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편입니다.
팝콘과 콜라를 준비하세요.
갈고리. Aliens OST - Queen To Bishop
창문에 여자의 그림자가 서 있었습니다.
폭우와 태풍이 휘몰아치고 있었고
번개가 칠 때마다 창문 건너편에 서 있는 여자의 그림자가 아주 기괴하게 번쩍였습니다.
급한 대로 일자드라이버를 집어들었습니다.
내가 미쳤나? 아니야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귀신일 리는 없어. 저건 인간이어야 해. 미쳤거나..
아무튼 누구냐고 외치려 했는데.. 순간 기괴하기 이를 데 없는 광경을 보고 저는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이번엔 창문에 비친 그 여자 그림자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머리를 앞뒤로 흔드는데 머리부터 목 허리를 꼿꼿이 세운 체로 마치 오뚝이처럼 앞뒤로 몸을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격하게 위협적으로 흔드는데 도저히 사람의 움직임으로 보이질 않았습니다.
"저건 사람이 아니야!"
창문 건너편에 여자인지 괴물인지 미친 듯이 흔들며 서 있는 저것은 신경이 극도로 흥분된 상태로 보였고
이쪽에서 작은 부스럭 소리만 내도 즉시 이 합주실 안으로 들이닥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문은 잠겨 있지 않았습니다.
베이스는 밖에서 문을 잠그지 않는 게 좋을 거라 판단하고 그냥 갔었죠.
지금 상황은 반대였습니다.
저 그림자의 정체는 언제든 이 합주실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안에서는 출입문을 잠글 수도 없고 손잡이도 없어 붙들고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소름이 돋았죠.
제 몸은 미친 듯이 흥분해서 진정되질 않았습니다. 이러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죠.
아니야 저건 사람이야 귀신일 리가 없어. 그런데 왜 여기서 저러고 서 있지?
그보다 몇 시간 동안 저기 서 있던 걸까? 핸드폰을 보니 새벽 2시였습니다.
대체 언제부터 저러고 서 있던 거지? 저게 인간이냐? 얼마나 미친 거야?
산속이라 핸드폰 수신율은 제로. 전지도 바닥나고 있었습니다.
갈고리!
도살장에 걸려 있는 갈고리가 생각났습니다.
저게 만약 이리로 들어오다가 도살장에 걸려 있는 갈고리를 들고 온다면.... 안돼!
번개는 폭우와 함께 계속해서 내리치고 있었기 때문에 도살장까지 가는 게 아까보다 쉬워졌습니다.
창문에 그림자가 계속 서 있는지 몇 번이고 뒤돌아 확인하면서 도살장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쇠사슬에 걸린 갈고리를 빼들었습니다.
저는 다시 소리 내지 않고 갈고리를 든 체 사육장으로 돌아왔습니다.
갈고리를 손에 넣으면서부터 조금씩 생각이 가능해졌습니다.
온갖 망상이 다 떠올랐습니다. 도대체 저 창문 밖에 서 있는 건 뭔가
도저히 인간이라고 볼 수 없다 귀신? 원혼?
도살장의 타일들 개가 아니라 사람을 토막 내기 위한 용도라면 혹시 여기서 누군가 연쇄살인마가....
원혼이 아니고 싸이코패스? 저게 싸이코패스라면 진작에 내가 잠든 사이 이곳으로 들어왔을 테고
난 이미 도살장 갈고리에 걸려 있어야 해. 저 여자는 계속 미친 듯이 헤드뱅잉만 하고 있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인간이 아니야. 저건 살인마 같은 게 아냐!
정신이 완전히 붕괴된 상태다. 저 상태를 사람이라고 볼 수 있나?
서서히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보고 있는 게 귀신? 내가 환상을 보고 있나? 내가 미쳤나?
귀신이라니 귀신이 그림자를 달고 다녀?
저게 뭐던 간에 창문 건너편에 서 있는 건 틀림없었습니다.
분명히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창문에 서 있는 것이 사라지기만을 바랬습니다.
제한시간. Alien 3 OST - Bait And Chase
어? 뭐야.... 내가 잠들었었나? 저는 갑자기 제가 깜빡 졸았다는 걸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극도의 긴장상태와 수면부족으로 저도 모르게 잠들어 버린 겁니다.
내가 얼마 동안 잠들어 있었지? 핸드폰은 꺼져 있었습니다.
아니 그보다 합주실 출입문이 열려서 바람에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출입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 여자 그림자는 어딨지?
눈을 떴을 때 번개가 잠시 멈춘 상태였는데. 다시 번개가 치기까지 5분도 안 걸렸지만
그 5분의 순간 동안 창문도 아무것도 안보였습니다.
그래서 창문에 아직도 그 여자 그림자가 서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여자 그림자가 지금 창문 앞에 서 있는 게 아니라면 어딘가로 가버렸거나
아니면 여기 합주실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왔거나.
들어와서 지금 내 옆에 앉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5분 동안 저는 갈고리를 들고
그대로 굳어서 온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뭔가가 나를 건드리는 느낌이 드는 순간
어둠 속에서 미친 듯이 갈고리를 휘두를 생각이었죠.
그 잠깐의 순간이 제게 가장 두렵고 긴장된 시간이었습니다.
번쩍하고 다시 번개가 쳤고 창문에는
여전히 그 여자의 그림자가 서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저러고 있다니........
절대로 저건 정상인은 아니었습니다. 보통 미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합주실 출입문이 열려 있다는 게 엄청난 위기였습니다.
이 창문 건너편에 서 있는 저것이 출입문을 연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들어왔겠죠.
아마 태풍의 풍압으로 열린 듯했습니다.
다시는 이렇게 잠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잠들었다가 저 그림자의 정체가 합주실로 들어온다면 어떤일이 벌어질지..
저는 기력이 바닥나고 있었습니다.
언제 혼절할지 금방이라도 고개가 꺼떡꺼떡 넘어갈 듯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혼절하기 전에 뭔가 대책을 세워야만 했습니다.
이대로 뛰쳐나갈까?
만약에 저게 날 보고 쫓아온다면 저 깜깜한 산속에서 어떻게 될까?
손전등도 없이 산을 내려가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숲 속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다가
비탈길로 떨어진다거나... 산은 너무 위험하고 불리했습니다.
어떻게든 이 합주실 안에서 제가 혼절하기 전에
저 창문 건너편에 서 있는 것을 빨리 처리해야만 했습니다.
잠시 소강상태였던 폭풍우는 어느 때보다 거칠어지기 시작했고
천둥번개도 수없이 번쩍이며 발광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이걸 마지막으로 태풍과 번개가 잠잠해질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전에 저걸 처리해야 한다.
번개가 멈춘다면 더는 창문에 그림자도 무엇도 볼 수 없게 되고 극도로 불리해진다.
이 마지막 폭우가 수그러들기 전에, 내 기력이 다하여 혼절하기 전에
이쪽에서 먼저 쳐야 한다."
결전. Aliens OST - Ripley's Rescue
저는 전술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1.드럼을 집어던지기 좋게 분리하여 사육장 중앙에 쌓아둔다.
2. 12x4방짜리 스피커캐비닛을 도살장까지 끌고 가서 출입문에 바리케이트를 친다.
3. 사육장으로 돌아와 창문에 그림자가 흔드는 걸 멈출 때 창문을 열고 얼굴을 확인.
4. 위험한 존재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위험할 경우 곧바로 도살장까지 달려가 바리케이트를 발로 받치고 대기.
5. 진입을 막을 수 없겠지만 넘어오려는 틈을 노려 드라이버로 발등이나 팔을 찔러 부상을 입히고
6. 사육장으로 달려가 대기. 부상입은 채 사육장까지 따라 들어오면
7. 사육장 중앙에 쌓아둔 드럼통들을 집어던지며 제2의 부상을 노리거나 진로방해.
8. 최후의 수단은 갈고리. 어떻게든 쓰러뜨린 후 합주실을 나와 밖에서 문에 드라이버로 빗장을 걸어 감금.
계획이 생각대로 될까?
예상밖에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저 그림자의 정체가 상식을 뛰어넘는 존재가 아니길 바라면서..
번개가 번쩍 번쩍거리는 사육장 속에서
사정없이 내리치는 벼락 소리 속에 숨어서
드럼을 신속하게 분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내리쳐! 더! 더! 갈겨! 계속 퍼부어 더!"
번개가 칠 때마다 그림자는 몸을 오뚝이처럼 꺼떡거리며 미친 듯이 흔들고 있었습니다.
심벌, 스네어, 하이햇, 킥 모두 분리해서 사육장 중앙에 쌓는 데 성공했고
그때까지도 그림자는 창문 앞에서 계속 흔들고 있었습니다.
다음은 캐비닛을 도살장까지 끌고 가 출입문에 바리케이트를 칠 차례.
드르륵 드르륵 캐비닛을 끌고 도살장에 들어설 때까지 저는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
사육장 창문에서 바닥까지 드리워진 그 망할 여자의 그림자가 그 자리에 계속 서 있는지 수십 번 확인했습니다.
몸에서 식은땀이 빗물과 섞여 뚝뚝 떨어졌습니다.
이렇게나 살고 싶다니
이렇게나 살고 싶었던 적은 없어
이렇게나 사력을 다해서 순간순간에 충실해 본 적은 없어
결전의 순간과 비교되는 지난날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저는 잠들기 전에 들이켰던 맥주의 취기에서 벗어나 정신이 서서히 선명해지고 있었습니다.
바리케이트 치는 것까지 성공했고 이제 다시 사육장으로 돌아가 창가에 붙어서
저 망할 그림자의 얼굴을 확인할 차례.
한 손에 갈고리, 한 손에 일자드라이버만 믿고
도살장을 지나 번개가 번쩍이는 사육장으로 들어서면서 저를 기다리는 그림자를 봤습니다.
사육장 바닥에 드리워져 점점 더 격렬하게 기괴하게 흔들어대는 그림자를 보면서
저는 그 그림자에게 다가갔습니다.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공포가 한계를 넘으려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미친 듯이 중얼거렸습니다.
"여기까지 왔어. 봐라 난 운이 좋다고 말했지? 빌어먹을 난 미친 듯이 운 좋은 놈이다.
이 세상에 나보다 운 좋은 놈은 없어. 젠장 살자고! 사는 거야!
노래!! 노래 부르자! 난~ 으그그그 난 기나긴 밤이야~ 난 즐길 꺼야~ 오늘 밤 너와 즐길 꺼야~
으아아아아 빌어먹을 난 기나긴 밤이다~ 오늘 밤 너와 즐길 꺼야~ 으그그 야호~ 빌어쳐먹을!!!!"
저는 창가 바로 옆까지 도달했고 벽에 바짝 붙었습니다.
바닥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보며 저는 읊조렸습니다.
"이건 마구니다.. 사람이 아니야...."
가까이서 이 그림자의 실루엣을 보고 있자니
머리카락엔 무슨 벌레나 나뭇잎 같은 덩어리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이리저리 흔들면서 얼굴 크기도 마구 부풀었다 줄었다 기괴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흔드는 걸 멈출 때까지 기다리면서 저는 마지막으로 기도가 하고 싶어졌습니다.
만약.. 만약에 신이 있다면 신이시여 제게 용기를 주옵시고 그리고 제발 날 좀 살려줘...
이렇게 빌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나 저는 무신론자의 아집이 그 상황에도 남아 있어서 기도를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 마구니가 움직임을 멈췄습니다.
"...... 기도할 시간이 없군."
즉시 저는 창문을 확! 열어젖혔고
그리고 제 눈앞에 서 있던 그것은
그것은.. Al Bowlly - Midnight The Stars And You
제가 창문을 열었을 때
제 눈앞에 서 있던 그것은..
그것은 나무였습니다.
태풍에 뿌리째 흔들리고 가지가 부러지고 한쪽으로 쏠려서 다 죽어가던
한그루의 작은 나무였습니다.
저는 입 벌리고 눈 크게 떠진 멍청한 표정으로 한동안 굳어 버렸습니다.
극한의 긴장상태가 일순간에 풀어졌고, 돌덩이처럼 무거워진 몸을 질질 끌면서 합주실을 나왔습니다.
정신 나간 놈처럼 완전히 얼빠진 체 터덜터덜 그 나무 앞까지 걸어가서
그대로 주저앉아 썩은 동태눈으로 나무를 바라봤습니다.
그 몇 시간 동안의 제 끔찍한 망상들을 돌아보면서
그 공포의 시간 동안 제가 벌인 뻘짓들을 생각하면서
조금 느슨해진 비바람을 맞으면서
그렇게 앉아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풍경을 기억합니다.
하늘은 여전히 흐리고 먹구름 가득한 회색이었지만
야수처럼 으르렁대던 모습은 사라지고 느긋한 모습이었습니다.
광폭했던 바람도 촉촉하고 시원한 습기를 머금은 체 부드럽게 부유하며 들판을 어루만졌고
그러면 숲과 들판은 평화로운 바다의 물결처럼 넘실거렸습니다. 사방에 맺힌 무수한 이슬을 흩날리면서.
그렇게 버들가지나무도 여인의 아름다운 머릿결처럼 산들거렸습니다.
저는 그 광경을 그 자리에 주저앉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담배 한 대 피면서..
먹구름이 걷힐 때까지
동이 틀 때까지
모든 것이 고요해질 때까지
그렇게 넋 놓고 있었습니다.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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