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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영토인 독도를 일본이 '다께시마'라고 부르며 자기들 영토라고 주장을 하고 있다.
점점 그 도가 지나쳐 중학교 교과서에까지 독도는 일본 영토라고 기재를 하고, 최근에는 대한민국 국적기를 타지 말라고 하더니, 급기야 일본 국회의원들이 항의차 울릉도를 방문하겠다고 한다.
이런 망언과 망동들이 나오는 그 저변을 살펴보면,
그들은 일제강점기 기간에 자신들이 대한민국의 발전과 근대화를 선물했다고 주장하고, 아직도 대한민국은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소국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들의 이러한 생각과 행동은 대한민국 독립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며,
그들이 이렇듯 대놓고 대한민국 독립의 역사를 부정하는 배경에는 “양국은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을 인정하며, 동시에 그것에 반론하는 것에 이론이 없다”고 허용한 박정희의 독도밀약이 그 직접적 원인이며,
독립이후 그 잔재가 청산되지 못한 결과로 살아남아 부일의 댓가로 받은 부와 권력을 기반으로 한국사회의 공고한 기득권층이 된 친일세력들이 있다.
MB정권 취임 첫해, '건국 60년'으로 시작된 역사 부정
이명박 대통령 취임 첫해 한나라당 현경병 의원은 8.15를 광복절이라 하지 말고 건국절이라 기념하자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공동발의를 시작으로, 정부는 광복 63주년 8.15 기념행사를 건국 60주년 행사로 진행을 하였다.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애초 앞에 두려던 '건국 60년'이 뒤로 밀려 ‘제63주년 광복절 및 대한민국 건국 60년 중앙경축식’으로 명칭으로 진행이 되었지만 기어이 '건국 60년'이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정부기관이나 청사의 홈페이지 도심의 곳곳에 내건 현수막에는 '건국 60년'을 대대적으로 전면에 내세웠다.
▲ ‘건국60주년’ 기념행사를 주관하는 행정안전부 홈페이지 메인화면 (한겨레.2008)
MB정권의 이러한 망언 망동은 바로 광복이전의 우리 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라고 명시한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는 헌정문란 행위이다.
우리 대한민국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부정하고 3.1운동과 그 정신을 부정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는 반역사적, 반민족적 행위요. 반국가적 행위이다.
이렇게 MB정권을 앞잡이로 세우고 시작된 친일기득권 무리들의 대한민국 역사 부정은 최근에 들어 더욱 집요하고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어찌 정부와 집권여당이 자국의 역사를 부정하는 이런 불가사의하고 해괴망측한 사태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KBS, 간도특설대 장교 백선엽 미화로 3.1운동 부정
모든 대한민국 국민의 누나... 유관순 누나,
기미년 3월 1일 대한민국 전국 방방곡곡 나부끼던 태극기와 울려퍼지던 '대한독립 만세'
무자비한 총칼 앞에서도 굽히지 않고 세계만방에 울려퍼진 평화의 정신과 굳건한 독립주권의식
이렇듯 3.1운동은 치욕스럽고 뼈아픈 일제강점기의 역사속에서 피어난 우리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관영방송이 아닌 공영방송임을 자랑스러워하는 KBS는 지난 6월 24일과 25일에 걸쳐 "백선엽 다큐"를 방송하였다.
그 내용은 "기억납니다…내 생애 최고의 날입니다. 정말 감개무량합니다."라는 백씨의 감회처럼 '백선엽이라는 개인의 기억과 발언을 위주로 제작된 프로그램으로 이는 백씨에 의한, 백씨를 위한, 백씨의 방송'이었다.
▲ KBS의 백선엽 다큐 <전쟁과 군인> 1부
그런데 백선엽이 누구이던가? 백선엽은 바로 정부가 공인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대통령직속 위원회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진상규명보고서 4-7권에서
"백선엽은 1941년부터 1945년 일본 패전 시까지 일제의 실질적 식민지였던 만주국군 장교로서 침략전쟁에 협력하였고, 특히 1943년부터 1945년까지 항일세력을 무력 탄압하는 조선인 특수부대인 간도특설대 장교로서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하였으므로 백선엽의 행위를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규정한 친일반민족행위로 결정한다"라고 명기하고 있다. (관련기사:
백선엽, 전쟁영웅인가? 친일반민족행위자인가? - 오마이뉴스)
"공인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일방적으로 전쟁영웅으로 미화하는 KBS의 이러한 행위는 3.1운동의 정신과 그 역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이며,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을 명기하고 있는 현행 대한민국 헌법과 헌법정신에 정면으로 반하는 위헌행위이다.
취임 첫해부터 역사를 부정하는 MB정권의 하수인을 자처하는 관영방송 KBS에게 국민의 수신료는 없다.
KBS, 독재자 이승만 찬양 방송으로 4.19혁명 부정하나?
'공인 친일반민족행위자 백선엽'을 전쟁영웅으로 미화하는 다큐를 성공(?)적으로 방송한 KBS는 8.15특집으로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 '국부'로 찬양하는 특집방송을 무려 5부작으로 대대적인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19일 박희태 국회의장(한나라당)이 이승만 46주기 추모사를 통해 '불멸의 영혼' 운운하며 '건국대통령',
'평생을 조국 독립을 위해 풍찬노숙하며 자신을 바친 우리 독립의 영웅', '6.25때 나라를 구한 위대한 대통령'이라는 찬양사를 연발하였다고 한다.
박 의장의 이런 수사는 KBS가 준비하고 있는 특집방송의 바람잡이 역할을 겸하면서 이승만을 '건국대통령', '국부'로 끌어올리려는 대한민국 역사를 부정하는 친일세력 무리들의 시도와 그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승만이 누구이던가?
바로 4.19 민주혁명으로 나라밖으로 쫓겨나 타국에서 그 유명을 달리한 독재자이다.
그것도 임시정부의 탄핵으로 한 번, 4.19혁명으로 또 한번... 두 번씩이나 쫓겨났던 독재자이다.
▲ 4.19혁명, (아이엠피터의 소시어컬쳐)
이승만의 과오를 나열하자면 끝이 없지만 지면관계상 박 의장의 수사를 중심으로 한 번 짚어보자.
먼저, '평생을 조국 독립을 위해 풍찬노숙하며 자신을 바친 우리 독립의 영웅'에 대하여 몇 가지만 짚어보면,
이승만은 (친일파 미국인 스티븐스를 저격한) 장인환.전명운 의사의 재판에 통역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거부하고,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의거에도 거부감을 나타냈으며 특히 안중근 의사의 의거도 '테러'로 간주하고 맹비난을 하였다. 일부 꼴보수들이 말하는 '테러리스트 안중근'이 여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승만은 1919년 미국에 한국의 위임통치를 요청하였다. 한국은 당장 독립될 가망이 없고 또 독립된다고 하더라도 자치능력이 없으니 미국이 주관하여 국제연맹으로 하여금 한국을 당분간 통치하게 해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한 것이었다. 정부 대표로 파리 평화 회의에 참석한 김규식 특사는 이로 인해 난감한 상황에 처했고,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이를 두고 "없는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것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보다 더한 역적이다"고 하였다. 불리한 상황이 되자 이승만은 미국으로 도피하였으며 결국 상해임시정부에서 불신임되고 탄핵되었다. 이후 8·15 광복까지 이승만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기록은 없다.
(관련기사1:
이승만 과연 그는 누구인가? '충격적인 자료' - 서울의 소리)
(관련기사2:
[이승만 특집방송 반대]이승만은 왜 부통령을 암살하려 했는가)
다음으로 '6.25때 나라를 구한 위대한 대통령'이라는 부분에 대하여 짚어보면,
일단 6.25라는 말을 '한국전쟁'으로 정정한다. 그리고 한국전쟁 때 이승만의 행적을 보자.
한국전쟁 발발 당시 무초 주한 미대사에 따르면 이승만은 처음부터 서울을 떠날 생각이었다고 한다. 무초가 말렸지만 무초가 돌아가자 교통부장관에게 특별열차를 준비 대기시키고, 이에 대다수 국회의원들이 '국민과 함께' 서울에 남기를 주장했지만 6월 27일 새벽 이승만은 가족과 측근들을 데리고 어둠속에 서울을 떠나 도주했다. 대전에서 3일을 머문 후 7월 1일 새벽에 전남 이리(지금의 익산시)까지 도주를 하였고, 7월 2일에는 다시 목포로, 배편으로 부산으로, 7월 9일 대구로 도주했다. 이런 도주의 과정에서 그는 '국군이 북한군을 곧 격퇴할테니 피란가지 말고 안심하라'는 담화로 국민을 기만하였고 대통령의 담화만 믿고 있던 국민들은 피난도 하지 못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한강 철교를 폭파하여 뒤늦은 국민의 피난길도 막아버렸던 것이다.
이런 사람을 두고서 '평생을 조국 독립을 위해 풍찬노숙하며 자신을 바친 우리 독립의 영웅', '우리 독립 '6.25때 나라를 구한 위대한 대통령'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광복절을 건국절, 건국 몇주년 운운하면서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니 '국부'니 하는 것은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를 부정하는 반역사적 행위이자 반국가적 행위이다. 또한 4.19혁명으로 쫓겨난 독재자를 찬양하는 것은 위헌적 행위요.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를 부정하는 행위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이승만을 단군이래 최악의 학살자라고 칭함에 부족함이 없는 산청.함양.거창 민간인 학살과 보도연맹 사건은 지면관계상 다루지 못하는 아쉬움에 관련기사 링크로 대신한다.
(관련기사1:
이승만 대통령이 단속한 '부끄러운 치마 속', 참담했다 - 오마이뉴스)
(관련기사2:
8곳에 총상... 7개월 임신부는 살아남았지만 - 오마이뉴스)
친일파 세력은 왜 박정희, 이승만을 찬양하는가?
일제강점기로 부터 독립이후 부일반민족매국의 댓가로 일제로부터 받은 권력과 부를 기반으로 일제강점기이후 줄곧 이 땅의 기득권으로 행세하는 친일파 세력들은 왜 백선엽이나 박정희, 이승만을 찬양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그들은 같은 편, 한 패이기 때문이다.
백선엽과 박정희는 일본군(만주군) 장교로서 천황에 충성을 맹세한 대표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니 한 패라는 것을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박희태 의장이 '독립의 영웅'이라고 찬양해 마지 않는 이승만이 어떻게 친일파와 한 패가 되었을까?
우선 일제강점기로부터 독립이후 이승만이 미국을 등에 업고 남한정부를 수립하고, 남북단일정부를 주장하던 김구 선생을 비롯한 정적을 제거하면서 독재자의 장기집권을 구축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미 군정의 경찰 책임자 마글린 대령은 “그들(친일파)이 일본을 위해서 훌륭히 업무를 수행했다면, 우리를 위해서도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라고 말하며 친일파를 중용하였고, 미국의 도움으로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하고 대통령이 된 이승만 정권도 친일파를 중용하였다.
1948년 제헌국회에서 '반민족행위처벌법'이 발의되자 친일파들은 "민족 처단을 주장하는 놈은 공산당의 주구다"라는 협박장을 서울 시내에 뿌렸고, 한반도에 반공 친미정권을 수립하고자 하는 미국의 내심을 아는 이승만도 이에 동조하여 "친일파에 대해서 말을 많이 한 것이 공산당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더 나아가 "친일파 문제는 우리 환경이 해결할 수 없으니 극렬 친일 분자라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친일반민족행위 청산을 이야기하면 빨갱이로 몰리는 상황이 되었고, 결국 반민특위는 이승만정부의 방해, 친일세력의 특위위원 암살 음모, 친일경찰의 6.6 특경대습격사건, 김구 선생의 암살 등으로 친일파 청산의 과업을 이루지 못하고 해체되었다.(관련기사:
‘친일’은 지금도 계속된다 - 시사인)
2011년 오늘에도 MB정권과 한나라당, 조중동이 걸핏하면 하는 빨갱이 드립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러니 친일파로서는 이승만이 그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그렇게도 이승만을 국부로 찬양코자 한다면 친일파 너희들만의 리그에서 아버지로 찬양할 일이다.
반민족행위로 처벌받을 생존의 위기로부터 구원을 내려주었으니 친일파에게는 가히 아버지라고 불릴만도 하다.
"친일파의 아버지 이승만" 어떤가?
대한민국 역사가 경고한다.
이 땅의 친일파 세력은 살아남은 것을 고맙게 여기고 쥐죽은 듯 자중하라. 반성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MB정권과 한나라당, KBS와 조중동은 대한민국 독립의 역사와 민주주의 역사를 부정하는 행위를 당장 중단하라.
특히 관영방송 KBS는 국민의 사랑받는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