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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삶을 언제나 달리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유의지로 벗어날 수 있는 사지로 들어가야 하는 경우 그 댓가는 무엇인가?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1호기 3호기, 2호기 줄줄이 폭발, 냉각이상을 일으키고 있다. 연속된 폭발로 연일 방사능 피복자가 늘어가고 있다. 누군가 전문가가 목숨을 걸고 수리해야 한다. 그 댓가는 무엇인가 ?
예전 시게에 올린 글 중 러시아 원자력 잠수함 K19을 다룬 캐서린 비글로의 영화가 있다. 냉각기 고장으로 인한 방사능누출에도 불구하고 선원들은 목숨을 건 동지애로 서로를 구해낸다. 앙리 조르쥬 끌루조나 후리드킨의 “공포의 보수”에서는 엄청난 돈이 그 댓가였다. 방사능누출을 저지하기 위해 지옥문으로 들어가는 후쿠시마 원전 기술자들의 댓가는 무엇일까?
원전의 구조적 결함이나 당국의 대처능력 부족 등에 묻혀서 이들의 처절한 사투를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간이 흘러 영화 K19에서 처럼 오로지 동료들만이 그 처절함과 의무의 지옥, 공포를 기억할 지도 모른다.
일본이 원전누출보다 지진과 쓰나미에 무게 중심을 둔 반면 세계의 언론은 후쿠시마에 집중되고 있다. 독일, 프랑스 등은 자국민의 도호쿠는 물론 동경탈출을 지시한지 오래다. 심지어 오사카나 쿄토의 재일외국인들 마저 떨고 있는 상황이다. 후쿠시마 원전 기술자의 공포의 보수는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