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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태, 이 분 엄청난 분이셨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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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5 13:58: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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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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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태, 이 분 엄청난 분이셨군요 |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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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봉 [가입일자 : 2004-10-30]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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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장학회의 전신은 부일장학회다. 박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군부는 1962년 7월 당시 김지태 삼화고무 사장이 설립한 부일장학회를 몰수해 '5·16 혁명'을 기린다는 의미로 5·16장학회를 만들었다(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이후인 1982년 박정희의 정, 육영수의 수 자를 따서 정수장학회로 이름을 고쳤다).
정수장학회의 기본 재산은 전적으로 김지태에게 강제 헌납받은 재산(부산일보 주식 2만 주, 한국문화방송 주식 100% 2만 주 ,부산문화방송 주식 65.5% 1만3100주, 부산 시내 토지 33만485㎡)으로 충당했다. 부일장학회 소유 땅 33만485㎡(10만147평)는 재산을 몰수한 이듬해인 1963년 국방에 무상 양도했다. 이 규모는 당시 15명의 '부정축재자'에게서 환수한 42억2800만 환의 8분의 1인 5억4570만 환에 해당하는 것이다.
당시 김지태씨는 부산일보를 운영하는 한편 한국 최초의 민영 상업방송인 부산문화방송을 설립했다. 오늘날의 MBC 전신인 서울문화방송을 설립한 인물이다. 또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33만㎡가 넘는 땅을 투자해서 '부일장학재단'을 만들었다. 1958년 설립 이후 4년 동안 1만2464명에게 17억7032환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당시 가장 큰 육영법인인 '상이군경장학회'가 연간 300명을 대상으로 1500만 환을 지급한 것과 비교하면 부일장학재단의 규모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진상조사 과정에서 김씨의 유족은 5·16 쿠데타 직전 거사자금을 융통하기 위한 자금 지원 요청을 모른 척한 것이 권력의 미움을 산 이유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5·16쿠데타 직후 부정축재 환수 처분을 받은 기업인 중 재구속됐고 또 구속된상태에서 재산을 헌납한 유일한 기업인이다. 구속 과정도 '기획수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떻든 김지태는 부정축재처리법 등 9개 혐의가 적용되어 구속됐고 군사 재판 아래서 7년 구형을 받았다. 구속된 상태에서 그는 5억4579만 환을 헌납한다는 '기부승낙서'에 도장을 찍고 석방됐다. 표면상 자진 헌납의 형식을 취했지만 구속 상태였던 김지태가 권력의 재산 헌납 유도 및 압력에 따라 기부승낙서를 작성한 것임이 입증됐다.
김지태는 자서전인 <나의 이력서 >와 <문항라 저고리는 비에 젖지 않는다 >에서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고 맞서는 경우 (회사) 간부들과 수천 명의 종업원이 희생당할 것이 안타까워 미리 작성해온 각종 양도서에 강제로 날인하자 며칠 만에 경남지구고등군법재판소는 자신을 비롯한 전원에 대해 공소 취소를 선고했다"고 기술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김씨가 강압에 의해 헌납한 재산은 국가의 공식적 절차를 밟지 않고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지시에 따라 5·16장학회의 기본 재산으로 출연됐고, 헌납 재산의 소유명의는 국유재산법 등이 절차를 따르지 않고 5·16장학회로 이전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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