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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 전 고대총장 김준엽 선생의 일화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1-06-08 16: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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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599

제목

[펌글] 전 고대총장 김준엽 선생의 일화

글쓴이

구현회 [가입일자 : ]
내용
Related Link: http://kaidrase.egloos.com/


중간이 고 김준엽 선생. 우측이 고 장준하 선생

김준엽 선생 : 1982~1985년 고려대 총장을 지냈다.


1983년 가을, 연세대와의 정기전이 갑자기 취소되었습니다. 연고전 혹은 고연전은 당시 가장 많은 학생을 '합법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대학행사였습니다. 학내에서는 십수명만 모여 스크럼을 짜도 경찰에게 단 2~3분만에 제압되곤 하는 그 시절, 수만명이 모여 학교 바깥 거리로 쏟아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행사였으니, 반정부 데모로 연결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그것을 학생들보다 더 잘 아는 전두환 정부는, 반정부 분위기가 절정에 오른 1983년 정기전을 취소하게 합니다. 지금은 믿을 수 없는 일이겠으나 당시 정부는, 못하는 게 없었습니다.


학생들의 반발은 당연히 심했습니다. 본관 앞에서 데모를 하다가(사복경찰(일명 짭새)이 교내에 있었어도 반정부 데모가 아니니 막지는 않았습니다), 급기야 학생회관으로 밀려들어가 철야농성에 돌입했습니다.


26년이나 지난 이야기이니, 쪽팔리지만 다 밝히자면, 저는 당시 가을 시화전을 준비하다가 술을 먹고 서클실에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눈을 떠보니, 어라?, 학생회관 출입문이 완전 봉쇄되어 있었습니다.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출입문을 봉쇄한 바리케이트는 실내에서 책상과 의자, 쓰레기통 등으로 학생들이 쌓아올린 것이었습니다. 불과 2주 전쯤에 서울대의 한 건물에서 농성 데모를 하다가 200여명이 줄줄이 달려간 것을 감안하여 철통같이 쌓아올렸습니다.


5백명 정도는 족히 되었을 것입니다. 기차 놀이를 하는데, 1층부터 4층까지 계단으로 계속 이어졌으니까. 학생회관 내에서, 실외에서는 하지 못했던 반정부 구호도 감히 외쳐보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장기자랑도 하면서 밤을 지새웠습니다. 농민가와 해방가 들을 목이 터져라 부르기는 했지만(저는 실제로 목이 완전히 쉬어서 다음날 말을 못할 지경이었습니다)경찰이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때, 30분마다 한 번씩 학생회관 정면에 설치된 대형 확성기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농성을 해제하라"는 경찰의 협박이 아니라, 김준엽 총장의 목소리였습니다.


김준엽 총장은 30분마다 한번씩 똑같은 이야기를 짧게 했습니다.


"학생 제군들, 몸을 다치지 마라. 다치거나 아픈 학생이 있다면 바깥으로 내보내라. 지금 이곳에 앰뷸런스가 대기하고 있다."


농성을 풀라든가. 반정부 구호는 외치지 말라든가 하는 이야기는 단 한 마디도 없었습니다.


배고픔과 두려움에 떨던 우리는 김준엽 총장이 바깥에서 밤을 새워 경찰을 막아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김준엽 총장이 안계셨더라면 경찰이 달려들어 바리케이트를 다 부수고 학생들을 모두 연행해갔을 것입니다. 그때 대한민국 경찰은 그 정도의 화력은 지녔었고, 그 화력을 고대 학생회관에 쏟아부어도 신문 1단 기사 정도로 처리될 때였습니다.


밤새 바깥에 앉아 학생들을 지키던 김준엽 총장이, 경찰과 어떻게 협상을 벌였는지 모르겠으나 다음날 오전 철야농성을 하던 우리는 무사히 빠져나왔습니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후, 최초로 무사히 끝난 철야농성이었습니다. 얼떨결에 철야농성에 참여했던 저는, 그때 하던 무용담을 얼떨결에 지금까지도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김준엽 총장 덕분입니다.


김준엽 총장은 1985년 2월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총장직에서 물러나 학교를 떠납니다. 전두환 정권이 학생운동의 방파제를 부수기로 작정을 했기 때문입니다.


1984년 가을에 부활한 총학생회를 궤멸시키기 위해 전두환 정권은 총학생회장 등을 제적시키라고 종용했으나 김준엽 총장은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대학들은 모두 고대의 눈치만 살폈습니다.


그러다가 학생을 자르지 않은 김준엽 총장이 잘렸고, 다른 대학 총장들은 자기 학생들을 잘랐습니다.


"총장님 물러나지 마시라"는 데모가 1985년 3월에 있었는데, 그렇게 큰 규모는 저로서도 처음 보았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학교의 모든 건물이 텅 비었고 수위실 강아지까지 주인 따라 데모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데모대는 교문을 밀고나가, 이른바 짱돌만으로 경찰을 학교 양 옆 2km까지는 밀어냈습니다. 친구 김훤주가 어디서 구한 야구 방망이를 들고, 마치 이순신이 지휘하는 것처럼 '독려'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세번째 기억은 1990년대 초반에 생긴 것입니다.


부산으로 출장을 가기 위해 오른 열차 안에서 김준엽 총장을 뵈었습니다. 인사를 드렸더니, 악수를 청하며 "자네는 학번이 어떻게 되는가?"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 학번이라면, 내가 총장 자리에서 물러나지 말라고 데모를 했겠군. 고맙네"라고 하셨습니다. "총장 물러나라는 데모는 무척 많았지. 그런데 물러나지 말라는 데모는 내가 처음이야"라며 무척 즐거워 하셨습니다.


김준엽 총장 이후 지금까지 어떤 분들이 어떻게 그 자리를 거쳐갔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김준엽 선생을 총장으로 '경험'한 당시의 학생들에게는 '대학 총장이란모름지기 이런 자리'라는 개념이 만들어져 있을 것입니다. 총장에서 물러난 이후, 국무총리로, 당 대표로 정치권에서 수없이 러브콜을 보냈는데도 거기에 한번도 응하지 않은 채 평생 곧은 학자로 살고 계십니다.


모름지기 고려대 총장 자리는 이러한 자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회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거나 사회 분위기를 무시하는 자리가 아니라, 사회 분위기를 좋은 방향으로 곧게 리드하는 자리, 대학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도 어른으로서 존경을 받는 자리.


바로 그 자리에 있는 분이, 사회 분위기를 헤아리지 못하거나 알고도 무시하거나 하여 구설에 오른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참 곤혹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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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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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성 2011-06-08 17:14:42
답글

학생들에게 존경을 받던 분이시지요.<br />
바로 그 시절에 학창시절을 보냈는데.<br />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영진 2011-06-08 17:42:00
답글

그 당시가 생생한 사람중의 하나로서<br />
<br />
당시 그분께 졸업장을 받지 못한 것을 매우 애석해 했었지요...<br />
<br />
선생님 영면하십시요. <br />
<br />
고인에 관한 일화는 저 역시도 아는게 몇가지 있는데 나중에 들려드리지요.

이현호 2011-06-08 17:50:24
답글

누구는 일본 장교로 가서 독립군들 잡으러 당기고 그에 대해서 '시대상황이 그래서 어쩔수 없었다, '하지만 이 분은 탈영하여 광복군에 가담하였더군요... 이런 분이 증말 나라와 국가를 위한 분이시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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