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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한국근현대사] 전두환이 말하는 박정희의 허구 = 전두환의 자랑 2가지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1-05-16 12:52:05
추천수 0
조회수   677

제목

[펌, 한국근현대사] 전두환이 말하는 박정희의 허구 = 전두환의 자랑 2가지

글쓴이

이태봉 [가입일자 : 2004-10-30]
내용
살인마전두환이 자랑하는 2가지가 있다.



1. 최초로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바로 자신의 집권기간 중 대한민국 유사 이래 최초로 무역흑자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출강성대국 "경제 '하나만'은 잘했다"는 박정희는 뭥미?



일본으로부터 식민지피해배상금 최소 12억불 손해

(장면내각에서 18억불 요구, 일본은 12억불 제시하였으나,... 박정희는 꼴랑 3억불 받고 혼자서 지 맘대로 역사청산... 아직도 일본이 큰소리치는 이유, 정신대할머니들이 평생 시위하여도 10원 한닢도 보상못받는 이유)

18년 장기독재집권기간중 233억불 적자,

18년 장기독재집권기간동안 겨우 GDP 순위 1단계 올라갔을 뿐,

말기에 국가부도 - 전두환이 일본에 40억불 빌려 겨우 수습





2. 최대의 쌀 생산량을 이룩하였다.



1982년 봄 청와대 오찬 대담에서 전두환이 그날(출입 기자단 대담) 한 말중에 이런 얘기가 있었다.



'올해 쌀 생산량이 3,500만섬을 약간 넘겼는데, 이게 사실 사상 최대의 수확량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해에 미국으로부터 부족분을 수입해와야 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누구나 아는 바에 따르면 77년 박정희독재정권 발표의 쌀 수확량은 사상 처음으로 4000만 섬을 넘겨 해외(인도네시아)에 수출까지 하지 않았던가!





전두환의 계속되는 설명(일부는 중앙일보 자료 참조) -



73년부터 박정희는 신년초만 되면 전국의 도지사들을 청와대로 호출해서 우격다짐을 늘어놓았다.



그는 도지사들에게 매년 쌀 생산량을 10%이상씩 획기적으로 증산 시키라고 지시했다. 만일 목표를 달성치 못할 경우엔 책임을 지고 옷을 벗으란 위협을 곁들이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것을 주문했다. 이에 걱정을 한아름 안고 돌아간 도지사들은 관할 지역의 시.군수들을 소집해서 박정희가 자신들에게 지시한 내용을 앵콜 방송을 했다.



농업 생산량이 일시적으로 획기적인 증가를 할 수는 있어도, 거의 동일한 재배지에서 매년 10%씩 증산을 한다는 것은 농업경제의 기본도 모르는 무식한 소리였다. 오로지 군대만 믿고 설치는 것들의 대가리에서나 나올 법한 구상이었지만, 시키는 대로 깔 수밖에 없었던 시.군수들은 무식한 묘법을 짜내기에 이르렀다.

대개 지방 관리들의 임기는 보통 1~2년 정도에 불과했다. 자신의 임기만 적당히 채우고 책임은 후임자에게 떠넘기는 기막힌 아이디어가 당시의 지방관리들의 잔머리에서 나왔다. 즉, 되든 안되든 매년 10%씩의 증산량을 허위로 보고 하고 자신은 다음해에 다른 임지나 직책을 받아 튀어 버리면 된다는 술 수였다. 이를 도지사들이 다시 써먹었다.



이렇게 조작된 허위 통계는 결국 74년부터 77년까지 한국의 쌀 생산량이 단위 면적당 세계 최고수준이었던 스페인을 제치고 기적적인 증산을 이룩하였다. 77년 마침내 4000만섬을 달성하고 온 나라는 관제 축제에 휩싸였다. 이제부터 정부는 새로운 문제로 골치를 앓아야 했다. 항상 보릿고개로 고생하던 한민족이 어느날 갑자기 남는 쌀을 어떻게 처분하느냐는 즐거운(?) 고민이었다. 때마침 78년도 인도네시아에 기근이 발생해 한국 정부는 염가로 우방국에 쌀을 수출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그해 말에 쌀값이 폭등하기 시작하고 시장에선 쌀을 찾아보기 힘들어 지게 되었다. 놀란 정부는 세밀한 점검을 하기 시작했고, 막대한 쌀이 부족하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부랴부랴 미국에 특사를 파견해서 쌀 생산지의 미 의원들을 붙들고 한국에 긴급히 쌀이 수출될 수있도록 해달라고 통사정을 해야했다.물론 국민들이 알세라 언론을 단속하면서 몰래 쌀을 들여와야했다.



전두환은 이 부분에서 마지막 말로 끝맺는다. 당시(77년도)의 쌀 수확량은 사실은 3,300~400만섬 정도로 올해(82)보다 더 적었다고.



중앙일보엔 당시 UN에선 한국측이 허위로 날조된 통계를 제출한다고 비난했다고 한다.





[부록]

조갑제도 밝히는 박정희의 부정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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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 2011-05-16 12:56:11
답글

ㅎㅎㅎ 쌀 이야기는 개그가 따로 없네요...저런걸 정치라고 했구나...저래놓고 박정희는 경제의 신..ㅎㅎ..적어도 경제는 박정희보단 살인마가 조금 위네..

이태봉 2011-05-16 13:08:05
답글

1989년봄 MBC 박경재의 시사토론에서 박근혜, 신군부 비난 <br />
<br />
"전두환씨는 박근혜씨 이야기(5공이 박대통령을 섭섭하게 대우했다.)를 듣고 대단히 화를 냈다고... 박대통령 친인척 비리가 드러나지 않은 것은 자신이 적극적으로 그 부분의 조사를 저지했기 때문인데 "저럴 수가 있느냐"는 반응이었다는 것이다. <br />
<br />
전씨는 "접수된 박대통령과 그 친인척 비리에 대한 신고.진정서만 해도 한 트럭분은 족히

이기철 2011-05-17 01:37:09
답글

이글이 조회수가 300이라니,,, 털썩,,,,<br />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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