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는 오랜 친구들이 있습니다. 저까지 6명인데 초등학교때 부터 알고 지내는 성당 친구들입니다.
그래서 직업도 다양합니다. 신부, 안경점 사장, 소방관, 의사, 변호사에 심지어는 노가다 십장도 있습니다.
젊었을때 다들 바쁘고 타지에 나가있을 땐 자주 못봤지만, 이제 사십 줄에 넘어서니 다들 고향에 정착을 하고 자주 얼굴을 보게 되더군요.
이전까지 휴가는 다들 각자 가족과 함께 지냈지만, 이번에는 저의 주도로, 가족들 다 팽개치고 친구들끼리만 함 가자....이랬더니 다들 쌍수를 들어서 찬성하더군요.
7월 31일 일요일 오후에 친구 동생거 트라제를 빌려서 출발한다는 것 말고는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무대책 무계획 여행. 잠자리도 먹거리도 즉흥적으로 해결...혹시 몰라서 그늘막 텐트 하나랑 부루스타 하나 코펠 하나만 챙겼습니다. 참가비는 두당 20만원. 제가 총무가 됐습니다.
일요일 저녁에 여섯 놈이 식당에서 모였습니다.
일단 둘 씩 짝을 지어 세 팀으로 나누고 운전 복불복을 합니다. 지는 팀이 그날 운전하기. 대신 목적지는 운전대 잡은 사람 맘.
가위바위보로 한 팀이 걸렸습니다. 그 두 놈만 빼놓고 나머지 네 명은 곱창전골에 쏘맥으로 부어라 마셔라...
저녁 아홉 시가 넘어서 광주를 출발했습니다. 다들 헤롱헤롱 만땅으로 취해서 빌빌...순천휴게소에서 물 버리고, 진주 휴게소에서 물 버리고...술을 먹었더니 휴게소마다 쉬어야합니다.
운전대 잡은 팀의 목적지는 김해 봉하마을. 공교롭게도 여섯 넘 중에 한넘도 가본 넘이 없습니다.
자정이 되어서 도착했더니, 참배시간 지났다고 못들어가게 하길래 진영읍으로 가서 모텔을 잡는데...헉. 빈 방이 없습니다. 할수없이 읍에서 조금 떨어진 허름한 모텔로 들어갑니다. 방 두 개에 8만원 달라는걸 만원 깎았습니다. 손님도 우리밖에 없더군요.
방 잡아놓고 읍내 홍춘이김밥에서 김밥 한줄씩 먹고, 다시 방에 들어가서 세 시 반까지 쏘맥에 훌라...
다음날 여덟시 반쯤 기상합니다. 일어나자 마자 모두 모여서 운전 복불복...이번에는 모텔에서 준 비타오백 먹고 난 빈 병을 돌려서 병 주둥이를 향한 사람 팀이 운전합니다. 봉하마을 들러서 참배하고, 바로 해운대로 고고. 이번 운전수는 저희 팀이 당첨...ㅠ.ㅠ..술을 못먹잖아!!!
다들 여름 성수기때의 해운대를 본 애들이 하나도 없어서, 비키니 구경차 들어갑니다. 먼저 금수복국에서 복탕을 먹는데, 이것들이 겁도없이 막 시킵니다. 복까스..복튀김에 막걸리에...점심식사 한끼에 12만원 투척. 게다가 매 끼 술로 배를 채우는군요.
금수복국 주차장에 차 그대로 놔두고 백사장으로 고고...헉...날씨가 흐려서 비키니는 아예 없고, 애먼 외국인 노동자들만 북적댑니다...야...해운대도 맛이 갔구나...
애들 뒤도 안돌아보고 다시 탑승. 이번엔 경주로 해서 7번국도 타고 올라가려고 생각했습니다.
경주 지나가는데, 한넘이 첨성대를 꼭 보고싶다고 징징거려서 다들 우는애 젖먹이는 심정으로 첨성대 구경을 갑니다. 근데 이게 생각보다 재밌더군요. 문화해설사가 아조 설명을 잘해주니까 다들 시간 가는줄을 모릅니다. 40줄 넘은 아저씨들이 너무 집중해서 들으니까 해설사가 부담스러웠는지 자꾸 "왜 일케 열심히들 들으세요?" 하면서 몇 번이고 물어봅니다...이것들아 그러게 학교다닐때 공부 좀 열심히 하지...
천마총까지 풀셋으로 보고 포항으로 고고.
저녁을 뭘 먹을까 하다가 갑자기 죽도시장 물회가 생각나서 죽도시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어김없는 쏘맥 등장. 운전사만 빼놓고 다들 주거니받거니...물회 정말 시원하니 맛나더군요. 처음엔 이런걸 어떻게 먹느냐고 했던 전라도 아저씨들이 나중에는 그릇째 들고 흡입하고 있습니다.
저녁을 먹고나니 아홉 시가 넘었길래...오늘은 이제 그만 가고, 포항에서 모텔을 잡고, 우리 술집이나 가자...했더니만, 예상과 다르게 더 올라가 보자네요.
뭐..민의를 따르는 수밖에...운전사 맘이긴 하지만 또 후환이 두렵기 땜시...차를 울진으로 몰았습니다.
울진 도착시간이 열 시 반이 넘은 시각...날씨가 안좋아도 성수기는 성수기인지 읍내 모텔들 다 풀.
할 수 없이 삼척으로...다행히 삼척 시내 한복판에 여섯 명 다 들어가는 방이 하나 남아서 7만원에 입성.
물론 쏘맥 사들고 들어가서 세 시 반까지 또 훌라판.
드디어 화요일이 되었습니다.
아침에 아홉 시에 일어나 가장 먼저 운전복불복...이번에도 비타오백 병으로 합니다. 어제 해봤는데 반응이 좋아서 그 병을 그대로 챙겨 다닙니다..무슨 신주단지 모시듯...오늘 저는 면제로군요...ㅋ. 짐 챙기고, 맹방해수욕장으로 갔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옵니다.
맹방 그 넓은 백사장에 사람은 그야말로 가뭄의 콩나듯 하나씩 있습니다. 우리는 물놀이가 목적은 아니었고, 아침 해결하러 간거여서, 그늘막 텐트를 지금 아니면 언제 쳐보나 하는 심정으로 쳐놓고 바로 옆에서 라면을 끓입니다. 비가 오니까 아무도 텐트안으로 들어가지 않는군요. 결국 텐트는 지 혼자 서있다가 철수.
다들 아침에 입맛 없다고, 라면 조금만 끓이라는 걸...아무래도 수상해서 열 개를 끓였는데, 순식간에 소멸...입맛없다는 것들이 평균 두 개씩을 해치웁니다.
바로 정선 카지노로 출발.
중간에 환선굴이 보이는데, 또 어떤 놈이 저기 꼭 가보고 싶다고....공교롭게도 거기 가본 놈이 아무도 없습니다. 들어갔는데 입구까지 산 타는거에 다들 좌절...비도 억수로 오고...근데 들어갔더니 넘 좋더군요. 다들 매우만족. 나오면서 동동주에 파전은 빠지지 않았고요..계속 술입니다.
태백 넘어가는 길에 낙동강 발원지도 들르고...드뎌 저녁 여섯 시 반에 강원랜드 입성....여기도 다들 처음입니다. 그런데 아까 먹은 동동주때매 음주단속에 저만 걸려서 이십 분 쉬다가 재측정...통과.
휴가철이라 그런지 7천명까지 입장 가능하다던데 6천명 넘게 들어차 있더군요. 슬롯머신 어찌어찌 하나 구해서 다들 폼만 내보고, 블랙잭 하는 사람 뒤에 가서 돈 몇 번 걸고...물론 따지는 못하고요. 다들 눈빛이 퀭 해서리..별로 다시 가고싶지 않는 곳이라고들 하는군요.
카지노에서 나와 간단하게 밥을 먹습니다. 물론 쏘맥과 함께...계획상 마지막 날 밤인데, 어찌할까 고민들을 하더군요. 그냥 운전사에게 맡겼는데, 새벽 세 시 반에 깨서 보니까 광주에 와 있습니다.
다들 아무 말없이 국밥을 한그릇 씩 하고는...의견들을 물어보는데, 그 길로 순천 여수쪽으로 내려가서 하모를 먹자고 하는 부류 셋 하고, 이제 광주 와버렸으니 이쯤해서 해산하자는 부류로 딱 나뉩니다.
결론은 이번 여행은 여기서 정리하고 다음을 기약하자는 쪽으로...하나씩 집으로 배달합니다.
처음 여행을 떠날 때에는 정말 아무 계획도 없이 친구들끼리 놀자고 나섰는데, 나름 전국일주를 하고, 많이 보러 다니고, 많이 마시고, 많이 놀고...보람찬 여행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맞는 친구 여섯이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더군요.
어제 여행 정리모임을 했습니다. 일차로 야구장 가서 야구 보고, 이차로 감자탕집 가서 여행때 찍었던 사진들 나누고, 총무로서 경비 정산하고, 또 다음 놀러갈 계획 세우고...거기에 술 만땅으로 또 먹고...아무래도 이 방랑이 계속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