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대통령 관련글이 올라와있어 펌 하였습니다.
제가 지난 대통령이자 돌아가시고 세상에는 않계시는분의 관련글들을 올리는것은...
죽은자식 불알 만지기의...때늦은 아쉬움과 미안함 때문만이 아니라...
앞으로 이땅에 살아가야만할 우리들에게...
내일을 위한 생각에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될까해서 입니다.
노무현 참여정부 양정철 비서관의 글을 펌 하였습니다.
8일, 부고 하나를 받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후보 시절, 경호팀장을 맡았던 한명선 전 청와대 비상계획관. 그가 불치의 병과 1년 넘게 싸우다 끝내 세상을 떠났습니다. 참으로 강직하고 의리 있는 사람이었는데,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자신이 지키던 노무현 대통령을 따라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습니다.
제가 그를 처음 만난 건 2002년 대선 때입니다. 풍채도 좋고 얼굴도 잘 생긴 분이 노무현 후보 경호팀장으로 왔습니다. 그는 20년 넘게 한 항공사에서 보안업무를 맡았던 무골이었습니다. 자당의 후보를 자당 의원들이 흔들며 당의 꼴은 말이 아니었고,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은 바닥을 헤매던 시절이었는데, 그가 무슨 생각으로 '별 희망이 없는' 노 후보를 모시겠다고 결심을 하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성실히 일했습니다. 그 긴 대선 장정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노 후보 곁을 지키며 후보의 안전을 지켰습니다.
일이 아주 힘들었을텐데도 그는 항상 웃는 얼굴이었습니다. 하지만 경호를 할 때는 흐트러짐이라곤 없었습니다. 그의 강직함과 노 후보에 대한 확신을 상징하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대선 때 매일 새벽, 그는 노 후보의 명륜동 자택 앞에서 후보를 기다리며 고된 경호업무를 시작했습니다. 마음 따뜻한 노 후보가 그의 고생이 안쓰러워서 하루는 집을 나서며 격려의 말을 건넸습니다.
되죠?"(경상도 사투리로 '되다'는, 힘들다는 뜻입니다)
"네, 됩니다!"
"아, 그게 아이고, 되죠?"
"네 후보님. 반드시 되실 겁니다! 힘 내십시오"
후보가 쓰는 경상도 사투리를 몰라 생긴 동문서답의 코믹 해프닝이지만, 노무현 후보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그만큼 투철했습니다. 그리고 매사에 강직했습니다. 훗날 노 대통령도 그 때의 동문서답 얘기가 나오면 껄껄 웃곤 했습니다.
대선에서 승리가 확정되고, 대통령 경호실이 직접 당선자 경호를 맡게 되면서 그는 졸지에 일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과거 정부의 경우, 당선 전에 경호를 맡았던 사람이 청와대로 들어가 계속 경호를 맡는 게 관례였습니다. 하지만 원칙을 중시하는 노 대통령은 경호실 기준과 체계를 존중해 그를 경호실에 특별채용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는 불평 한 마디 없었습니다.
참여정부 출범 후 한참 뒤에야 대통령비서실 비상계획관으로 들어왔지만, 그는 부서가 어디든, 직급이 뭐든, 노 대통령을 다시 모실 수 있게 된 것을 자랑스러워 했고 보람있게 여겼습니다. 그렇게 참여정부 청와대 생활의 끝까지 음지에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특히, 원래 경찰특공대였던 그의 딸이 경호실에 파견돼 대통령 가족 경호를 맡게 된 것을 대단히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참 묘한 인연입니다.
그의 죽음이 안타까운 건 그의 외로운 말년 때문입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참여정부 인사들에게 혹독한 시련의 계절이 찾아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필설로 다 못할 치졸한 정치보복을 당하게 됐습니다. 참여정부 주요 인사들 본인은 물론 사돈의 팔촌까지 다 뒤져 망신꺼리를 찾을 때였습니다.
그는 청와대에서 모시던 모 인사가 정치보복의 희생양이 되자 기꺼이 손발이 되어 1년 넘는 기간 동안 갖은 수발을 다 들었습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지만 그는 의리 하나로 헌신했습니다. 결국 무죄를 선고받은 인사와 법정에서 둘이 껴안고 펑펑 울던 그의 순수함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노 대통령이 서거하자 그는 꺼이꺼이 울면서도 봉하에 살다시피 하면서 온갖 궃은 일을 맡아 장례를 함께 치렀습니다. 그리고 그 직후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가벼운 감기 정도로 알고 갔던 병원에서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것입니다. 술 담배도 안 하던 사람이.
투병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강원도로 들어가 자연식과 운동으로 암을 치유해 보려고 애를 쓰기도 했고, 실제로 많이 좋아지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암을 이겨내진 못했습니다. 며칠 전부터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더니 끝내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영안실에 모인 참여정부 사람들은 혹여라도 그가 청와대를 나온 직후 고생 때문에 병을 얻은 건 아닌지, 그 때문에 결국은 세상을 뜨게 된 것은 아닌지 자책하며 통한의 슬픔을 나눴습니다. 10일 발인과 함께 그는, 자신이 지키고 사랑했던 노무현 대통령 곁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선 부디 평안한 안식을 누리길 바랍니다. 그 분의 명복을 빕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노무현대통령님 퇴임후 일화 한가지...첨언.
“2008년 여름 강원도에 갈 때, 버스 안에서 노 대통령께서 대뜸 ‘이 수석 우리가 권력을 누렸소’라고 묻데요. 그래서 제가 ‘아닙니다’라고 말했죠. 이어 ‘세상을 바꿨소’라고 물으셔서 ‘생각만큼 바꾸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러면 우리가 뭘 한 거요’라고 말씀하시기에 ‘참여정부가 정책의 품질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권력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을 바꿨습니다’라고 대답했어요.
그런데 대통령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해보니깐 권력을 누린 것도 아니고 세상을 바꾼 것도 아니더라.
정말 세상을 바꾸려면 시민들이 바뀌어야 하는데 그것부터 공부하자.’
그때 민주주의 2.0에 대해 말씀하시며 꼭 같이 공부하자고 하셨죠. 당시 제가 권해 드렸던 책이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입니다. 저도 한 번 읽고 권해 드렸는데 다음에 뵈니깐 몇 번이나 정독하며 고민을 많이 하셨더라고요.”
세상을 바꾸려면 시민들이 바뀌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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