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를 몇 달 앞둔 내무반 왕고 병장 시절, 새로 부임한 소대장이 중대장의 허락을
받아 1박2일 특별외박을 상으로 내걸고 애인 사진 콘테스트를 열었습니다.
사물함에 설치되어 있던 손바닥만한 유리 액자에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여자
사진을 넣되 둘이 같이 찍은 사진만 심사 대상이 된다는 지침이 하달되었습니다.
시큰둥한 어떤 병사는 주간지에서 여배우 사진을 오려 넣기도 하고, 브룩 쉴즈의
사진을 넣은 어떤 병사는 자기 애인이 맞다고 우기기도 했지요.
저를 포함한 리얼 암울 솔로 병사 4명이 의기투합하여 종행교에서 천호동까지
외출을 나와, 계획대로 큼직한 다방에 들어갔습니다.
우선 마담을 찾아서 여차저차 젊은 여자와 같이 찍은 사진이 필요하다 하니
“장사에 지장이 없도록 빨리 끝내라”고 하면서 흔쾌히 허락하더군요.
마담으로부터 우리의 요청을 전해들은 다방 아가씨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우루루 어디론가 ( 아마도 숙소 ) 몰려가더니 온갖 치장을 다 하고 나타났습니다.
한 명 씩 짝을 짓고 옥상에 올라가 사진을 찍었는데, 그 와중에도 서로 주소를
적어주는 등 초고속으로 친해졌으니, 아마도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하는 외로움에
통하는 바 있었나 봅니다.
사진 찍은 쫄따구를 족쳐서 인화된 사진을 받았는데, 아가씨의 치장이 너무
요란하여 왕고의품격과 위엄이 요구되는 저로서는 도저히 액자에 넣을 작품이
안 되었기로, 고심 끝에 당시 4살이었던 조카딸 사진을 넣음으로서 응모에
불참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며칠 후, 그 소대장이 일석점호를 취하면서 차례로 돌아가며 사진평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침상 가장 아랫목에 앉아 있는 늙수구레한 육군 병장 (당시 26세) 앞에
와서 보니, 액자 속에는 여자 사진 대신 얼라 사진이 들어 있는 터라 주춤하면서
"아들인가, 딸인가..?”혼잣말 비슷하게 남기고 건너편 침상으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이때 내무반 쫄따구 몇이 “아들입니다.”이라고 거짓 대답을 한 덕에, 이
소대장은 제가 전역할 때까지도 애아버지로 알았을 것입니다.^^
다방 아가씨들과 건물 옥상에서 찍은 사진들은 모두 애인 사이가 아니라는
소대장의 예리한 지적으로 심사에서 탈락되었으나, 이들 중 한 두 명은 그 다방
아가씨들의 면회를 받기도 하고 외출 외박 나가서 만나는 등 좋은 사이를 제법
오래 유지하기도 했었지요.
데이트를 하고 돌아온 병사에게는 그날 점호 후 불끄고 침상에 누워 청문회 수준의
취조가 있었음은 물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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