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의 글을 쓰려고 편집창을 열고 나니, 이 하얀 바탕에 무슨 검정 때를 입힌다는 생각이 들면서 머리가 하얗게 변하네요.
올리신 글들을 보면, 참 재밌다/없다 하면서 즐겼었는데, 막상 글을 재미있게 써 주시는 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몰랐었다 반성합니다.
저는 80년대 중반에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는데, 아마도 대학 2학년때 전방 군부대 교육이었을 겁니다. 당시에 저는 급성간염을 앓고, 학교를 쉬려다가 전방교육 1주일 이기간동안 병원에 있다, 3주간만 쉰 것으로 처리되어, 휴학을 안했지요. 나중에 학업을 따라가기가 힘들어서 많이 후회도 했습니다다만, 당시에는 뭔가 방관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바로 이재호/김세진 열사의 일입니다. 당시에 신림동 4거리로 진출해서 전방교육거부를 선언하던 동기들은 그 옥상에서 코너에 몰려서 쫓기던 순간에 구호를 외치던 그 두분 선배에 대해서 절절햇던 마음을 나중에 들려주었지요. "넌 안봐서 다행이다" "평생 못 잊는다"
그런데, 저는 대학 4학년이 되서 전방에 자원해서 교육을 받으러 갔습니다. 당시에 군복무가 아마 32개월이었을 겁니다. 1학년 문무대 교육받으면 3개월이 줄고, 전방 교육받으면 또 3개월이 줄어드는 혜택을 받고자 한 겁니다. 그 다음해 부터는 전방교육이 폐지된다고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6월말 마지막 차수 전방교육을 갔더니, 그전에 입소해서 퇴소당한 모든 사람들을 모아서 하는 교육이더군요. 정상적으로 들어온 친구들도 있었구요. 여기에서 크게 굴림을 당한 것은 아니지만, 대학4년생이 왔다고, 너 데모하던 놈이지 하고 갈구던 28살 먹은 대위가 있었습니다. 쪼인트만 한번 까인것인데, 그게 좁은 마음에 욱하고 남더군요.
퇴소하는 날, 드디어 훈련부대끼리 하던 군대스리가가 열렸는 데, 상대팀에 그 대위가 주전이고 라이트 윙어로 출전을 하셨는 데, 저도 단과대학 축구동아리에서 레프트 백이었거든요. 그래서 포지션을 크게 정한 것도 없는 데, 그냥 부딪혔습니다. 악연까지는 아니지만, 몸싸움을 하는 데, 크게 계급을 내세우지 않더군요. 그냥 *ㅅㄲ 주 그 래 정도는 입에 달고 있었지요.
용기가 생겨서 평소하던데로 밀착 마크를 하고, 가끔은 속임수 동작도 하고(수비수도 공격수를 속이고 밀착마크를 하는 척 하다가 버리고 공격으로 올라가기도 합니다. 수비수가 공격을 하면 공격수가 수비를 해줘야만 수적인 균형이 맞거든요) 슬쩍 정강이도 건드리고 했지요. 그쪽은 말만하고 행동은 제가 했으니, 지금 생각에는 제가 나쁜 놈이지만, 정의가 승리한다는 그런 엉뚱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센터링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바로 점프를 해서 정확하게 어깨로 그 대위를 밀어버린 겁니다. 사실 공을 보지도 않았습니다. 공을 보면 사람을 가끔씩 놓치거든요. 그런데 군대 축구장이 사실 자갈밭이라, 그 분 떨어지면서 발을 잘못 딛어 실려나갔습니다. 나중에 기브스하고 목발짚고 오셔서 저를 지목하더니, 크게 웃으면서 나가서 공부열심히 해라 하시더군요.
그때 마음속에 뭔가가 무너지면서, 대한민국 장교만은 조금 다르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마음에 묻어 두었던 이야기인데, 써놓고 다시 읽어보니 별 것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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