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나는 왜 예수를 믿는가. |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 |
2011-03-02 07:58:32 |
|
|
|
|
제목 |
|
|
나는 왜 예수를 믿는가. |
글쓴이 |
|
|
이성광 [가입일자 : 2001-03-19] |
내용
|
|
본 글을 적는 취지는 기독교의 타락상에 대한 변명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싶습니다. 진리에 관심이 있는 분을 위한 글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그런 기독교가 왜 그렇게 살지 못하느냐" 라는 댓글에 대해서는 답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답변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충분히 뼈아프게 동감하여 변명하고 싶지않기 때문입니다.
최근들어 왜 기독교를 믿지 않는가 하는 글이 자주 올라옵니다. 그렇다면 왜 나는 기독교를 믿는가 하는 글이 한 개쯤 올라와도 종교게시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용서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교회 관련 종사자가 아닌 일반적인 성도일 뿐이라서 제 글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고, 기독교의 공식 입장도 아니겠지만 그저 교회 열심히 다니는 한 사람의 글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절대자를 믿는 것은 약하고, 나 자신을 믿는 것이 강한 것은 아닙니다.
당신은 외계인을 믿습니까? 당신은 귀신을 믿습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은 믿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있다는 증거를 달라고 하십니까? 그러면 없다는 증거는 있습니까?
그 증거가 과학입니까? 아닐걸요. 과학이 성경을 공격하는 도구는 될 수 있을지언정 신이 없다는 근거는 댈수 없을겁니다. 예전엔 천둥번개가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했었지요. 과학이 그게 아니라 스파크일 뿐이라고 밝혀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없는겁니까?
인간은 강하지 않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나이가 몇이신지요?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이 어떻습니까? 몇년을 살든 눈 깜짝할 사이일것입니다. 그렇게 눈 몇번 더 깜짝하면, 어쩌면 눈 한 번 더 깜짝할 새 없이 죽습니다. 이 짧은 세월을 살다가 가는 것이 허망하지 않습니까? 10분을 사는 것과 하루를 사는 것과 80년을 사는 것의 차이를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이 짧은 인생에 기대어 그냥 죽으면 끝! 하고 관심 없을 수 있는지 저는 그게 더 신기합니다.
인간의 시간이 한정되어있음과 아울러 인간의 공간도 한정되어있고, 지식도 한정되어있으며, 가치관도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 한정된 틀에서 아무리 벗어나려고 발버둥쳐봐도 인간은 벗어날 수 없이 한정되어 죽어갑니다. 아무리 바르게 살려고, 내게 주어진 삶에 충실한 것이 최선이라 가치관을 세워봐도 그것은 나라마다, 계층마다, 시대마다, 상황마다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전에 최소한의 내 가치관을 내 자신이 제대로 따르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그런데 강한 분이 있다고 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자가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솔깃한 것이 왜 약한 것입니까? 당연한 것이지요.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어리석은 오만 아닙니까?
사실은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열심히 귀 기울이지 않았거나, 잘못된 것에 귀를 기울였다가 실망했기 때문에 더이상 듣지않고 귀를 막아버렸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너무 많은 소리가 있기에 잘못 듣기 쉬운 시대입니다. 그럼 어떤 것이 "진짜"일까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2000년 전에 살았던 한 젊은이 이야기를 해보지요.
최초의 성경은 기원 후 60~70년경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이 33년 사셨으니까 그의 사후 30~40년 경에 쓰여졌습니다. 그 기록된 성경이 거의 변화없이 오늘날 우리 손에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40년 전이면... 1970년대로군요. 1970년에 충청도 서천면에서 구세주가 나셨다고 하면 어떨까요? 서천면에서 태어난 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믿을까요 안믿을까요? 그렇습니다. 40년은 한 개인의 사기행각이 경전으로 탈바꿈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에 대한 이야기가 사후 500년 지나 기록된 것이 오늘날도 모두 사실로 받아들여진다고 합니다. 하물며 40년만에 쓰여진 성경은 더욱 사실이라고 믿을만 합니다. 무엇보다 알렉산더의 행적이 사실이라고 말해서 죽은 사람은 한명도 없지만 예수님의 행적이 사실이라고 말해서 죽은 사람은 너무도 많습니다.
왜 그들은 단지 예수님이 사실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기꺼이 죽었을까요?
인생의 유한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무한함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인생이 10초이든 100년이든 별 차이가 없구나 하고 깨달아버렸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일이 사실일 뿐 아니라, 죽음 앞에서도 담대할만큼 예수님의 일이 그들을 사로잡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사로잡은 그 진리가 바로 오늘도 똑같은 성경책을 펴고있는 나도 사로잡습니다.
그래서 믿습니다.
예수님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미리 예언되어진대로 그 자리, 그 시간, 그 모습으로 살다 죽은 유일한 분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구세주다" 라고 말씀하신 유일한 분입니다.
예수님은 죽었다가 부활하신 유일한 분입니다.
이외에도 성경에는 예수님이 절대자임을 보이는 증거가 무수히 많습니다.
그 증거가 놀랍도록 논리정연하고도 신뢰성있게 정리되어 있기에 수많은 학자들이 묵상하고 연구하는 것입니다.
오늘 새벽에도 말씀을 폈습니다.
예수님이 "문"인데 이 문을 통하지 않는 이는 도적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글도 모르는 제자 12명에게 진리를 부탁하고 같은 동족에 의해 외면당하여 십자가에서 죽은 서른 세살의 젊은이를 전하지 않고, 우리 교회 1000명 모이는데 2000명 모이면 더 진리가 강해진다는 말이나 하고, 이 민족이 예수믿는 민족이 되어 예수님이 높아져야 이 민족이 산다는 이야기나 하고, 어떻게 하면 죽을까를 고민하라 하지 않고 예수믿어야 잘 산다는 말이나 하는 이 시대의 교회가 "도적"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교회 가지 말고 혼자서 성경 펴고 믿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혼자 믿는 것을 기뻐하셨다면 애초에 인간을 만드시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혼자 지내시지 뭐하러 인간을 만들었겠습니까? 반드시 교회에 나가서 목사님을 포함하여 형제의 연약한 모습을 짊어져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타락했다고 손가락질하지만 말고 그 교회로 들어가서 그 비난을 내가 함께 묵묵히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비록 타락한 교회이지만 내 자신이 예수님의 삶을 사는 모습을 내 아내와 자식에게 보여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어떤 교회 정화운동보다도 가치있는 일입니다.
이상 부족하지만 생각해볼만한 답변이 되었으면 합니다.
|
|
|
|
|
|
|
|
다 좋아요,,,,,다만 타인에게 내 신념을 강요하지 마세요,,,젭알~~~~~~~~~~플리즈~~~~~~~~~~~~쫌~~~~~~~~~<br />
아놔~~~~~~~~~~~~~~~~~~~~기독교인들은 내가 좋으니 저도 좋아라는 좋은 맘인건 아는데, 서양사람들에게 김치먹으라고 강요해야 고문밖에 안됩니다,,,,, |
|
|
|
댓글수정 |
|
|
|
|
|
|
답글쓰기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