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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의 존재감 - 케이트 블랑쳇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1-02-15 22:23:56
추천수 0
조회수   876

제목

배우의 존재감 - 케이트 블랑쳇

글쓴이

이승태 [가입일자 : 2007-11-15]
내용
영화의 재미나 작품성에 상관없이 화면에 비치는 모습 자체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배우들이 있는데 지난 주말에 본 황금시대(The Golden Age)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으로 나온 케이트 블랑쳇이 그런 경우네요. 원래 반지의 제왕에서 엘프 여왕 갈라드리엘로 나왔을 때 처음 봤는데 그 때도 상당히 인상적이었거든요.



예전에 캐서린 헵번이라는 여배우가 있었는데 미모를 앞세운 대부분의 주연급 여배우들과 달리 탁월한 연기력으로 영화를 압도하는 대스타였죠. 캐서린 헵번에게는 못미치겠지만 아뭏든 근래 알고 있는 여배우 중에서 화면 속의 존재감만으로는 저에게 최고의 배우가 되었군요.



황금시대 영화 자체는 그다지 드라마틱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사극의 단골 소재가 장희빈이라면 영국은 엘리자베스의 어머니인 앤 볼린의 이야기가 더 재미있죠. 아버지였던 헨리8세의 사랑을 잃고 참수당한 어머니에 대한 아픈 기억 때문이었는지 버진 퀸이라는 말을 들으며 평생 독신으로 산 엘리자베스였기에 두드러지게 알려진 로맨스는 없지만 영화 속에서는 웅덩이의 망토 이야기로 유명한 월터 롤리와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네요. 매력적인 월터 롤리의 클라이브 오웬이 여왕의 총애를 얻기 위해 접근하는 모습이 제법 볼만합니다.



- 길에 패인 웅덩이에 자신의 망토를 덮어서 여왕이 지나가게끔 재치있는 기사도를 발휘한 월터 롤리의 이야기기는 조지 워싱턴의 벚나무 이야기처럼 지어낸 이야기라고 알고 있습니다.



- 엘리자베스의 아버지인 헨리8세는 아들을 보고자 하는 마음에 6명의 왕비를 두었는데 영국 사람들은 그녀들의 운명을 이혼 - 참수 - 사망 - 이혼 - 참수 - 생존 식으로 외운답니다. 앤 볼린은 첫번째 참수에 해당하고요.



- 탐험가인 월터 롤리나 무적 함대와의 전투의 주인공인 프란시스 드레이크는 해적질로도 유명하죠. 아메리카 대륙을 선점한 스페인이 실어오는 금을 영국 정부의 라이센스를 받고 약탈하곤 했으니 라이센스 투 킬 제임스 본드의 선조격이네요.



- 영화에서 월터 롤리에게 금화를 빼앗긴 스페인 대사가 여왕에게 항의하는 장면이 있는데 조금 웃기더군요. 도둑질한 놈이 해적질한 놈에게 욕하는 것 같아서...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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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 2011-02-16 00:08:36
답글

벤자민 버튼(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에도 출연한 것을 보았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연기력이 출중한 배우 중의 한 명인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김소정 2011-02-16 05:46:38
답글

케이트 블란쳇은 엑스트라로 몇 초만 나와도 (시쳇말로) '미친 존재감'을 나타낼 수 있는 여배우죠. <br />
저도 좋아하는 배우인데, '골든 에이지'에서는 어쩐지 엘리자베스 인형 놀음으로 끝나고 말았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br />
케이트가 엘리자베스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준 건 이 보다 10여 년 전 작품인 '엘리자베스'에서였다고 생각해요.<br />
'골든 에이지'가 감독도 배우도 같아서 '엘리자베스' 속편일까 하는 기대로 봤는데

이승태 2011-02-16 08:47:33
답글

관습적 역사물...재치있는 표현이네요...^^<br />
<br />
두 분 말씀처럼 케이트 블랑쳇의 연기는 눈길을 딴곳으로 돌리지 못하게 하는 강한 흡인력이 있죠. <br />
<br />
그래서 케이트의 존재감만 화려한 의상과 함께 유난히 돋보이는 영화가 되었고, 만약 여왕과 롤리의 로맨스에 초점을 맞춘 영화였다면 클라이브 오웬의 매력도 훨씬 더 발휘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sql2night@naver.com 2011-02-16 11:40:08
답글

프란시스 드레이크는 원래부터 해적이었는 데 영국왕실이 해군력 강화를 위해 고급관직을 주고 영입한 케이스로 알고 있습니다. 이후부터 드레이크는 왕실의 암묵적인 허가와 함께 해군을 이끌고 주로 스페인 상선을 대상으로 해적질을 하고 이게 왕실에 꽤 짭짤한 수입을 가져다 주었다는 군요.

이승태 2011-02-16 12:44:10
답글

저도 김형수님과 같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br />
당시 영국의 공식 정책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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