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출근해 와싸딩 중입니다..
아래 현빈이가 훈련소에서 총을 잘 쏘았다는 글,
아니 글보다는 여러 댓글들을 보다가
군시절 저의 중대장님이 생각납니다..
저는 87년 논산, 이른바 13군번입니다..
훈련소에서 다른 것은 다 보통 정도는 되었는데 사격이 안 되 얼차려 무지 받았습니다..
논산 배출 후 특전 교육단에서 또 교육을 받는 동안에도 사격이 안 되 무지 고생했습니다..
오랜 훈련병 생활를 끝내고 부평에 있는 모 여단으로 배치
그리고 대대장이 전 대대원을 모아놓고 직접 주관히시는 산병 입소식 및
무기(개인화기)수여식
모든 의식들이 항문에 힘 팍팍 들어가게 하는 것이었죠..
무기 수여식이 끝나자 마자 바로 중대장 인솔하에 바로 사격장에 가
영점을 잡으러 가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사격이 안 되 심하게 얼차려 받던 기억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왔죠..
첫 세발..
A4용지 위쪽 좌으로 드 발, 맨 아래 한 발..
중대장 왈,
다시 해봐...
역시 따로 국밥으로 노는 탄착군..
최초 지급된 20발을 다 날려도 탄착점이 안 모이더리는 것..
저는 하늘이 새카맣게 보이고 이제 군생활 쫑나는구나 생각했더랬습니다..
중대장이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저보고 잠시 쉬고 있으라 하더니
사격장 바로 아래 있는 탄약고에 내려 가서
탄통 하나와 탄포 한 줄을 들고 오더군요..
한 탄통이 아마 200발, 탄포가 거의 60~70발은 되었을 겁니다.
중대장님 왈,
자 이제부터 '니 꼴리는대로 쏴바라..'
람보처럼 서서도 쏘고, 기둥에 기대서도 쏴보고,
영화에서 봤던 오만 똥폼 다 잡고 쏴 바라 하시더군요..
탄통 하나 거의 다 비우고 났을 무렵
탄창을 거꾸로 해서 총에 끼워 놓고는
노리쇠를 열고 탄피 배출구로 직접 한 발을 넣어준 다음
'이 한 발이 전장에서 너에게 남은 마지막 한 발이다'고 말씀하더군요.
사과만한 돌덩이를 표적지 다는 말뚝 위에 올려 놓고 맞춰 보라고 하더군요.
격발과 동시에 돌맹이가 산산조각 나며 비산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때 통쾌한 기분이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는 조금 작은 돌, 더 작은 돌.....
나중에는 담배 한 개비를 꽂아 놓더니 맞춰보라 하더군요.
첫발에 바로 명중..또 명중
중대장님 왈,
너는 표적지 노이로제가 있는 것 같다하시며
맞은 편 관물대에 표시 해놓은 '멀,가,중' 표적지를
뚫어지게 보는 연습을 하라고 시켰습니다..
신참이 내무반에서 각잡고 시선 처리 할 데가 마땅찮았는데 잘 됐다 싶더군요.
눈에 눈물 맺히도록 표지만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야 말씀 안드려도 다 아시겠죠..
200미터 거리에 M60표적지 붙이고 점수 내는 사격 대회에 후보까지 발탁 되었습니다.
본선에는 못 나갔지만
그때 중대장님은 전 대대 장교 중에 세명밖에 없는 육사 출신이었습니다.
아주 무식(?)한 군대에서 아주 현명한 지휘관이었습니다.
행군할 때는 중대원들의 베낭 무게를 일일이 점검해서 무거운 짐이 쫄병들에게
몰리지 않도록 했습니다.
훈련 중엔 사비를 들여서라도 부식을 더 충당해 먹이셨습니다.
전투병과의 장교이면서도 중대의 통신 하사관보다 더 뛰어난
암호, 음어, CW 실력을 갖추었으며
뛰어난 독도법을 갖추어 중대의 정작 하사관보다 지도를 더 잘 보아
행군 시에 이산 저산을 헤메지 않게 했습니다..
그 중대장님이 늘 하시던 말씀이
"어리석은 지휘관은 적보다 무섭다.
적은 싸워 이기면 되지만 지휘관과는 싸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군대는 필요해도 군대에서의 민주주의는 필요없다.
지휘관의 결정을 다수결로 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작전과 관련된 모든 것을 외우고 머리 속에 넣어 두어라.
전우가 유고 시에 그 자리를 채워야하기 때문이다."
주옥같은 명언들이 많았는데 세월이 지나니 다 잊었습니다..
하지만 첫번째 말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 요즘 같은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말입니다..
지금쯤이면 그 중대장님은 전역을 하셨을 지도 모를일입니다만
다시 한번 뵙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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