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노조...민주사회를 저해하는 악의 축으로 급부상 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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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봉건왕조의 신분사회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정의 평등사회다. 봉건왕조와 민주공화정의 차이는 여러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지만, 간단히 말하면 신분제 사회냐 아니냐로 나눌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의 맨 처음인 제1조1항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고 규정한 것은, 그만큼 공화정이라는 평등사회를 지향하는 국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평등사회란 출신성분이나 신분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자신의 사회적 위치가 바뀔 수 있는 사회라는 뜻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기득권 세력의 권력과 부의 대물림이 심각하지만, 그래도 헌법과 법률 등 제도적 차원에서는 어떤 신분제적 세습도 허용하지 않는 평등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대낮에 이 공화정의 평등사회를 무시하면서, 한국사회를 봉건왕조의 신분제, 신분세습 사회로 돌리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다른 곳도 아닌 노조에서 말이다.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조가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이른바 '채용세습'을 관철하는 데 성공한 모양이다. 24일 타결된 노사협상에서 사용자측이 노조의 제안을 수용한 것이다.
회사에 공헌한 장기근속자의 자녀로 대상을 한정하고 다른 경쟁자와 같은 조건인 경우 채용 우선권을 준다는 토를 달았지만, 어차피 그것은 사족일 뿐 '채용세습', '고용세습'이라는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 같은 합의로 현대차 정규직 노조는 대를 이어 자녀들을 대기업에 취직시킬 수 있는 문을 열어놓았다. 그러나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공정한 기회의 균등이라는 최후의 원칙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채용세습하면서 어떻게 경영세습을 비판할 것인가
기회의 균등은 이 심각한 신자유주의 양극화 시대에 그나마 우리 사회가 지탱하고 있는 최후의 원칙이다. 가난하고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난 자식들의 마지막 희망의 끈이다. 정규직 조합원 가문의 '채용세습'이 정당화되는 순간, 회장님 가문의 '경영세습'을 비판할 통로는 봉쇄되고, 정치인 가문의 '정치세습'도 정당화된다. 자녀 사랑이 남다른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 같은 이들에게, 비윤리적인 자녀특혜채용의 책임을 물을 수도 없게 된다.
노조가 본래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이니까, 뭐가 잘못이냐고 항변하고 싶은가. 틀린 생각이다. 설령 노조가 조합원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조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당대의 조합원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아직 조합원도 아닌 미래의 자식에게까지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회사에 공헌한 장기근속자 자녀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변명은 하지 말자. 그런 취업기회가 있다면, 현대자동차를 세계자동차 시장 5대기업으로 성장시킨 결정적인 공헌을 하고도 비정규직 신세로 전락한 동료들에게 몫이 돌아가야 한다. 대기업 조합원 자녀에게 채용세습이 허용되면, 그만큼 젊은 취업생들의 취업기회가 줄어들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막히게 된다.
다른 경쟁자와 같은 조건인 경우 채용 우선권을 준다는 단서는 면피 수단조차 되지 못한다. 이미 기회균등의 원칙이 무너진 마당에 채점은 공정할 것이라 누가 보장하는가? 또한 같은 조건일 경우, 왜 조합원 자녀에게 취업 우선권이 주어져야 하는가. 오로지 신분세습의 허용 이외에 어떤 이유로도 설명할 수 없다. 가장 타락했다는 정치권조차도 선거에서 같은 득표수일 경우, 나이가 많은 연장자 순이지 현역 국회의원의 자녀라고 당선 우선권을 주지 않는다. 지금은 세습방식이 아닌, 연장자 당선원칙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 정도다.
만약, 채용자가 같은 조건이라면 오히려 연장자나 장애인, 탈북자, 사회적 약자, 또는 기초생활수급자 등 경제적 상황이 어려운 사람을 우선으로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합리적 기준이 될 것이다. 취업은 개인의 능력과 실력에 따르는 것이 우선이지만, 가난의 대물림을 막고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는 중요한 계기도 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기에 한국 대표기업의 거대 정규직 노조가 추구해야 할 일이 고작 '가문의 고용안정'은 아닐 것이다. '가문의 고용안정'과 '노동자 전체의 고용안정'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 묻는 것 자체가 입이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희망버스의 정신에 찬물을 끼얹지 마라
노동자는 회장님과 다르고 사기업은 공무원과 다르다고 말하지 말자. 현대차는 구멍가게 철공소가 아니라 거대기업이다.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의 막대함만 놓고 보면 오히려 공공부문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청년실업자의 시선에서 채용세습은 경영세습이나 자녀특혜채용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공직이든 사기업이든,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취업에 있어 기회균등의 원칙을 깨뜨리는 세습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
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노노갈등을 조장하고 노동운동에 대한 혐오감을 부추겨서 결과적으로 노동운동의 고립을 가속화시키는 '귀족 노조'란 조롱 섞인 용어사용에 반대한다. 그런데 가진 자들이 동원한 이 불순한 용어가 왜 그토록 쉽게 사람들에게 먹혀드는 것인지…. 현대차 노조의 채용세습 같은 터무니없는 행위가 그런 부정적인 용어를 정당화시켜주지는 않을까. 일자리까지 자식에게 세습하는 노조에게 '귀족 노조'라고 비아냥거릴 때, 뭐라고 항변할 것인가.
대기업 노조는 그동안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국민의 인권, 노동자 전체의 권익 향상 등에 크게 기여해왔다. 노동운동은 민주화운동과 같은 길을 걸어왔고, 진보정치가 뿌리내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 대기업 노조 이기주의라는 부정적 평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자신들의 힘을 주로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하는 데 쏟아 부었다는 비판이다. 노조란 본래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이니까, 노조가 비정규직 철폐와 차별해소 등 다른 부문을 위해 희생하지 않는다고 무작정 비판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번 '채용세습'은 대기업 노조에게 요구되는 공익성과도 질적으로 다르다. '채용세습'을 두고 노동자의 권익 향상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조합원의 이익 실현이라는 노조의 본래 목적을 뛰어넘어, 기회균등이라는 우리 사회의 대원칙을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공정사회의 실현이라는 우리 모두의 소망을 짓밟는 행위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희망버스'를 통해 모처럼 조성된 노동운동과 시민사회의 훈훈한 연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지 마라. '노동의 탐욕'과 '노동의 권익'은 분명히 다른 것으로 구분되어야 한다. 현대차 노조 스스로 '채용세습'을 철회해야 한다.
노동운동의 본질은 평등과 연대이지, 채용세습 등 신분세습과 배타적 이기주의가 아니다. 자본가들이 '경영세습'을 한다고, 노조가 '채용세습'을 따라 해서는 안 된다. 부자아이 가난한아이 편가르는 '오세훈식 차별급식'이 심판받는 시대다. 채용세습이 허용되면, 보편적 복지와 평등사회, 공정사회가 무너진다.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시대로 가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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