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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헌병대에서의 기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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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1 16:17: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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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헌병대에서의 기억 |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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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찬 [가입일자 : 2002-07-03]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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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육군사관핵교 근무지원단 출신입니다.
처음엔 본부중대 도서관 관리병으로 보직을 받았으나
대학시절 시위로 인한 구류경력이 문제가 돼 시설대 작업병으로 보직변경 되었습니다.
도서관에 앉아 청소 쫌 하고 사무보는 보직에서 쌩노가다 뛰는 보직으로
보내버린거죠. 국가가... 개인에게... 이런식으로 보복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진급을 앞둔 3사출신 시설대 중대장 이대위에게는 제가 참 눈엣가시가
아닐 수 없었겠죠. 보직변경 첫날부터 갈구기 시작돼서 끊임없이
저를 백안시하는 날들이 이어집니다.
그러다 일병 말호봉쯤 됐을 때 생도대 내무실에서 생도가 보관중이던 돈 50만원이
도난되는 사고가 났습니다. 그동안 그런일들이 비일비재 했는데 이 건은 액수도 크고
(당시 대기업 초봉 수준) 본보기를 보이고자 피해생도가 헌병대에 피해보고를
한 것입니다.
덕분에 그 날 그 생도 내무실이 속한 생도대 건물에 들어갔던 사병들 모두가
헌병대로 연행되기에 이릅니다. 경계 서던 경비중대 사병들, 각종 잡일 하는 근무중대 사병들
그리고 여러가지 작업에 투입됐던 시설대 사병들.
업무 특성상 시설대 사병들이 제일 인원이 많더군요. 헌병대로 달려와 상황 파악하고
헌병대 중사에게 존대하며 얘기를 나누던 우리 중대장 이대위의 저를 바라보는
그 눈빛. '저 색휘는 안끼는 데가 없네....'
이윽고 차례로 불러 지문을 찍는데 헌병대 수사관이 제 손가락을 잡고 돌리는대로
힘 빼고 쫙 돌려주니까 딱 나오는 질문 '너 이새끼 사회에서 뭐 하다 왔어?'
그렇습니다. 지문 찍는것도 경험이 없으면 손에 힘이 들어가 손가락 잡은 사람이
애먹기 마련인데 전에 구류살 때 경찰서에서 했던 경험으로 힘안들이게
해주니까 그랬던 것입니다. 대답이야 뭐 '학교 다니다 왔는데요...'
'학교 무슨 학교? 법무부 학교?', '아니요 XX대학교요.....'
뭐 그렇게해서 지문건은 넘어가고 자칫 유력한 용의자가 될뻔 했다가
거기에서는 벗어났습니다.
불려온 용의자들을 한 방에 밀어놓고 사건당일 행적을 진술하라며 8절지 몇장과
펜 하나씩 던져 주더군요. 그런데 바로 옆방에서 사람을 사정없이 두들겨패는 소리와
처절한 비명이 함께 새어져 나옵니다. 우리도 곧 옆방으로 끌려가 저렇게 줘맞는게
아닌지 두려움이 엄습하기 시작햇습니다. 모두들 말없이 그 처절한 소리를 들으며
재빨리 진술서를 써나가기 시작합니다. 늦으면 늦는 순서대로 끌려가서 줘맞게
될까봐.... ㅜ.ㅠ
그런데 우리들은 계속 진술서만 쓰게 할 뿐 한사람도 옆방으로 불려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만 진술서에 쓰란 내용이 처음에는 당일이었다가 점점 사건 사흘전부터,
일주일 전부터, 급기야 사건당일로부터 보름전서부터 사건날까지 했었던 본인의
모든 행적을 쓰라는 겁니다. 옘병 군대생활이 맨날 거기서거긴데 보름전 일을
우째 기억합니까?
그러더니 밤에 잠을 안재웁니다. 척 보기에도 이제 갓 전입 온 신병놈(물론 헌병)
마이가리 일병 계급장 붙여놓고(헌병대엔 이병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운데 딱
앉혀서 잡혀온 사병들 잠 못자게 하는데 어쩌다가 고개 떨구는 사병 따귀도 때려가며...
정말 뭣같아서 두 눈 똑바로 뜨고 잠안자고 버텼습니다. 덕분에 한 대도 안맞았지요.
이튿날도 전날과 같은 상황 반복에 역시 밤에는 잠을 안재우는 겁니다.
이튿날 밤에도 정신력으로 버텨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으나 이후 저는 지금까지
밤에 잠을 잘 못잡니다. 불면증이 생긴거죠....
그리고 그 다음날 점심무렵 저를 비롯한 모든 용의자들이 헌병대로부터 풀려
났습니다. 단 한놈만 빼놓고.
처음 진술서 쓸 때 옆방에서 처절하게 맞던 놈이 바로 그 놈이었습니다.
근무중대 병장놈이었는데 애초 몸수색에서 많은 돈이 나왔고 사건일 무렵부터
돈 씀씀이가 달랐다는 해당중대 사병들의 증언으로 애초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고
이미 첫날부터 진술이 되기 시작했답니다.
그랬는데도 불구하고 애꿎은 다른 사병들 이틀씩이나 잠 안재우며 괴롭힌 겁니다.
어쨌든 그렇게 점심 무렵에 풀려나 중대본부에 가서 보고를 하니
중대장 이대위가 측은한 눈빛으로 우리들을 바라보며
'수고했다. 내무반 올라가서 자라.' 그러더군요.
(나쁜 사람은 아녜요, 진급이 걸려있어 지독하게 굴었을 뿐이지)
그렇게 그 헌병대 사건은 마무리가 됐는데
범인이었던 근무중대 병장놈은 제대 2개월 남겨놓고 3개월 형 받아서 군형무소
갔다가와서 남은 2개월 더 복무하고 교련교육 복무혜택 3개월 취소돼서 3개월
더 복무하고 도합 안해도 될 군대생활 6개월 더 하고 빨간줄 가고....
저는 중대장과 친해져서 농담도 주고받는 유일한 사병이 됐으나
불면증이라는 평생 치유될 수 없는 병을 얻고....
생각해보니 딱 요맘 때 계절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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