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현 국수 오늘도 환갑을 목전에 두고 20대 여류 기사와 대국을 하고 있더군요.
시니어 팀 마지막 선수로 토너먼트 전에서 여류 기사를 어제 이겼고, 오늘도 대국을 하고 있었습니다.
결과는 모르겠습니다. 보다가 중간에 잠들어서.. =_=;;;
90년대 초까지 바둑이 조서 시대라고 불릴만큼 조훈현 국수와 서봉수 명인의 시대였습니다. 그 둘이 모든 기전을 양분해서 독식했기 때문에 조서 시대라고 불렸고요.
말은 조서 시대였지만, 실상은 거의 모든 기전의 왕좌는 조훈현 국수가 차지를 했고, 서봉수 명인이 명인전 타이틀을 간신히 유지하면서 다른 기전 한 두개 타이틀을 가지는 식이었습니다. 그나마 서 명인이 무관일때도 많았고요. (유창혁 왕위는 깍두기..)
사실상 조훈현의 시대였고, 조훈현에게 한국 바둑이 배우는 시대였던 셈입니다. 호사가들은 둘의 라이벌 관계로 서로 윈윈하고, 서 명인은 조 국수에게 바둑을 배우고, 조 국수는 서 명인에게 승부를 배웠다고 합니다만.. 꿈보다 해몽이고 한국 바둑 전체가 조 국수에게 전적으로 지도를 받던 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한국 바둑의 최대 관심사는 한국 바둑을 거머쥐고 있는 조훈현 국수가 대체 얼마나 강한가였습니다. 실력의 정도를 측정할 능력 자체도 없었고, 고육책으로 양재호 사범 등 신예들과 강제로 스파링 붙여서 실력을 한번 알아 보자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정도 긍정적인 반응으로 끝났던게 아니고, 일각(?)에서 조훈현 국수가 독식하면서 한국 바둑이 피폐해진다는 반응이 상당했습니다. 바둑 팬 중에서도 상당 수가 조훈현 국수의 기전 싹쓸이에 식상해서 싫다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울 아부지..) 보나마나 조훈현 국수가 타이틀을 거머 쥐는데, 해설자도 아마추어가 조훈현 국수의 실력을 맛 볼만큼 해설 할 능력도 없었으니까요.
거기에 더해서 강제로 조훈현 국수의 기전 출전을 제한해서 사실상 은퇴시키자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있었습니다. 누구 누구가 그런 주장을 했는지는 패쓰. 경원의 대상이었던 셈입니다. -_-;;;;
그러던게 조 국수가 중국과 일본이 바둑 후진국으로 얕잡아 보고 달랑 한장 준 시드로 응씨배에 출전해서 우승을 차지하고, 한국 바둑을 세계 정상으로 올려 놓자 그 동안 경원시하던 분위기는 일거에 사라집니다. 물론 그 직후 제자 이창호가 혜성처럼 등장해서 스승인 조훈현 국수의 모든 것을 야금야금 죄다 뺐어 먹은 탓도 있고요.
그리고 이창호 국수 역시 한국 바둑의 왕으로 군림하고 스승과 비슷한 형태의 고충을 겪게 됩니다. 다만 세계 대회가 활성화되어 매번 한국 바둑을 세계 정상으로 올려 놓았던 탓에 그 농도는 한층 옅었지만, 국내 기전 독식에 대한 불만은 대단했습니다. 최근 이세돌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조서 시대가 지고, 조훈현 국수와 이창호 국수의 혈전일 무렵 바둑을 접하고 즐기게 됐습니다. 아부지는 조훈현 질려서 싫고 조훈현 잡는 이창호가 좋다고 하시고, 전 늘씬늘씬하게 반상을 누비는 조훈현 국수가 좋고 재미없는 바둑의 이창호가 싫다고 했습니다.
저도 SK 야구 재미없습니다. 어느 글에 댓글로도 적었지만, 예전에 섭위평 바둑을 보는듯 임해봉 바둑을 보는듯 너무 안정되고, 빈틈이 없고, 기복이 없어서. 그리고 너무 강해서.. 그런 스타일의 총아 이창호 국수의 독주 시대를 연상시킬만큼.. 게다가 허울뿐인 라이벌이라도 가져다 붙일 상대마저 없.. ㅜ.ㅜ
SK 에 대한 반응을 보면서 그냥 뜬금없이 저런 잡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등한 전력의 라이벌만 있어도 그 반응의 정도가 상당히 사라질 성격의 그런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말입니다.
참, 이창호 국수 좋아합니다. 진중한 성격과 모범적인 사생활까지 모두요. 단지 날랜 물찬 제비같은 스타일을 더 좋아하는 평범한 아마추어의 취향 때문에 조훈현 국수의 스타일이 더 좋다는거죠.
|