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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 미치님의 글임을 밝힙니다.



[나가수] 우리나라의 현실이 그대로 오버랩됩니다.



오늘 방송 자체의 난맥상은 오로지 PD와 제작진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생방이면 이소라씨와 김건모씨의 잘못이 크겠지만 녹화 방송에서 애초에 이런 상황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것도 아니었고 비방용으로 녹화 들어가기 전에 오늘 떨어진 분은 그게 누구건 승복하시는 겁니다 라고 단단히 다짐을 해두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상황이 벌어진 다음에는 어떻게든 이소라씨를 다독이고 김건모씨를 설득해서 대기중인 다음 가수분을 출연시켰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총체적인 실패 그 자체보다도 더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PD가 이 상황을 풀어가는 과정을 '나름대로 연출해 낸' 방식입니다. 그 방식이 너무나도 우리나라의 현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아서 마음이 많이 불편합니다.



이소라씨는 자신의 감정을 500인의 방청객의 의사보다 우선시 했습니다. 그리고 판을 깨버리겠다고 위협을 하면서 녹화장을 떠났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후배 가수들은 판 자체를 깨면 안된다는 절박함과 두 선배 가수의 권위에 눌려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자 김제동 씨가 소위 '립스틱 퍼포먼스는 공연 외적인 요소인데 이것이 평가 기준에 들어갔다'는 논리를 제공합니다. 그러자 이 모든 것을 조율해야 할 PD가 그 논리를 옳다꾸나 하고 채택해서 결국 500인의 판단을 완전히 뒤집어 엎고 급조된 룰을 가지고 방송을 파행으로 몰고갑니다.





여기서 보호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소라의 감정. 김건모의 대선배로서의 권위. 도대체 예술인들 사이에 왜 존재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는 선후배 가수들 사이의 배려와 존중을 가장한 알량한 위계 질서.



잃은 것은 무엇일까요. 500인의 평가단의 판단의 정당성. 주말 황금 시간에 우롱당한 시청자. 그리고 장기적으로 프로그램 자체의 신뢰성 상실.



정말 어느 한 부분도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을 떠올리지 않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항상 경제 위기를 운운하며 해외로의 자본 이전, 투자 축소, 고용 긴축 등을 통해 판 자체를 깨버리겠다고 위협하는 재벌. 그리고 판 자체를 깨면 안된다는 생각과 현실적인 힘 앞에 침묵하는 엘리트. 그리고 그 상황을 포장하기 위해 '종부세는 징벌적 세금이다. 무상급식은 망국적 포퓰리즘이다'라는 등의 논리를 개발하여 널리 퍼트리는 언론. 그리고 논리를 그대로 받아서 판단을 내리는 법원.



여기서 보호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재벌의 이익. 정치인들의 권위. 정치적, 경제적으로 깊게 패인 골을 형성하고 있는 2:8 사회의 공고성.



잃은 것은 무엇일까요. 5000만 국민의 이익. 일상 생활에서 항상 권력 앞에 우롱당하는 국민. 그리고 장기적으로 대한민국 자체의 개혁과 발전 원동력 상실.



정말 오랜만에 본방사수하면서 가수들의 노래에 감동하고 결과에 손에 땀을 쥐었던 시간들이 허망하네요. 박정현씨의 팬이라서 박정현씨만 살아남길 바랬는데 이제는 안 그래도 멘탈이 약하다고 얘기 많이 듣는 누님 그냥 이런 프로그램 따위 계속해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ps. 오늘 모든 가수들의 노래는 정말 너무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