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물건이 있는데, 국내 업체들은 품질이 불만족스럽고 가격도 비싸서,
해외 업체들을 찾아보다, 미국 쪽도 품질이 마음에 안 들어,
결국 독일 업체에 주문을 넣어서 영어로 메일을 주고받고 있는데,
예전에 독일 eBay에서 물건 구입할 때도 그랬습니다만, 독일인들도 영어를 하긴 하지만, 썩 유창하지는 않네요.
영미 쪽의 관용적 표현이라든지, 그런 거 없이 기본 표현만 구사하더군요. 우리나라 사람들과 별 다를 거 없는 듯합니다.
간단한 상거래 관련 메일로 판단하기는 부족하겠습니다만.
독일어 찔끔, 라틴어는 기본 문법은 다 뗐지만 암기를 게을리 한지라 가물가물, 불어는 발음만 보다 중단했고,
(석사 전공이 신학인지라 라틴어, 독일어가 필요는 합니다. 지금은 전공과 무관한 일을 하지만, 관심을 놓은 건 아니라서… 불어도 조금 하면 좋고)
중국어는 서예를 하는 탓에 한문 조금 읽는 가락으로 대략 뜻이나 짐작하는 정도,
영어도 못하기는 매한가지고,
한국인들이 외국어 못한다고 하는데, 어렵게 가르쳐서 그런 탓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서양 언어권이 아닌데 서양 언어를 배우려니 잘 안 되는 게 크다고 봅니다.
요즘, 좀 옛날 분인 로버트 박이라는 분(교포 3세로 예일대 나와서 우리나라에 건너와 영어 교육에 힘쓰다 91년에 세상을 뜨심)이 쓴 회화, 관용 표현 책들이
포켓판 합본으로 헌책방에 있길래 계속 보는데, 참 재미있게 설명해 놓으셨더군요. 어투도 구수하고.
영어식 표현, 관용적 표현을 익히기에 아주 좋은 책들이라 생각합니다.
같은 서양이라도, 미국인이 아니라면 이런 표현들은 외우든지, 몸에 배게 익히든지 해야 되겠지요.
그런데, 대략 보면, 서양 언어는 적어도 단어는 흡사한 변이 형태로 겹치거나, 대략 짐작해 뜻을 알아먹을 수 있는 경우가 많더군요.
게르만계, 라틴계 언어가 차이가 나긴 하지만, 그래도 유사한 단어들이 많습니다.
마치 제가 현대 중국어를 한문 조금 아는 가락으로 대충 큰 뜻은 짐작하듯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도 않단 말이죠.
서양인들 중 가방끈 긴 양반들이 외국어 몇 개씩 한다고 하는데, 물론, 열심히 노력한 결과겠습니다만, 우리보다는 한결 수월했으리라 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외국어(특히 영어) 공부하는 노력, 결코 적다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들과 같은 조건이라면, 국민들 중 상당수가 두세 개 외국어는 할 줄 알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그러면, 같은 동아시아권 언어인 중국어, 일본어는 왜 어려워하느냐,
저는, 이 문제가, 한자 교육을 소홀히 해온 데서 원인을 찾고 싶습니다.
사실, 한국어나 일본어나, 뜻을 압축해서 단어화하거나 짧게 갈무리하는 건 한자에 기반을 둬 왔거든요.
그런데, 그 한자를 경시하고 한글 전용을 고집하다 보니, 국민들이 한자에 거의 문맹이 되고 말았습니다.
박통의 군사 정권이 한글 전용을 정책으로 삼았고, 국어국문학계의 진보적인 부류들, 한글순혈주의자들도 거기에 부응했으며,
80년대 정도 와서는 진보 진영에서도 한글 전용을 역설해서, 한글 전용이 시대의 지배적 조류가 되고 말았습니다.
저 또한, 쓸데없이 필요 이상으로 한자어를 쓰거나, 외국어를 남발하거나 하는 건 언어의 경제성, 간결 명료성도 해친다고 보아 배격합니다.
(특히 작금의 영어를 마구 섞어 쓰는 세태는 정말 거부감, 혐오감이 들게끔 합니다. 일반 대중들도 너나없이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흔히 사용하는 단어, 관용적인 한자 성어, 전문 용어들은 한자로 어떻게 쓴다는 걸 공교육에서 가르쳐야,
아하, 그렇게 뜻이 압축되어 단어가 되는 거로구나라고 언어의 구조를 알게 되고, 독해력, 표현력도 한 차원 높아진다고 보는데,
공교육에서 한자를 도외시하니 중국어, 일본어 배우기에도 나쁘고, 우리말 독해력, 표현력도 늘지 않는 거라 생각합니다.
아무튼…, 한국인들 외국어 배우는 노력이면 몇 개 국어를 하고들 다녀야 하는 게 정상일텐데,
참 비효율적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서(저도 포함됩니다만)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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