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분들도 그런 세월을 겪은 분들이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제게도 지금은 이미 아득하기만 한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가슴깊숙한 곳에 여전히 아픈 상처가 있습니다. 유년시절의 가난과 굶주림이 던진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닌 삶인데 왜 나는 우리 부모 밑에 태어나서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조숙한 질문이었습니다.
이 조숙한 질문은 이 시대에 더욱 깊어진 것만 같습니다. 그때는 그래도 정말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저의 경우, 공고를 졸업하고 좋은 대학 문턱을 밟아보기라도 했습니다만 지금은 부잣집에 태어난 아이는 맛있는 것 먹고 좋은 학원에 가서 배우고 좋은 대학가고 좋은 집 물려받아 좋은 배우자 만나고 좋은 직업 가져서 행복하게 살고 가난한 집에 태어난 아이는 그 반대의 굴레에 고통받아야 하는 계급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사회애 안 그런 구석이 없다고들 하지만 스무살 성년까지는 차별없이 자라야 하고, 최소한 중학교까지, 의무교육 기간 동안만큼은 차별없이 먹이고 입히며 공부할 기회를 주는 것이 바로 우리 어른들의 기본적인 의무라는 점은 너무나 분명하고 법으로도 정해져 있습니다.
아이가 자라는 것은 기회의 평등이라는 점에서 부잣집이나 가난한 집이나 똑같이 자라야 하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원리이지 공산주의 원리가 아니지요. 모두가 똑같아야 한다는 것이 공산주의 원리가 아니라 공산주의 원리는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 만큼 분배하자는 것입니다. 부잣집에 태어난 아이는 잘먹고 잘자라고 가난한 비에서 태어난 아이는 굶주리고 못배우는 것은 봉건계급사회이지 절대 자본주의 원리는 절대 아닌 셈이지요.
나 아닌 만인과 투쟁하여 오로지 나만 잘 살면 된다고 배워오고 가르치며 믿어온 나라에서 남의 자식도 내 자식처럼 밥먹이자며 무상급식을 지지하고 국가(사회,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하여 김상곤 교육감 등을 지지한 것은 때늦은 감이 있지만 이승만이 대한민국를 건국한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 사회가 드디어 남도 위할 줄 아는 사회가 되어가는구나 싶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건이 저는 이 의무(무상)급식입니다.
급식이 복지일 수도 있겠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을 복지의 눈으로 보아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어른들의 절대적인 의무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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