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물론 카스티야와 까탈루냐 지방이라는 차이는 사실이지만..)
앙숙이었다는 얘기도 처음 듣는데다가 그 많은 재산을 다 치료에 썼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 (오히려 제가 알기론, 그리고 사실 호세 까레라스가 완치
이후에 자신의 재산으로 백혈병 치료를 위한 재단을 만들었었죠)
저 재단이름을 구글에 한번 쳐 봤더니 바로 나오네요..
http://en.wikipedia.org/wiki/Hermosa_Foundation
위키는 참 대단하군요^^ 이런 루머까지 다 나오게..
김태훈님께서 2010-11-20 10:04:48에 쓰신 내용입니다
: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 불가이지만
: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라서 퍼왔습니다.
:
:
: Jose Carreras 와 Placido Domingo 사이의 숨은 얘기
:
: 이것은 아마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이다.
: 이것은 그들이 함께 노래를 불러 전세계를 감동시켰던,
: Luciano Pavarotti, Placido Domingo,
: 그리고 Jose Carreras세 사람 중,
: 뒤의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
: 스페인에 가지 않아도 ‘카타로니아’지역 사람들이
: 스페인을 다스렸던 마드리드’지역으로부터의 자치권을
: 쟁취하려는 것 때문에 두 지역이 적대관계 있었던
: 것을 알고 있다.
:
: 그래서 마드리드지역 출신인 플라시도 도밍고와
: 카타로니아 지역 사람인 호세 카레라스도 그렇게 되어,
: 이러한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카레라스와 도밍고는
: 1984년에 앙숙이 되었다.
:
: 그들이 대단히 유명해지고 세계 여러 곳을 다니게 되면서,
: 그들은 필요에 따라 서로가 오직 상대방이 초빙되지 않았을
: 때에만 나가기로 약정(約定)하였다.
:
: 1987년, 카레라스는 그의 라이벌 플라시도 도밍고 보다도
: 더 받아드릴 수 없는 적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백혈병에
: 걸렸다는 무시무시한 진단을 받고 놀랐던 것이다.
:
: 그의 백혈병과의 투쟁은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 그는 골수이식과 수혈 만이 아니라
: 여러 가지 치료를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 매달 미국으로 가야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일을 할 수 없
: 었고, 그는 다소 부유하였지만 이러한 빈번한 여행과 치료에
: 드는 막대한 비용은그의 재산을 고갈(枯渴)시키고 말았다.
:
: 그의 경제적 능력이 다 했을 때, 그는 마드리드에
: 오직 백혈병 환자만을 위한 재단(財團)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카레라스는 그 ‘Hermosa’재단의 후원덕택에
: 다시 노래 부를 수 있게 되였다.
:
: 그는 다시 재기하였고, 그럴만한 형편이 되자 그 재단에
: 가입하려고 하였다.
:
: 그는 재단의 정관(定款)을 읽고 나서,
: 플라시도 도밍고가 그 재단의 설립자이며 기여자의 리더이고,
: 또한 이사장인 것을 알게 되었다.
:
: 그는 후에, 이 재단이 애당초 그의 치료를 돕고자 설립되었으며,
: 앙숙인 자기로부터의 도움을 창피하게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 익명(匿名)으로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
: 그러나 이 이야기의 정점은
: 마드리드에서의 만남으로, 도밍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즉, 카레라스는 도밍고의 연주회를 찾아가 그의 연주회를 중단시키고,
: 겸손하게 도밍고의 발 아래에 무릎 꿇고 공개적으로 감사를 표했다.
: 도밍고는 그를 잡아 일으키고 꼭 껴안아, 그들의 위대한 우정의 시발
: (始發)을 확고히 하였다.
:
: 플리시도 도밍고는 한 인터뷰에서,
: 그의 앙숙을 도와 주는 것뿐인 ‘Hermosa재단’을
: 그때에 설립하게 된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대답하기를
: "다만 나의 경쟁자인 다른 예술가를 도우려 한 것" 이라고 하였다.
: 그의 대답은 짤막하고 명확한 것이었다.
:
: 이것은 人間愛에 대한 실화(實話)이며,
: 하나의 본보기로서 또한 감화(感化)로서 다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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