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이오 때 미군들이 한국으로 들고 온 탄통이다.
물자가 귀하던 시절이라서 그 당시 미군부대에서 나 온 소위 보루바꾸라는 박스는 비록 종이 박스지만
그 보루바꾸를 집안에 작은 옷장으로 사용하던 시절인지라 자연 철로 된 이 탄통은 매우 인기가 높아서
공구통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혹은 집안 어르신들의 귀중한 물건을 담아두는 통으로도
사용되었는데 특히 많이 사용 된 것은 바로 장산하시는 분들의 가게 돈통으로 사용 되었다.
유가,비가,눈깔사탕,쌀티밥,색연필,공책,연필깍기,지우개,도화지,크래용,고무줄,딱지,건빵,껌.....학교 앞에는 점방 집이라는 가게가 있고 등하교 길에 아이들은 그 점방 집 마루에 턱을 고이고나,열린 문에 마른 버짐 핀 머리를 소복이 메달고 들여다보는 풍경이 있었다.
딱히 살 돈이 없어도 ..먹고 싶은 아이들의 눈망울이 고정되는 학교 앞 점방집...
봄소풍 가는 날은 그 점방집에 더 많이 매달려서
"껌 하나 주세요...사탕 하나 주세요...."
그러면 점방 집 주인은 물건을 팔고 나서 아이들에게 받아 든 돈은 이런 미제 탄통에 담았다.
오일 장마당 난전 시장 사람들도 이 돈 통을 사용 했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종로 그 유명했던 국밥 집 카운터에도 이 탄통이 족히 반세기는 돈통으로 사용 되
기도 했을 정도로 인기 품목이였다
특히 뚜껑이 있어서 난전 장사꾼들이 사용할 경우 비가와도 걱정이 없고
일이 끝나고 이 돈통 하나 들고 집으로 가는 것도 일종의 자랑스런 일이였다.
청계 8가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그 후에 안에 회로를 넣고 이런 저런 기능 치장을 하여 일본에 들고 갔다.
우린 무엇을 만드는 사람을 그저 쟁이 취급 하는 나라지만 일본은 깍듯이 선생님으로 존중해주는 사고가
있는 나라여서 그런지 만든이 수고가 나름 있다.
궁핍한 세월을 거쳤던 전후세대들의 추억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동일하다.
그 돈통에 회로를 넣고 일본에 들고가서 첫날 박람회장에서 보여 주었더니
너도 나도 이 돈통을 보면서 한마디씩 추억을 들춰내고...일본서도 이 탄피 통은 각가정이나 점방에서도 돈통으로 가장 많이 사용했다고 하였다 .
한 때...총알을 담아서 숨막히는 전쟁 터에서 한손엔 총 다른 한손에 이 탄통을 들고 뛰다가 일순 육신을
후펴파는 엄청난 고통과함께 피를 토하며 산산 골골이 단말마 숨을 거두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이통이...
반세기 동안 청계천 고물상 노인 창고에 잠을 자다가 ..다신 전자부품을 답재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총알통의 애환은 사라지고 이제 다른 나라에서 또 다른 임무로 오래동안 존재 할 것이다.
.....어주자 전자일기 메모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