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도 자주 가고, 직접 상을 치뤄보면 살아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냉동고까지 거리만큼의 차이인가 싶은 생각도들고 그렇더군요.
검은 색 상복 차림의 상주와 조문객들의 풍경은 익숙하지만,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곡입니다.
조문객과 웃으며 대화하고, 고인에 대한 슬픔은 좀처럼 찾기힘들던 사람들이 제사 시간만 되면 목청을 높여서 곡을 합니다. 호상이든 아니든 보통 부모의 상을 당하면 자주 보는 풍경이고요.
희희낙락하다가 갑자기 감정에 몰입해서 애가 타는 곡을 울리고, 곡이 필요한 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 싶게 평상심을 즉시 회복하고요. 곡의 극적인 효과는 발인이 되면 더 정점으로 치닫는데, 곡 소리가 충분치 못하다는 지적을 받으면얼마든지 크고 애닳게 이어집니다.
좋게 보면 고인에 대한 슬픔을 갈무리하고 있다가, 일시에 표출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삐딱하게 보면 보여주기 위한 행사에 불과하게 보이기도 하고요.
고인이 된 분에 대한 상념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도, 마른 수건을 쥐어짜서 나오는 듯한 곡소리를 들으면 그 자체도 거북하고 때론 웃다가 울다가를 3일을 반복하는 사람들이 더럭 무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간혹 저도 모르게 같이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경우는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주체 못하는 한이 묻어나는 흐느낌의 곡입니다만... 그 역의 경우는 자식들이 철들기 전의 경우가 보통이고 대게는 보이기 위한 쥐어짜기의 거북함 이상은 찾기 힘드네요.
문화 사대주의는 아니지만 조용히 슬픔을 함께하는 장례 문화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곤합니다. 특히나 3일을 내리 상주와 함께하면서 그 이상한 가면극을 끝까지 볼 때는 더더욱이요.
집사람에게 귀가하면서 나중에 우리 부모님 상에서는 누가 뭐라도 훈장질을 해도 억지 곡으로 난장을 만들지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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