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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시했다.”





9시 뉴스에서 대통령이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이 말을 하는 모습을 보고, 난 가슴이 철렁했다. 아덴만 여명 작전으로 명명된 선박 구출 작업이 성공인지 아닌지 모르는 판에 이런 말을 하다니, 너무 성급한 게 아닌가 싶어서였다. 외견상으로는 성공으로 보였다 하더라도, 선장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는지라 일이 잘못되면 민심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판국이었다. 더 심각한 건, 대통령이 그만 ‘주어’를 말해버렸다는 것. 일단 “아무래도 위험한 것 같아 아덴만 작전을 지시했다”고 말한 뒤 상황을 봐서 “내가”를 덧붙였어야 옳았다.





공직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주어를 말할 때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 선진국에서 널리 통용되는 진리다. 대통령이 지금 이 자리에 오른 것도 그의 신중함 때문이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후보 시절 현 대통령은 소위 BBK 동영상으로 위기에 몰린 적이 있다. 광운대 강연에서 “금년 1월에 BBK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하고”라는 발언을 했던 것. 보는 이에 따라서는 대통령이 정말로 BBK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오해하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주어를 말하지 않는 신중함을 발휘했고, “주어가 없지 않으냐”는 설명에 사람들은 모든 오해를 풀었다. 그리고 그들은 얼마 뒤 치러진 대선에서 대통령에게 몰표를 던졌다.





선거에서 이긴 뒤에도 대통령은 신중함을 잃지 않았다. 선거 다음날 국립현충원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이 방명록에 쓴 글귀는 다음과 같았다. “국민을 잘 섬기겠습니다. 국민에게 희망을 드리겠습니다.” 여기에 대해 트집을 잡는 이들이 있다. ‘국민을 섬기겠다면서 국민들이 반대하는 4대강 사업은 왜 하는 거냐’ ‘희망을 준다더니 구제역으로 소·돼지가 300만마리 넘게 죽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방명록의 글을 다시 한 번 보시라. 대체 어디에 “대통령이 섬기겠다”는 말이 있는지. 집권 3년차가 끝나가는데도 지지율이 50%를 넘나드는 건, 대통령의 이런 신중함에 기인한다.





주어에 신중해야 하는 건 비단 대통령만이 아니다. 고 이승복 어린이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 그냥 공산당이 싫다고 했으면 넘어갔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일이었다. 에밀 졸라라는 프랑스 지식인은 드레퓌스 대위가 유태인이란 이유만으로 누명을 쓴 것에 항의하며 ‘나는 고발한다’는 제목의 공개서한을 프랑스 대통령에게 보냈다. 이로 인해 졸라는 유죄판결을 받고 영국으로 망명하는 등 심한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마광수 교수는 연세대에 재직 중이던 시절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란 책을 썼는데, 그가 결국 구속이라는 철퇴를 맞은 배후엔 ‘나는’이란 단어가 있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영화 <나는 전설이다>에 나오는 윌 스미스를 보라. 혼자 살아남아 좀비들의 공격을 받지 않던가?





이렇듯 생생한 사례가 있음에도 대통령이 갑자기 신중함을 잃고 주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대목은 충분히 우려스럽다. 심지어 얼마 전 라디오 연설에서는 충청권 과학비즈니스벨트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 공약은 내가 지난 대선 때 충청권의 표를 얻기 위해 했던 공약으로, 지금 공약대로 이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적절치 않은 건 공약의 백지화가 아닌, 주어의 사용이었다. 공약이야 백지화했다가도 되돌릴 수 있지만, 주어를 사용해 버리면 어떡하란 말인가? 이런 게 소위 말하는 레임덕인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제발 좀 신중하시면 좋겠다. 주어는, 독이다.





서민 단국대 의대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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