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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가이치의 추억.. 아니 깊은 트라우마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1-03-25 19:49:44
추천수 0
조회수   2,249

제목

나카가이치의 추억.. 아니 깊은 트라우마

글쓴이

강윤흠 [가입일자 : 2006-11-16]
내용
한국 배구가 인기 면에서 (삼성화재 등장 전까지) 전성기 시절에도 일본을 만나면 반 정도만 이겼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일본의 에이스 나카가이치였죠.



서전트만 1미터를 뛰는 동양인으로 이해안되는 타점. 5세트 접전이라도 펼칠라하면 마지막은 무조건 나카가이치 공격. 이걸 알고도 못막고 블록커를 3명씩 마크를 해도 막을까 말까 하곤 했습니다.



일본인 운동 선수로서 이정도 트라우마를 우리에게 안겨준 선수가 누가 있을까요? 어제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 경기를 보다 보니 삼성화재의 가빈 슈미트가 잊혀졌던 나카가이치의 추억을 되살려줍니다. 공격점유율 70%에 57득점. 70%면 어쩔 수 없는 거 빼곤 전부 가빈이 때렸다는 건데.. 한편으론 외국인 용병 선수 한 명의 포스가 이 정도라는 게 어이없기도 합니다.



전 현대차서비스 시절부터 현대팬이긴 하지만 올해는 대한항공이 드뎌 우승하길 응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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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철 2011-03-25 19:58:36
답글

고려증권의 에이스 장윤창 선수가 생각나네요 나카가이치이름을 해설자나 캐스터의 목소리로 무수하게 들었죠

이경렬 2011-03-25 20:34:59
답글

나카가이치는 얼굴도 예술이었죠.

우용상 2011-03-25 21:00:33
답글

나카가이치 전성기때에는 거의 못이겼던걸로 기억하는데요. 김세진, 신진식이 대표팀 합류하고 나카가이치가 30대가 되어 은퇴할때 다 되었을때 겨우 이겼던 기억이 납니다.<br />
<br />
아무튼 전성기때 나카가이치는 그야말로 블로킹 위에서 때린다는게 뭔지 보여줄 정도였죠.<br />
<br />
삼성화재가 아니라 가빈화재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던데, 감독 입장에서야 어쩔수 없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길수 있는 유일한 길이 가빈한테 볼

김희석 2011-03-25 21:09:56
답글

그시절 배구 재미있었죠<br />
장윤창의 노쇠화 부터 ~ 김세진의 등장까지<br />
그 아주 잠깐 사이에 일본이 기세등등하던 시절로 기억되네요<br />
나카가이치 VS 하종화 의 거포대결정도였구요<br />
190정도의 노진수가 센터였으니 우리가 조금 딸렸었죠<br />
서울시청 삼총사 박삼용, 서남원, 이성희 그리고 성대의 마낙길시절인듯합니다^^

우용상 2011-03-25 21:12:26
답글

당시 대표팀 최장신 센터가 윤종일이었을 겁니다. 제 기억에는 노진수는 레프트를 봤던걸로 기억하고요. 소속팀인 현대차 서비스에서도 윤종일이 입단하기전까지 센터는 노진수가 아니라 문용관이었을겁니다.

강윤흠 2011-03-25 21:22:29
답글

현캐는 현대서비스 시절부터 스탈이 일관적인 것 같습니다 ^^<br />
트라우마라곤 해도 그 시절 한일 라이벌전은 정말 재미있었능데요

김희석 2011-03-25 21:26:03
답글

네, 센터는 윤종일이 맞죠.<br />
2미터가 훌쩍넘는 오다케와 윤종일의 손위에서 내려꽂는 나카가이치를 맞상대하려다보니,<br />
윤종일(직전에는 양진웅), 최천식, 한장석, 노진수등으로 대책없이 돌려막던것도 기억납니다.

김태훈 2011-03-25 23:54:03
답글

그 당시의 어느날, 학교에 다녀오니 초저녁부터 배구중계를 하길래 봤더니,<br />
어느팀과의 경기인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하종하선수가 키가 장대같은 <br />
서양선수들의 블로킹을 뚫고 강타를 펑~펑~ 터트리는 모습을 보고 감탄했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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