다 본인을 대통령에 맞추기 위해 엄청난 자기수련을 하셨겠지요.
그런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사실상 어렵지요.
손학규 대표가 불러들여 민주당 최고위원이 된, 제 이웃사촌 김영춘 전의원도 얼굴을 비췄는데 내년 총선에 부산에서 출마할 예정인 모양입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로 주소지를 옮겼더군요.
손학규의 심복이 문재인에게 줄을 선다? 그보다는 손학규 진영은 문재인을 진짜 라이벌로 생각하지는 않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끝으로 그냥 사소한 불만 하나.
문재인의 북콘서트를 기획한 탁현민은 공연기획자이고, 성공회대 겸임교수로 있는데, 이 친구도 진중권과 동일한 지점에서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측면이 좀 있더군요.
저는 진중권이 평소 교수란 직함을 걸고 다니는 것, 그리고 타인이 그렇게 불러주기를 바라는 걸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겸임교수는 교수가 아니지요. 다른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전문성을 인정받아 강의 몇 시간 받는 일종의 계약직인데, 실질적인 의미는 없는 한시적인 명예직 같은 거거든요.
그런데 말끝마다 저는 교수인데요, 강의해야 되요, 교육자예요,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교수직에 대한 끝없는 동경, 컴플렉스라고 생각해서요.
솔직히 재미 없었습니다. 무례하다 싶기도 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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