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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주의와 실용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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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8 11:30: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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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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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주의와 실용론 |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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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식 [가입일자 : 2005-02-16]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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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론에 관한 논란이 이 게시판의 뜨거운 감자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이런 논쟁을 재밌게 즐기는 편입니다만 여기서의 논란은 지속적으로 발전하지 않고 똑같은 내용만 반복되는 것 같아 좀 안타깝습니다.
"일정 기준을 만족하는 앰프 간에는 (인간의 음악감상에 있어 유의미한) 차이는 없다"
이것이 실용론에서 주장하는 핵심적인 주장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입니다. 즉 하이엔드 앰프와 엔트리급 앰프를 서로 블라인드테스트 해 봤더니 구분 못하더라. 그러니 이 둘 사이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 이런 결과를 부정하진 않습니다만 그 의미를 그렇게 절대화시키지도 않습니다. 대부분의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는 동호인들의 수준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객관적인 학계의 연구자료로 제출되거나 한 것들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구분을 해 낸 사례도 많이 보이고 있기도 하구요. (물론 실용론에서는 구분을 한 경우는 그 기기가 기준 미달이다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는 오디오파일들에게 충분한 시사점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주 크게 차이난다고 생각했던 앰프간의 차이가 실제로는 평범한 일반인들이 블라인드테스트로 구분할 수 없는 수준의 차이라는 것은 밝혀진 것이니까요
하지만 여기까지입니다. 실용론에서 그 논지의 전개를 여기까지만 했다면 이렇게 불필요한 논란이 오랜동안 지속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용론에서는 이 결과를 가지고 좀 더 진행을 합니다. '블라인드테스트에서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앰프간에 (유의미한) 차이는 없다. 따라서 앰프간에 차이를 느꼈다고 하는 사람들은 플라시보에 의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주장을 하는 것이죠.
그렇게 논지는 발전했지만 그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그 근거는 블라인드테스트 뿐이죠. 결국 그 주장은 '블라인드테스트로 구분하지 못하면 차이가 없는 것이다, 즉 구분할 수 없으면 느끼지 못한 것이다'라는 것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너무나도 허점이 많은 주장입니다.
인간의 지각이 갖는 인식체계는 아직도 모두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구분할 수는 없지만 인지는 가능한 사례가 우리 주위에는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하면 예를 들어보라고 하지만 제가 수없이 예를 들었는데도 모두 외면하기만 할 뿐 아무런 말이 없더군요.
인간이 초저역음에 오래 노출되면 두통과 구토증세가 생깁니다. 하지만 초저역이 나오는지 아닌지는 절대로 구분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기계가 불량으로 인해 초저역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기계에서 일하면 머리가 아파서 그 기계에서 일하기 싫어합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그 초저역을 느낀 것인가요? 아니면 못느낀 것인가요? 잘 알고 있는 실험 중에 영화 중간 중간 콜라 광고를 삽입했을 경우 콜라 판매가 늘었다는 경우 아무도 영화 중에 콜라 광고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음에도 신체는 느낀 경우죠.
이런 복잡하고 난해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특별히 훈련된 사람이 아니라면 모니터 수평해상도가 60Hz와 70Hz인 경우를 블라인드 테스트로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래 사용해보면 60Hz는 눈이 빨리 피로해집니다. 400만 화소와 500만화소의 사진 두장을 블라인드 테스트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구분할 수 있을까요?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400만화소나 500만화소나 똑같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앰프간에 블라인드 테스트를 주장하는 분들에게 400만화소와 500만화소 사진에 대한 블라인드 테스트를 제안해 보고 싶습니다. 과연 구분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두장의 사진을 올려드릴테니 한번 도전해 보실 생각 있으신가요? 만약 구분을 못하신다면 그 다음엔 어떤 이야기를 할 지 궁금합니다. "400만 화소와 500만 화소의 (유의미한) 차이는 없다"라고 이야기 하실런지...
인간의 지각은 어떨 땐 아주 멍청해서 큰 차이를 간과하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아주 작은 차이에도 반응합니다. 기업에서 제품을 하나 출시할 땐 엄청나게 많은 고민을 합니다. 아주 사소한 작은 차이가 결국 시장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해 주기 때문에 모든 제품 기획자들이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차이라도 앞서가려고 그렇게 고생들을 하는 것이죠.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은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라는 결론은 너무 오버한 결론입니다.
뉴튼의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근대물리학의 지평이 획기적으로 확대되고 세상의 많은 일들을 수식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인간은 이 세계에 대한 무한한 자신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모든 일들을 영적인 존재의 행위로 돌렸지만 이제 그 원리를 규명함으로써 많은 미신을 타파하고 근거없는 신비주의의 껍데기를 벗겨버릴 수 있었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역작용을 일으키는 요소들도 있었습니다. 당대의 과학으로 규명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미신으로 치부해버림으로써 과학의 이름으로 과학에 접근하는 길을 차단해 버리는 우를 범하는 것이죠. 합리주의자인 서양사람들이 태교의 중요성을 인식한게 얼마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런 하나의 사례입니다. 자신들의 현재 과학으로 그 연관관계를 입증하지 못하면 그것들을 모두 미신적인 요소로 치부해 버린 것이죠.
전 실용론이 오디오파일들에게 있어 이런 근대주의적 사고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실제로 상당한 유사점을 갖고 있습니다.
블라인드테스트라는 실험을 통해 앰프간에 차이가 미미하다는 사실을 밝혀 냄으로써 미신적인 요소를 걷어내고 허무맹랑한 뽐뿌질에 흔들리지 않게 해 주었다는 의의를 높이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그 결과를 지나치게 절대시하고 교조화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발전해나가는 과학의 결과를 무시하고 앰프의 발전은 이미 끝이났다라는 다소 교만한 선언을 하는 것도 그렇고, 사람의 인지를 파악하는 한가지 방법인 블라인드 테스트만으로 다른 모든 결론의 근거로 삼는 것도 그렇고, 이를 부정하는 의견에 대해 반박논리를 전개하는 방법도 그렇습니다.
"일정 기준을 만족하는 앰프 간에는 (인간의 음악감상에 있어 유의미한) 차이는 없다"는 실용론의 주장으로 해석되지 않는 많은 사례들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실용론에서는 모든 것을 플라시보 효과라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얼마전 이 게시판에서 본 글 중에는 도시바 출력석과 산켄 출력석의 소리 차이가 있는가 하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 글을 보니 같은 모델 앰프 두대를 쓰는데 둘의 소리가 자꾸만 미묘하게 달라서 결국 배를 따 보니 출력석이 서로 다른 것이다고 하더군요. 이런 사례를 들면 실용론에서는 '그것은 출력석 때문이 아니라 청취자의 어떤 착각이거나 아니면 한쪽 앰프가 출력석 이외의 문제로 인해 불안정한 소리를 내 줬다라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앰프간에 차이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수많은 논의가 공전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앰프간에 차이가 없다' -> '실제로 이렇게 구분된 사례가 있다' -> '그것은 플라시보 효과다' -> '플라시보효과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무엇인가?' -> '앰프간에는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증명해야하는 가설이 가설을 반박하는 주장에 대한 재반박의 전제가 되고 있는 기형적인 논리 전개가 됩니다. 실용론의 가설을 타당하다고 간주했을 때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현상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장의 선택이 있고, 기기에 대한 평이 일치하는 문제들이 있고, 외관이 주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성향으로 평가되는 기기들이 있으며 생활 속에서 기기의 변화를 눈치채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경우에 대해 실용론에서의 반박은 두가지 중 하나입니다.
하나는 그 기기는 일정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기기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착각이거나 플라시보 효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근거를 물으면 '앰프간에 차이가 없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듣습니다. 증명해야할 가설이 자신이 타당함을 증명하는 전제가 되어 버리는 것이죠.
그러나 실제로 이런 사례들을 플라시보효과라고 이해해야할 필연적인 연관성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외관에서 남성적인 힘을 연상시키는 마크레빈슨이 실제로는 단정하고 달콤한 소리를 내 준다고 합니다. 그냥 소리가 좋다고 느낀다면 비싸니까 플라시보 효과라고 칠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 플라시보 효과가 왜 힘차고 당당한 소리라고 느껴지지 않고 단정하고 달콤한 소리로 느껴지는지 실용론에서는 그 메커니즘에 대해 규명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럼에도 이를 플라시보라고만 주장하는 논리는 '앰프간에는 차이가 없다'라는 가설을 전제로 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나올 수 없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진실에 접근하고자 한다면 자신의 가설을 전제로 논리체계를 세우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아야겠죠.
그렇다고 해서 제가 모든 앰프는 차이가 있고, 선재에 따라 소리는 많이 변화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갖고 있는 오디오 시스템 전체가 중고가 100만원 안팎이며 앞으로도 이 예산을 벗어나기 힘들고 그럴 의사도 별로 없는, 오디오파일이라고 하기도 미안한 사람입니다. 실용론의 주장에 심정적으로 반박만 하고 볼 아무런 이유도 없는 사람이죠. 단지 실용론의 논리 전개가 과학적이지 못하고 논리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동의하지 않을 뿐입니다. 실용론을 비판한다고 해서 모두 앰프, 선재에 따라 소리는 엄청나게 변화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아님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실용과 비실용의 논란을 자신의 명확한 주관없이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신기한 일들이 많습니다. 언젠가는 흉가에서 밤만되면 아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파악해 본 결과 특정시간대의 기압과 바람이 그 공간에서 절묘하게 공명되는 시점이 존재하고 그 공명된 소리가 마치 아이 울음 처럼 들렸다는 결과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규명되기 전에 사람들은 첨에 아이 울음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에게 헛것을 들었다고 하고 환청이라고 하고 심약해서 그렇다고 했겠죠. 하지만 그 사람이 들은 것이 아이 울음 소리는 아니었지만 아이 울음 소리와 대단히 유사한 실제의 소리를 들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죠.
자기가 현재 파악하고 있는 상식과 배치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무지의 소치로 치부해버리는 것이야 말로 가장 비과학적인 태도입니다. 뉴튼 물리학이 정립되었을 때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계산해 낼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뉴튼 물리학에 의해 정립된 상식이 그보다 더 복잡한 세상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도 내 주지 못했습니다.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이 뉴튼물리학을 부정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과학 발전은 있을 수도 없었겠죠.
현대의 물리학은 근대물리학처럼 그렇게 자신감에 충천해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과학의 한계를 이야기하고 모든 것을 설명해줄 수 있는 원리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 회의하고 있죠. 단지 지금까지 밝혀진 성과들을 기반으로 아직 밝혀지지 않은 많은 부분에 대해 탐구해 나갈 뿐입니다.
실용론 역시 자신의 성과와 한계를 분명히 파악하고 그에 기반해 발전적인 논지를 전개한다면 이렇게 소모적인 논쟁으로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끼리 분란이 발생하는 일은 없으리라 봅니다. 사실은 사실 자체로 인정하는 것, 증명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 주장하는 것, 그리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진지하게 접근하는 것, 이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접근해 간다면 아무리 논의가 많이 있어도 분란은 생기지 않을 것이며 답보하는 논란이 아니라 발전하는 논의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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