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왠 절에 삼성각(三聖閣) 또는 삼신각(三神閣) 또는 산신각(山神閣)이 있는지? 의문이 들진 않았나요?
단순히 유불선(儒佛仙)이 융합되어 한국 불교에 영향을 끼쳤으니 그럴꺼라고 여기겠지요. 맞습니다.
그러나, 더 자세히는....
본래 대웅전(大雄殿)은 부처님를 모신 곳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을 모셨을까요?
3분의 성인(聖人)을 모셨습니다.
환인(桓因) 환웅(桓雄) 단군(檀君)을 모신 사당(祠堂)입니다.
그래서, 절 경내에 삼성각, 삼신각, 산신각이라고 불리우는 건물이 있으며,
심지어 "산신각이 없는 절은 절이 아니다" 고 할 정도로 산신각은 절의 필수 시설입니다.
그것도 대웅전 보다 항상 높은 곳에 위치합니다.
대웅전은 환인(桓因) = 天, 환웅(桓雄) = 地, 단군 또는 환군(檀君,桓君) = 人, 삼위일체(三位一體)인 하느님을 모시는 사당입니다.
흔히 불교와 신교가 함께 공존공생하는 현상을 신불습합(이神佛褶合)이라 합니다.
불교가 신교와 겹쳤다는 뜻인데 달리 말하면 겹옷을 입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속에는 불교 옷을 입었는데 겉에는 신교, 즉 단군교의 옷을 걸쳤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현상은 역사가 오랜 나라에서는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일이며, 우리나라의 경우 태초에 신교 즉 단군교가 있었고 다음에 불교가 들어왔습니다.
이런 경우 단군이 주신(主神)이 되고 부처는 객신( 客神) 즉 손님신이 되는 것입니다.
두 신은 한동안 서로 힘겨루기를 하다가 결국에 가서는 싸움을 멈추고 서로 손을 잡고 공존공생하기로 결심합니다. 이것을 신불습합이라 하는 것이요, 절에 단군상 또는 산신 또는 삼신을 모셔놓은 것이 바로 신불습합의 좋은 사례입니다.
대웅전이란 이름도 한국에만 있는 명칭인데 그 어원을 따져보면 환웅전이 대웅전이 되었습니다.
환웅은 단군의 아버지요, 천신인 환인의 아들입니다.
이 삼신을 믿고 살아온 우리에게 손님신인 부처가 들어와서 자리를 빼앗았으니 이름이라도 한(환)웅전으로 살려주겠다는 것입니다. 한(환)은 크다는 뜻이니 이를 큰 대자를 써서 대웅전이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두 종교가 습합했다고는 하나 대등한 것이 아니어서 주객이 전도되고 말았습니다.
손님인 부처가 대웅전을 차지하고 주신인 단군은 뒷마당 작은 초막에서 비바람만 겨우 피하고 있으나 민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일연의 <삼국유사>를 보면 우리나라는 방방곡곡에 당집으로 가득차 있었는데 불교가 들어오더니 당집을 헐어 절을 지었다는 기록, 그리고 당집을 헐었더니 땅속에서 황금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 돈으로 절을 지었다는 등등의 기록이 보입니다. 또 같은 <삼국유사>에 보면 절에 원인 모를 화재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는 기록도 보입니다.
이 역시 단군을 모신 자리에 절을 짓고 부처를 모신데 대한 민중의 앙갚음이었던 것이고, 고구려에서 신라로 와서 처음 불교를 전한 분이 아도화상(阿道和尙=묵호자)었는데 그는 병으로 죽어가는 신라의 공주를 살려놓고 왕의 신임을 듬뿍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불교를 배척하는 여러 신하들의 모함을 받아 직지사에서 멀지 않는 선산으로 낙향하여 끝내는 자진하였다는 것과, 목을 잘렸다는 순교자 이차돈(異次頓)의 이야기는 신불상쟁(神佛相爭)의 대표적인 참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릇, 어른 없는 집안이 없으며, 조상없는 가문이 없으니, 우리 민족의 어른도 있었겠죠.
단군 신화가 단지 신화인지, 허구인지, 사실인지 참으로 오래 지난 일이니 정확히 알수는 없겠으나 어른이 계셨음은 분명하겠지요.
(저는 사실로 봅니다.)
그렇다면 새해 또는 중요 기념일에 대통령 이하 각료들이 현충원에서 참배를 하는데 의미있는 일이지요.
하지만 그 보다는 단군 사당에 참배를 하고 현충원을 들려야 하는건 아닌지?
하다못해 현충원에 단군 사당이 있어야되는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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